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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한국문학 ‘충격 발언’

등록 2008-10-09 19:19수정 2008-10-09 19:59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지난 35년간 제가 읽은 한국 소설 중에는 퓰리처 상이나 부커 상 후보에 오를 만한 책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시도 마찬가지로, 위트브레드 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한 시집 또한 많았다고 할 수 없지요.”

대표적인 한국문학 번역가의 한 사람인 케빈 오록 경희대 명예교수의 ‘충격 발언’이다. 9일 오후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 주최로 열린 제2회 세계 번역가대회 이틀째 회의에서 나온 말이다. 그의 발언에서 언급된 퓰리처 상이나 부커 상, 위트브레드 문학상은 미국과 영국에서 시상하고 있는 문학상들이다. 한국 문학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이들에게 대뜸 구정물 한 바가지를 끼얹는 것 같은 발언임에 틀림이 없다. 그중 혈기방장한 이라면 대뜸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따지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발표를 몇 시간 앞두고 나온 오록 교수의 발언에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일은 아니다. 그의 말은 한국 문학에 대한 악감정이나 무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평생을 한국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고대와 현대의 한국 시와 소설을 열정적으로 번역해 온 전문 번역가이기도 하다.

오록 교수와 마찬가지로 한국 문학, 그중에서도 시를 전문적으로 번역해 온 원어민 번역가인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 역시 지난해 ‘창비 주간논평’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문학의 수준 미달과 비평 부재의 문단 풍토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은 바 있다. 오록 교수가 9일 발제에서 비판에 인색한 한국 문단의 ‘특수성’을 꼬집은 것 역시 지난해 안 교수의 글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 문학에 대한 고언은 번역가대회에 참가한 다른 번역가들한테서도 들을 수 있었다. 7일 낮 문학 담당 기자들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포르투갈어 번역가인 임윤정씨 역시 한국 문학을 향한 쓴소리를 토해 놓았다. “한국 문학은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며 섬세하다. 반면 중남미 문학은 지성적이고 냉철하다.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해 놓으면 순수와 서정, 섬세함 같은 장점은 모두 사라지고 얼핏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 문학은 지성적 측면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부인인 고혜선 단국대 교수와 함께 한국 문학을 스페인어로 번역해 온 프란시스코 카란사 페루 우나삼 대학 객원교수의 판단도 비슷했다. “중남미 독자들은 수준 높은 작가를 원한다. 한국의 작가와 독자들은 무턱대고 노벨상만 꿈꿀 게 아니라 우선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영어권 번역자인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 소설의 또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영어권 출판사는 주로 장편소설에 관심을 지닌다. 반면 한국 소설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두세 명의 작가에 집중해서 장편소설을 번역해야 한다.”

번역가대회의 날짜가 이즈음으로 잡힌 데는 당연히 주최 쪽의 의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발표에 편승해서라도 한국 문학의 좌표와 위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것일 테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향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윤지관 번역원장의 말이다. 한국 작가의 수상 여부와 무관하게 한글날에 발표된 노벨문학상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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