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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학상, 현상금 인플레 시대

등록 2008-01-11 19:27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문학 월간지 <문학사상> 신년호를 보니 ‘문학사상 장편소설상’이라는 새로운 문학상을 제정한다는 안내문이 있다. 국내 출간과 동시에 해외에서 영어로 출간한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1억5천만원의 상금 규모가 놀랍다. 안내문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국내 최고 상금’에 해당한다. 세계일보사가 주관하는 세계문학상, 그리고 조선일보사가 지난해 새로 만든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의 1억원 상금에서 50% 인상된 것이다. 10여 년 전 국민일보사에서도 1억원 상금을 걸고 장편소설을 공모한 적이 있으니, 1억5천만원 상금은 한국 장편소설 현상공모의 기록을 깬 셈이다. 국문 및 영문 번역 출판저작권을 출판사가 영구 확보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어도, 기록은 기록이다.

비록 억대에는 못 미치지만 상금 액수가 수천만원대에 이르는 고액 장편소설 현상공모는 여럿 있다. 문학동네소설상이 5천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있으며, 한겨레문학상 역시 올해부터 상금을 5천만원으로 늘렸고, 지난 가을호로 창간된 <문학의 문학>도 5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를 시작했다. 이밖에도 창비의 창비장편소설상과 민음사의 오늘의작가상이 각각 3천만원, 문학수첩의 문학수첩작가상과 문학동네의 문학동네작가상이 각각 2천만원의 상금을 걸고 작품을 모집하고 있다.

이 상들이 대체로 신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별다른 문단 경력이 없어도 장편소설 하나만 잘 쓰면 순식간에 수천만원 내지는 억대의 상금을 거머쥘 수 있다는 말이 성립한다. 실제로 신인 작가 서유미씨는 지난해 문학수첩작가상과 창비장편소설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5천만원을 ‘벌었다.’ 소설책 한 권 값을 1만원이라 쳐도 5만 권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 인세 수입에 해당한다. 몇몇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제하고는 웬만한 기성작가들조차 1만 권은 물론 초판 3천 부도 소화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 이런 고액 상금은 상당한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고액 상금을 내건 문학상이 느는 데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없지 않다. 문학의 위상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액수의 상금을 통해서나마 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하고, 재능 있는 잠재 작가들의 참여와 문학적 투신을 유도하는 효과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상금 액수의 고저가 작품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상금 액수를 경쟁적으로 늘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나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으로 이해되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볼 일이다. 가령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과도한 몸값이 경기 발전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먹튀’가 문학에서라고 없으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고액 문학상을 문학에 대한 사회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혹시라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성장 이데올로기의 문학적 반영은 아닌지 점검해 볼 일이다. 문학적 논리와 맥락에 따른 자연스러운 문학 부흥은 물론 바람직스럽되, 인위적인 경기 부양 식의 ‘쏟아붓기’는 곤란하다. 거품 경기가 경제의 건전한 기반을 갉아먹는 것처럼 과도한 ‘투자’는 작가와 문학을 타락시킬 수도 있다. 문학과 돈, 적당한 거리와 긴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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