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안도현씨의 널리 알려진 시 <바닷가 우체국>의 앞부분과 뒷부분이다. 호젓하고 낭만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편지와 우체국으로 상징되는 연결과 소통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그 안도현씨가 마침내 ‘문학집배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맨 먼저 떠오른 시가 바로 이 작품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문학나눔사무국에서 시행하는 ‘문학집배원’ 사업은 매주 한 차례씩 시와 산문을 32만 온라인 독자에게 공급하는 서비스다. 안도현 시인은 선배 ‘집배원’ 도종환 시인의 뒤를 이어 지난해 5월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시작으로 올 4월까지 모두 52편의 시를 ‘배달’했다. 허수경의 시 <혼자 가는 먼 집>의 구절을 제목 삼은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창비)는 그렇게 배달한 시 52편과 그에 대한 안 집배원의 짧은 감상을 묶은 책이다.
“선정 시의 기준은 ‘감동’입니다. 제가 받은 감동을 당신께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부디 당신도 감염되어 치유할 수 없는 시의 열병 속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시라는 열병을 전파하는 감동 바이러스가 되고자 한다. 감동이란 평상심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흔들린 상태를 이르고, 시란 건전한 상식과 고정관념의 파괴 위에 구축되는 것이다. 시 배달을 끝낸 시인은 지금 <한겨레> 토요일치에 ‘시와 연애하는 법’이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시를 어떻게 읽고 쓸 것인지를 안내하는 글인데, 말하자면 업그레이드된 시 배달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시의 가장 큰 적은 상투성이니까요. 죽은 할머니를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라고 말하는 것이 시의 화법입니다. 시적인 언어는 안일하고 규범적인 일상에 충격을 가합니다.”
“상투성은 시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대상을 피상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독버섯과 같다. 겉은 멀쩡한데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독을 품고 있는 것이다.”
앞의 인용문은 박제영 시 <늙은 거미>에 붙인 설명 글의 일부이고, 뒷글은 지난 7일치 <한겨레>에 실린 연재 4회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의 결별’의 한 대목이다. 상투성에 대한 경계에서 두 글은 한목소리를 낸다. 마찬가지로 박규리의 시 <그 변소간의 비밀>을 해설한 글 중 “늙은 변소는 사랑과 증오와 서러움을 다 거르고 삭혀서 세상에다 되돌려줍니다”라는 구절은 연재 3회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에 나오는 “똥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다”는 구절과 닮았다. “아예 몸속에 옹이처럼 박혀 몸하고 같이 사는 말, 건드리기만 하면 금세 서러움의 현을 건드려 울음으로 쏟아지고 마는 말,(…)상처의 딱지 같은 말, 독약 같은 말, 종교처럼 슬픈 말, 부서지기 쉬운 말, 그러다가도 촉촉해지는 말, 우리를 가두는 말,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말…”
강미정의 시 <참 긴 말>에 붙인 설명은 감동의 출발이 ‘사무치는 말’임을 알려준다. 시인의 안내를 좇아 각자에게 사무치는 말을 만나러 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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