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처럼 담담하게〉
■ 죽음을 준비하며 얻은 ‘새 삶’
〈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처럼 담담하게〉
모든 이의 삶은 유한하다. 그런데 끝이 보이기 전까지는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산다. 영원할 것처럼 아등바등 산다. 진리를 깨우칠 즈음엔 원망하고 집착하고 체념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교사이자 두 자녀의 엄마, 그리고 가난한 신문쟁이의 아내였던 지은이 류부연은 2002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 병과 다투다 2008년 3월 세상을 등진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처럼 담담하게>는 그의 투병기이자 치유기이다.
하루를 1년처럼 살게 되면서 그는 마음공부를 시작했고, 원망과 체념의 긴 터널을 지나 그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세상을 성찰한다. ‘내 안의 나’를 만나게 되고 순간순간의 삶을 느끼고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랬기에 투병 중에 갑작스럽게 딸을 자신보다 앞세우는 황망한 일을 겪고도, 딸이 주고간 선물은 용기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씩씩하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담담하게 다짐한다. 지은이는 집착이 병을 만들었고 그런 집착을 내려놓으면서 새로 살게 됐다고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그에게는 살고자 하는 의지와 바람이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성찰과 깨달음의 시간도 갖지 못한 채 황망하게 생을 마감하는 수많은 이들에 비하면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것 같다. 암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했다. /바이북스·1만2000원.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장애인 딸과 새아빠의 ‘행복 가족’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 “오빠는 이제 다 컸으니까, 아빠 해도 돼!” 웬 하늘에서 날벼락 떨어질 소리? 놀랄 것 없다. 싱글맘의 젊은 남자친구를 아빠로 받아들인다는 한 딸의 선언이니 말이다. <엄마 외로운 것 그만하고 밥 먹자>란 책을 통해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은혜)을 홀로 키우는 여성의 삶을 보여줬던 만화가 장차현실씨가 <여성신문> 등에 연재한 만화 120여 꼭지를 다듬어, 4년 동안 달라진 가족의 얘기를 전한다. 그새 은혜는 초경을 경험했고, 남자친구와의 첫키스를 꿈꾸는 어엿한 숙녀가 됐다. ‘오랫동안 굶은’ 엄마에겐 일곱살 연하의 애인이 생겼고, 낮밤 가리지 않은 사랑 속에 새 가족 ‘또리’(은백)가 태어났다. 가족은 성장했지만, 이 비혼가족을 대하는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뜨악하다. 엄마의 남자친구와 함께 온 은혜를 반갑게 맞던 분식집 주인은 아빠가 아니란 말에 쑥덕거리고, 못된 아이들의 ‘애자’(장애자)란 놀림도 계속된다. 그래도 시골집에서 봄볕을 맞으며 나란히 누운 세 식구는 행복하기만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또리의 육아를 분담하는 식구들의 모습은 모범적이기까지 하다. 이혼녀라고, 장애아라고 쉽게 붙이는 세상의 ‘딱지’가 얼마나 별 볼일 없는 것인지 새삼스럽다. 장차현실 글·그림/한겨레출판·1만원.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유럽·일본의 장애인 시설 탐방기 〈장애인천국을 가다〉 장애인. 열에 아홉은 후천적이다.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은 ‘잔혹’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 진전이 없진 않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은 장애인인권선언이 주창된 1975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건 제때 알맞은 치료만 이뤄진다면 무수히 많은 이들이 평생 장애의 멍에를 지지 않아도 될 일이란 점이다. 이 책은 민간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 등이 유럽과 일본의 장애인 재활병원과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쓴 탐방기다. 이들이 소개하는 이들 나라의 장애인 병원과 시설은 외진 곳에 있지 않다. 누구나 가고 싶은 명승지나 아름다운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다. 가장 부러운 건 장애인과 환자 중심의 프로그램과 운영이다. 맞춤형 치료, 퇴원 후에도 환자의 집을 찾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병원, 최고의 장인에게 기술을 직접 배우는 작업장 …. 책이 소개하는 장애인 재활병원 및 시설들은 우리네 장애인들에겐 ‘꿈의 현장’이다. 제목대로 ‘천국’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장애인들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이 엄청난 간극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됐나, 우린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 책이 던지는 궁극적 화두는 어쩌면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일 것이다. 백경학 외 지음/논형·1만4000원.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 전라도 먹거리, 그 살가운 추억 〈행복한 만찬〉 우선 경고 한마디. 책을 펴기 전 간단히 요기를 하자. 그러지 않으면 책장 넘기는 손가락이 흥건해져 버릴지 모른다. 다만, 이 스물여섯 가지 소박한 밥상에선 몸에 좋은 성분이니, 감칠맛 나는 조리법 따위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사카린을 넣은 쑥버무래기와 미원 살살 친 시래기무침도 당당히 메뉴로서 이름을 올린다. <행복한 밥상>은 “전라도 촌가시내” 소설가 공선옥씨의 허기진 낮과 밤을 채워준 먹거리들의 기록이다. 지은이의 추억에선, 감자는 ‘호이루’에 싸서 복잡하게 굽고 말 것도 없다. 뜨거운 감자를 젓가락으로 푹 찍어 호호 불어야 제맛이다. 바람끝이 찬 봄날, 검은 ‘맘모 쓰봉’에 ‘나이롱 샤쓰’를 입고 동네 앞들을 헤매어 캐낸 쑥은 1년 내 일용할 양식이다. 쑥국을 말아먹을 밥이 없어 쑥버무래기를 해먹고 난 밤은 또렷한 슬픔의 기억이다. 하지만 춥고 배고픈 밤에 베어 먹던 무맛은 여전히 혀끝을 맴돌고, 토란잎을 꿀떡 삼킬 땐 회한도 함께 목 뒤로 넘어간다. 지은이의 밥상엔 고된 노동에 수척했던 어머니의 기억도 빠지지 않는다. 떫은 땡감을 우물거리며 선하게 웃던 어머니 모습은 기억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겁고, 시래깃국을 먹는 일은 잘 마른 어머니의 눈물을 먹는 행위다.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 찾는 인심이 얄미워” 차려낸 만찬은 소박하지만 풍요롭고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달·1만2000원.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 “오빠는 이제 다 컸으니까, 아빠 해도 돼!” 웬 하늘에서 날벼락 떨어질 소리? 놀랄 것 없다. 싱글맘의 젊은 남자친구를 아빠로 받아들인다는 한 딸의 선언이니 말이다. <엄마 외로운 것 그만하고 밥 먹자>란 책을 통해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은혜)을 홀로 키우는 여성의 삶을 보여줬던 만화가 장차현실씨가 <여성신문> 등에 연재한 만화 120여 꼭지를 다듬어, 4년 동안 달라진 가족의 얘기를 전한다. 그새 은혜는 초경을 경험했고, 남자친구와의 첫키스를 꿈꾸는 어엿한 숙녀가 됐다. ‘오랫동안 굶은’ 엄마에겐 일곱살 연하의 애인이 생겼고, 낮밤 가리지 않은 사랑 속에 새 가족 ‘또리’(은백)가 태어났다. 가족은 성장했지만, 이 비혼가족을 대하는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뜨악하다. 엄마의 남자친구와 함께 온 은혜를 반갑게 맞던 분식집 주인은 아빠가 아니란 말에 쑥덕거리고, 못된 아이들의 ‘애자’(장애자)란 놀림도 계속된다. 그래도 시골집에서 봄볕을 맞으며 나란히 누운 세 식구는 행복하기만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또리의 육아를 분담하는 식구들의 모습은 모범적이기까지 하다. 이혼녀라고, 장애아라고 쉽게 붙이는 세상의 ‘딱지’가 얼마나 별 볼일 없는 것인지 새삼스럽다. 장차현실 글·그림/한겨레출판·1만원.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유럽·일본의 장애인 시설 탐방기 〈장애인천국을 가다〉 장애인. 열에 아홉은 후천적이다.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은 ‘잔혹’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 진전이 없진 않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은 장애인인권선언이 주창된 1975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건 제때 알맞은 치료만 이뤄진다면 무수히 많은 이들이 평생 장애의 멍에를 지지 않아도 될 일이란 점이다. 이 책은 민간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 등이 유럽과 일본의 장애인 재활병원과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쓴 탐방기다. 이들이 소개하는 이들 나라의 장애인 병원과 시설은 외진 곳에 있지 않다. 누구나 가고 싶은 명승지나 아름다운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다. 가장 부러운 건 장애인과 환자 중심의 프로그램과 운영이다. 맞춤형 치료, 퇴원 후에도 환자의 집을 찾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병원, 최고의 장인에게 기술을 직접 배우는 작업장 …. 책이 소개하는 장애인 재활병원 및 시설들은 우리네 장애인들에겐 ‘꿈의 현장’이다. 제목대로 ‘천국’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장애인들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이 엄청난 간극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됐나, 우린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 책이 던지는 궁극적 화두는 어쩌면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일 것이다. 백경학 외 지음/논형·1만4000원.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 전라도 먹거리, 그 살가운 추억 〈행복한 만찬〉 우선 경고 한마디. 책을 펴기 전 간단히 요기를 하자. 그러지 않으면 책장 넘기는 손가락이 흥건해져 버릴지 모른다. 다만, 이 스물여섯 가지 소박한 밥상에선 몸에 좋은 성분이니, 감칠맛 나는 조리법 따위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사카린을 넣은 쑥버무래기와 미원 살살 친 시래기무침도 당당히 메뉴로서 이름을 올린다. <행복한 밥상>은 “전라도 촌가시내” 소설가 공선옥씨의 허기진 낮과 밤을 채워준 먹거리들의 기록이다. 지은이의 추억에선, 감자는 ‘호이루’에 싸서 복잡하게 굽고 말 것도 없다. 뜨거운 감자를 젓가락으로 푹 찍어 호호 불어야 제맛이다. 바람끝이 찬 봄날, 검은 ‘맘모 쓰봉’에 ‘나이롱 샤쓰’를 입고 동네 앞들을 헤매어 캐낸 쑥은 1년 내 일용할 양식이다. 쑥국을 말아먹을 밥이 없어 쑥버무래기를 해먹고 난 밤은 또렷한 슬픔의 기억이다. 하지만 춥고 배고픈 밤에 베어 먹던 무맛은 여전히 혀끝을 맴돌고, 토란잎을 꿀떡 삼킬 땐 회한도 함께 목 뒤로 넘어간다. 지은이의 밥상엔 고된 노동에 수척했던 어머니의 기억도 빠지지 않는다. 떫은 땡감을 우물거리며 선하게 웃던 어머니 모습은 기억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겁고, 시래깃국을 먹는 일은 잘 마른 어머니의 눈물을 먹는 행위다.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 찾는 인심이 얄미워” 차려낸 만찬은 소박하지만 풍요롭고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달·1만2000원.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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