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오래 지체했던 여름이 때 늦은 가을비의 재촉에 쫓겨 비로소 물러간 것인가. 출퇴근길 공기에서는 어느덧 오슬오슬 한기마저 느껴진다.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뒤로 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쩐지 마음이 스산해진다. 질정 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려 ‘가을 노래’를 듣는다. 사티의 <짐노페디>도 좋지만, 때가 때이니만치 차이콥스키의 <10월> 쪽으로 손이 간다.
쓸쓸하도록 깨끗한 타건은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지상으로 내려 앉는 나뭇잎의 하강을 묘사하는 것 같다. 땅에 내리기 전 나뭇잎은 한 줄기 바람에 실려 공중을 나부끼며 제 추락의 운명을 탄식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결국은 순한 짐승처럼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인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차이콥스키의 <10월>에서는 그리고 절집의 새벽 목탁 소리가 들린다. 황동규의 시 <시월>이 떠오른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이 시에 한동안 빠져 지냈다. 술자리에서 노래를 시키면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로 시작하는 이 시를 노래 대신 읊기도 했다. 정작 시인 자신은 이 시를 두고 ‘젊은이의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다. 젊음 특유의 겉멋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긴 시인이 아직 갓 스물의 대학 신입생이던 1958년 2월, <현대문학>에 실린 데뷔작이다. 그러니까, 50년 전이다.
“화자(話者)가 강가에서 시작해 마을로 들어갔다가 절로 올라가고,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구조”(황동규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 지닌 이 시의 마지막 줄은 다시 차이콥스키의 <시월>로 연결된다: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여기에서 낙엽의 하강은 추락의 비참함보다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이나 ‘강림(降臨)’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수반한다.
내친 김에 10월을 노래한 시들을 몇 더 읽어 본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이문재 <시월> 부분)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나희덕 <시월> 부분) 황동규 시의 화자가 낙엽의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반면, 이문재와 나희덕의 시적 화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가벼움은 결국 무거움을 떨치지 못하며, 물을 따라 흐르는 자유는 그리움의 간섭에 덜컥거린다. 그런 점에서 두 후배 시인들의 ‘시월’은 황동규 ‘시월’의 세속 버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헐린 제비집 자리 같”(문태준 <시월에>)은 10월도 어느덧 저물어 간다.
내친 김에 10월을 노래한 시들을 몇 더 읽어 본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이문재 <시월> 부분)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나희덕 <시월> 부분) 황동규 시의 화자가 낙엽의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반면, 이문재와 나희덕의 시적 화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가벼움은 결국 무거움을 떨치지 못하며, 물을 따라 흐르는 자유는 그리움의 간섭에 덜컥거린다. 그런 점에서 두 후배 시인들의 ‘시월’은 황동규 ‘시월’의 세속 버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헐린 제비집 자리 같”(문태준 <시월에>)은 10월도 어느덧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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