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 어느 탐미주의자의 ‘잔혹한 상상력’
〈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그동안 어린이책 시장에 묻혀 있던 오스카 와일드가 비극으로 치닫는 탐미주의자의 전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시종일관 ‘환상’에 대한 기대를 배반한다. 환상적인 얘기들은 도덕을 냉소할 뿐만 아니라, 엽기·변태적이기까지 하다. 어린시절 누구나 읽었을 <행복한 왕자> 등 9편의 동화가 담겼는데, ‘혹시 내용을 바꾼 게 아닐까’ 고개가 갸우뚱해질 정도다.
우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의 공식을 무참히 깼다. 가혹한 시험을 거쳐 선한 왕이 된 이는 극도의 피로감으로 3년 만에 세상을 뜨고 “뒤이어 왕위에 오른 자는 사악하기 그지없었”다는 얘기(<별아이>)나, 사랑에 빠진 청년을 위해 나이팅게일이 목숨 바쳐 피운 장미꽃은 도랑에 빠진 채 마차 바퀴에 짓이겨지고 마는 것(<나이팅게일과 장미>)이 대표적이다. ‘~했답니다’류의 말투 대신 건조한 ‘했다’체로 번역된 것도 동화답지 않다. 파스텔톤 일색의 기존 동화들과 달리 기괴함을 극대화한 삽화도 이 ‘잔혹’ 동화와 제대로 궁합이 맞는다. 삶의 아이러니를 깨달아버린 어른들에게 제격인 셈이다. 청교도적 질서와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 ‘개인’이 갇힌 시절, 와일드는 동화의 틀을 빌려 전복적 상상력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오스카 와일드 지음·이은경 옮김/이레·2만원.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오에 겐자부로 ‘마지막 장편 3부작’
〈책이여, 안녕!〉
오에 겐자부로는 죽음이 아닌 탄생을,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려는 작가다. 2000년 펴낸 <체인지링>을 시작으로 <우울한 얼굴의 아이>(2002)를 거쳐 그 스스로 ‘마지막 장편 3부작’이라 일렀던 연작의 마지막 편이 <책이여, 안녕!>이다. 오에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소설가 고기토, 건축가이되 ‘파괴하는 공법’을 연구하는 시게루가 짝패를 이뤄 국가폭력에 저항하려는 이야기가 소설의 등골이다. 국가의 거대폭력이란 핵무기를 이름이며 이에 맞서 ‘폭력의 원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을 인도하고 교육하는 ‘이상한 2인조’의 활약상을 담았다. 시게루는 개인 단위의 폭력 장치를 만들고 고기토는 그 과정을 기록한 소설을 쓴다. 인터넷을 통해 텍스트가 젊은이들을 만나면 누구나 핵무장한 국가체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가정이며 그것은 충격적이다. “우리의 폭파엔, 비폭력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 ” 도쿄 도심의 한 빌딩을 폭파하려던 계획은, 그러나, 물거품이 되고 고기토는 자신의 집을 폭파 실험에 쓰도록 내놓지만 한 젊은이의 희생을 낳고 만다. 여기에 오에 자신의 문학관과 개인사가 갈피처럼 들어 있어 소설-소설 속 현실-실제 현실이 서로 범벅을 이룬다. 서은혜 옮김/청어람미디어·1만20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역사의 숨겨진 주역들을 찾아서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온달, 장보고, 임상옥, 신돈, 정여립, 홍경래, 허준 …. 출신과 직업과 시대가 상이한 역사 속 인물 30명이 재야사학자 이이화씨의 <한국사의 아웃사이더>에서 하나로 묶였다. “시대에 맞서 변혁을 꿈꾸고 신념을 좇아 주체적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다. 지은이는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 두번째인 이 책에서, “약전을 쓰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비주류 삶의 단면들을 ‘개혁’과 ‘집념’이란 잣대로 재해석하고 역사의 주역으로 복권시킨다.
넓은 세상과 소통을 꿈꿨던 점에선,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이나 하찮은 궁녀(무수리) 신분으로 갑신정변을 도왔던 고대수가 다르지 않다. 조선 왕조 최대의 반란 주도자인 이괄과 그 정벌의 선봉장이었던 임경업도, 대의를 세우려다 권력다툼의 희생양으로 스러진 내막을 들여다보면 서로 적일 수 없다. 세상의 문리와 우주의 이치에 밝았던 장영실은 관노에서 종3품 벼슬까지 올랐으나 기득권층은 그를 쫓아냈다. 당대에선 이후 행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후대는 그를 천민이 아닌 뛰어난 과학자로 뚜렷이 기억한다.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는 ‘서북 출신’에 ‘서자’라는 이중의 굴레에 분노하고 절망했기에 가난한 병자를 무료로 돌보고 의학사에 찬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지은이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역사를 풍부하게 하는 중요한 젖줄”이라고 말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 국민 피같은 돈, 누가 물같이 쓰나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256조원. 말이 쉽지, 뒤에 ‘0’이 12개 붙는다. 월급은 물론 술·담뱃값의 세금까지 모아낸, 대한민국 한해 살림밑천이다. 하지만 ‘내 돈’에 대해 발언할 권리는, 어렵고 전문적인 ‘그들만의’ 보고서에 의기소침해지기 일쑤다.
4년째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는 지은이가 대중을 위한 ‘예산비평’을 시도했다. 수요예측을 뻥튀기해 정치논리에 따라 지은 지방공항 10곳은 2006년에만 401억원이란 적자를 냈다. 보상비를 480억이나 들인 김제공항은 건설 중단 뒤 고구마밭으로 임대 중이고, 무안국제공항에서 환전하는 여행객은 하루 4명이다. 지자체들은 수많은 국제경기대회를 유치하지만, 중앙정부 예산 당겨오기에 바쁠 뿐 타당성 조사는 뒷전이다.
이뿐이랴. 배출가스 저감장치 사업은 4조원을 들인 대형사업. 시속 70㎞로 10분 이상 달려야 효과 있다는 이 장치는 제한속도 60㎞인 서울 시내버스 한귀퉁이에 얌전히 달려 있다. 민자사업에는 ‘최소수입보장’ 명목으로 한해 수천억원을 민간업체에 퍼주지만, 올해 처음 배정된 아토피·천식 예산은 27억원이 고작이다. 결국 예산은 로비력이 강한 이익집단의 밥인 셈이다. 예산을 기획·운용한 책임자를 명시하는 ‘예산실명제’, 시민 감시가 절실하다. 정광모 지음/시대의창·1만3500원.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책이여, 안녕!〉
오에 겐자부로는 죽음이 아닌 탄생을,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려는 작가다. 2000년 펴낸 <체인지링>을 시작으로 <우울한 얼굴의 아이>(2002)를 거쳐 그 스스로 ‘마지막 장편 3부작’이라 일렀던 연작의 마지막 편이 <책이여, 안녕!>이다. 오에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소설가 고기토, 건축가이되 ‘파괴하는 공법’을 연구하는 시게루가 짝패를 이뤄 국가폭력에 저항하려는 이야기가 소설의 등골이다. 국가의 거대폭력이란 핵무기를 이름이며 이에 맞서 ‘폭력의 원자’가 되려는 젊은이들을 인도하고 교육하는 ‘이상한 2인조’의 활약상을 담았다. 시게루는 개인 단위의 폭력 장치를 만들고 고기토는 그 과정을 기록한 소설을 쓴다. 인터넷을 통해 텍스트가 젊은이들을 만나면 누구나 핵무장한 국가체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가정이며 그것은 충격적이다. “우리의 폭파엔, 비폭력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 ” 도쿄 도심의 한 빌딩을 폭파하려던 계획은, 그러나, 물거품이 되고 고기토는 자신의 집을 폭파 실험에 쓰도록 내놓지만 한 젊은이의 희생을 낳고 만다. 여기에 오에 자신의 문학관과 개인사가 갈피처럼 들어 있어 소설-소설 속 현실-실제 현실이 서로 범벅을 이룬다. 서은혜 옮김/청어람미디어·1만20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역사의 숨겨진 주역들을 찾아서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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