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세 원로 비평가와 ‘말년의 양식’

등록 2008-08-29 20:25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2006)는 흥미로운 논점을 제출한다. 올 초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이 유작에서 사이드는 흔히 조화와 화해, 성숙, 평온함 등으로 요약되는 노년의 특징을 거부하는 몇몇 예술가들의 사례를 들며 이것을 ‘말년의 양식’이라는 틀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말년의 양식’이란 “예술적 말년성이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는 경우,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비생산적인 생산력을 수반하는” 양식을 가리킨다.

이런 ‘말년의 양식’ 틀을 한국의 원로 비평가들에게 대입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김승환 충북대 교수가 <오늘의 문예비평> 가을호에 기고한 ‘김윤식 유종호 김우창의 말년’은 바로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김 교수는 이스라엘 병사들을 향해 돌을 던졌던 2000년 7월의 에드워드 사이드에 주목한다. “(그런) 사이드의 말년은 평안함, 조화로움, 관용, 여유, 관조 등을 넘어서는 격정의 말년이었다.” 한국의 세 비평가를 말년의 사이드에 견주어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김윤식은 문학(비평)과 근대 국민국가 완성이라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불화한다. 비록 민족·민중문학론자들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이념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그는 문학을 근대(=국민국가)라는 틀을 통해 파악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문학비평가로서 문학의 독자성과 예술성을 옹호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김윤식과 문학은 팽팽한 긴장의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김 교수의 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한 ‘글로벌 시대의 문학’에서 유종호는 ‘성장의 신화’와 ‘혁명의 신화’를 동시에 비판했다. 세기의 전환기에 서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을 표방했으니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관점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김 교수가 보기에 이것은 “자본이 기획한 전략에 불과하다.” “근대 자본주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것은 결국 적당하게 타협하고 적당하게 중용과 균형을 지키면서 자유감성으로 인간을 표현하는 문학이 중요하다는 문학주의로 환원한다.”

김우창의 보편주의와 세계성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을 할 수 있다. 김우창 역시 2000년의 같은 행사에서 “문학이 자본주의에 종속됨으로써 문학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발화를 함으로써 자본에 투항한 작가들을 합리적으로 대변”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결론적으로 김 교수는 세 원로 비평가가 “자본에 저항하는 문학이 인간 수호의 진지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투항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의 문학주의가 독립적이고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력하거나 심지어 나쁘기까지 하다는 뜻이겠다. “세 비평가의 공통점은 자본주의적 근대와 세계화에 순응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타협하는 객체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병사를 향해 돌을 던졌던 말년의 사이드와 달리, 한국의 세 원로 비평가는 타협과 조화, 관조라는 고정관념으로서의 노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픈 지적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