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25일 저녁 서울 홍대앞에서는 ‘조금 특별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정홍수(45)씨의 첫 평론집 <소설의 고독>(창비)의 출간을 축하하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주최쪽이 일단의 소설가들, 그것도 여성 소설가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은희경 이혜경 김인숙 강영숙 하성란 천운영 편혜영 윤성희 등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소설가들이 이례적으로 한 평론가의 출판기념회를 마련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1996년 등단 이후 무려 12년 만에 처음으로 묶어 낸 이번 평론집은 물론 해설이나 계간평 및 월평의 방식으로 이 여성 소설가들의 작품을 대부분 다루고 있다(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책에는 김남일 성석제 윤대녕 전성태 같은 남성 작가들의 소설 역시 언급되어 있다). 책 제목에서 짐작되다시피 소설 평론에 주력하고 있는 평론가의 책인 만큼 그 점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겠다.
그보다는 이 책이 12년 만에 나왔다는 사실이 여성 소설가들을 움직이게 한 게 아닐까 싶다. 정홍수씨가 첫 평론집을 묶어 내는 데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은 그가 편집자 겸 출판인이라는 사정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대학에 자리잡고 비교적 여유있게 글을 쓰는 여느 평론가들과 달리 그는 등단 이전부터 편집자였으며, 자신의 출판사를 운영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시이오라기보다는 편집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하다. 1987년 편집 일을 시작한 이래 20년 넘는 세월 동안 200여 권에 이르는 남의 책을 내 온 끝에 비로소 자신의 첫 책을 갖게 된 셈이다.
이날 그는 “내 글쓰기는 소진이 때문에 시작됐다”고 고백했다. ‘소진이’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요절한 소설가 김소진(1963~1997)을 가리키거니와, 그의 데뷔 평론이 바로 김소진론이었다. 그 글에서 다룬 김소진의 첫 소설집 두 권은 편집자로서 그가 직접 만든 책이기도 했다. 김소진이 갑작스레 작고한 뒤에 나온 마지막 소설집도 그가 편집자이자 발행인으로서 펴냈으며, 1주기에 맞추어 낸 유고 산문집 역시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매년 기일이면 동료 문인들을 규합해 용인에 있는 벗의 묘소를 찾곤 했던 그는 10주기였던 지난해 4월에는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추모문집 <소진의 기억>을 엮어 내기도 했다.
다시 세월을 거슬러 가 보자면, 김소진의 1주기에는 그의 부인이었던 함정임의 소설집 <동행>도 나왔는데, 거기에 쓴 해설이 이번 평론집의 맨 끝에 배치되었다.
“김소진의 구상까지 얹어, 아비 없이 큰 한 소녀의 자의식을 아들 가진 여인의 자리에서 혼자 소설적으로 성숙시키는 일. 이 점의 자각이야말로 죽음과 맞서는 작가 함정임의 운명적 방법론이 아니었을까. ‘동행’이라는 제목에 담긴 저 육중한 무게는 그러니까, 개인 함정임과 작가 함정임이 나누어가짐으로써 겨우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평론 치고는 필자의 감정과 개인적 정황을 과도하게 노출한 이 글의 제목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출판기념회에서 이 느림보 평론가는 쑥스러운 듯 “이 책이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를 성원하는 여성 소설가들은 그의 두 번째 책 출간 기념회 역시 일찌감치 ‘예약’해 놓았다. 그것이 비록 또 다시 12년 뒤가 될지라도, 그렇다, 평론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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