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용산 철거민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설명하고자 언론은 30년 전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1978)을 호출했다. 70년대 산동네에서 철거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서 소설을 썼던 작가 조세희는 병든 몸으로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아 이번 사태를 ‘학살’로 규정했다. 작가는 “30년의 세월이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설명 틀을 제공하는 <난쏘공>의 문학적 위대함을 기려야 할까, 아니면 아직도 <난쏘공>이 읽히는 시대의 남루를 애도해야 할까. 아니 그 이전에, 2000년대 도심 재개발과 철거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30년 전의 소설을 동원해야 하는 당대 문학의 빈곤을 탓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재개발조합과 긴 실랑이 끝에 건물주들은 보상금을 챙기고 마지못해 집을 내놓았지만, 쥐꼬리만 한 이주비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세입자들의 전쟁은 지루하게 지속되는 판이었다.(…)세입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버티는 싸움이고, 재개발조합 사람들은 먼저 떠나간 집들을 흉측하게 만들어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세입자들이 지치도록 유도하는 상황이다.”
조용호의 단편 <신천옹>의 한 대목이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우수작으로 실린 이 소설은 바로 용산 재개발 현장을 무대로 삼고 있다. “오랫동안 내 끼니를 해결해주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이 재개발과 철거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철거 대상 구역의 한 중소기업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주인공, 그리고 세상 각지를 떠도는 친구를 대비시키면서 정주와 유목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통찰로까지 작품은 나아간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그들의 눈앞으로 버스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4차선 도로를 봉쇄한 경찰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함성이 요란했다.(…)그렇게 걸어가는 그들을 향해 무전기를 든 경찰 하나가 두 팔로 X자를 만들어 보인 뒤, 오른손을 뻗어 길 뒤쪽을 가리켰다. Y씨와 그는 경찰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봤다. 또한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그것을.”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김연수의 단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의 마지막 대목이다. 고통이라는 화두를 저작하며 도심을 산책하던 두 사람이 경찰에 가로막혀 목격하게 되는 그것이 세상 모든 존재들의 고통의 응집체로서의 ‘촛불’임을 눈 밝은 독자들은 알아챌 수 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과 우수작이 촛불시위와 철거 문제를 간접적으로나마 다루고 있음은 일단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 정권 출범 이후 전개되고 있는 야만적 현실에 대한 문학적 응전이 충분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개별 작가들의 분발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그와 함께 진보 및 참여 문학운동의 구심체로서 한국작가회의의 활성화 역시 요망된다. 2007년 말 우여곡절 끝에 이름을 바꾼 한국작가회의는 그 이후 엄혹한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우호적인 세력이 집권하고 있던 지난 10년 동안 진보 문학운동은 저항과 참여에서 위안과 순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 주말 열리는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가 저항과 참여의 기치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개별 작가들의 분발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그와 함께 진보 및 참여 문학운동의 구심체로서 한국작가회의의 활성화 역시 요망된다. 2007년 말 우여곡절 끝에 이름을 바꾼 한국작가회의는 그 이후 엄혹한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우호적인 세력이 집권하고 있던 지난 10년 동안 진보 문학운동은 저항과 참여에서 위안과 순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 주말 열리는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가 저항과 참여의 기치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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