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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혀’ 표절 논란의 진실은

등록 2008-09-19 16:45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한동안 잠잠하던 문단의 표절 논란이 또 다시 불거졌다. 조경란씨의 장편 <혀>가 논란에 휘말렸다. 논란을 제기한 이는 최근 <혀>라는 동일한 제목의 단편집을 출간한 신인 작가 주이란(32)씨. 그는 2007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자신의 단편 <혀>를 당시 예심 심사위원이었던 조씨가 읽었으며, 장편 <혀>는 자신의 단편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주씨는 소설집 <혀>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두 작품이)제목만 같은 것이 아니라 조경란 소설가의 <혀>는 내 작품 <혀>와 주제, 소재, 결말이 비슷”하다며 “내 작품이 세상에 발표되기도 전에 심사위원이었던 사람이 내 작품의 정수인 ‘영혼’을 훔쳐다가 먼저 발표한 것”이라고 썼다.

주씨는 역시 소설집 <혀>에 실린 <촛불 소녀>라는 제목의 단편에서도 심사위원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한 작가 지망생의 억울한 처지를 다루고 있다. 그는 비슷한 사례가 문단에 만연하다면서 자신의 문제 제기로써 그런 ‘관행’에 제동을 걸겠노라는 각오다.

이에 대해 조씨는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신춘문예 심사 때 주씨의 <혀>를 읽은 기억이 없으며, 자신이 장편 <혀>를 구상한 것은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라고 반박한다. 그 사실을 입증해 줄 주변 사람도 있다면서, 주씨의 주장은 오해가 아니면 나쁜 의도를 지닌 ‘홍보전략’이라고 일축했다.

흔히 표절이라면 문장 베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문장 베끼기가 아니라, 말하자면 모티브와 발상의 도용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두 작품을 표절 관계로 볼 수 있는가. 조씨의 작품이 장편이고 주씨의 작품이 원고지 70장 분량의 단편인 만큼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조씨의 <혀>에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데, 주씨의 작품에는 한 사람의 주인공만 나온다. 조씨의 작품에서는 주인공 ‘나’가 자신의 애인을 빼앗아 간 여자의 혀를 잘라 요리해서는 옛 애인에게 먹이는 반면, 주씨의 작품에서는 미식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혀를 스스로 요리해서 먹는다.

조씨의 <혀>에 둘린 띠지에는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하는 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주씨의 <혀>에서도 맛보고, 거짓말하고, 사랑하는 혀의 세 가지 용도를 소제목으로 삼고 있다. 역시 두 작품의 유사성 내지는 표절 관계를 주장할 만한 대목이다. 물론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조씨가 심사위원으로서 주씨의 작품을 실제로 읽었는가, 그리고 그 당시 응모한 주씨의 작품이 지금 책으로 나온 <혀>와 동일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씨와 나머지 두 심사위원은 한결같이 <혀>를 읽은 기억이 없노라고 했다. 관행상 신문사는 응모작을 보관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지금 적극성을 보이는 쪽은 주씨다. 책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법적 절차 역시 밟고 있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조씨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신인 작가가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일으켜 주목을 받고자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진실은 어느 쪽에 있을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무의식적 표절(조씨) 또는 피해의식에 의한 과민반응(주씨)이 다른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셈인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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