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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토지’가 물려준 ‘태백산맥’의 몫

등록 2009-02-12 17:37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마침내, <토지>를 끝냈다. 지난 연말을 목표로 착수했던 일이 결국 해를 넘기고서야 마무리된 것이다.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하고, 한편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다.

<토지>와 함께 보낸 날들은 행복했다-라는 건 너무 상투적인 표현일까? 사실 <토지>의 세계는 동화 같은 아름다움이나 병적인 다행증과는 거리가 멀다. 19세기 말부터 해방까지 반백년 가까운 이 소설의 배경은 흔히 민족사의 암흑기로 일컬어질 만큼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무렵이었다.

수난 받는 겨레의 일원으로서 <토지>의 구성원들 역시 신산고초의 삶을 살아야 했다. <토지>에서 민족사와 개인사는 굳건하게 연동되어 있다. <토지>의 구성원들에게-그러니까 작가에게 고통의 진원지인 일본은 가장 강력한 타자이자 핵심적인 화두이다. 그런 점에서 <토지>는 소설로 쓴 한 편의 방대한 일본론이라 할 수도 있다.

논구의 주제로서 일본의 본질은 소설 전체에 걸쳐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하겠다. 그러나, 특히 후반부로 가면서, 일본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견해는 거의 날것 그대로 비어져 나오곤 한다. 일본 및 일본인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는 조찬하와 유인실, 그리고 일본인 자신인 오가다 지로 등을 통해 다각도로 일본 비판론을 펼치던 작가는 서희와 길상의 큰아들로서 사려 깊고 점잖은 성격의 소유자인 환국으로 하여금 이렇게 일본을 저주하게 만든다: ‘씨를 말려야 해! 사람의 씨를 말리려 드는 일본이야말로, 그들 인종이야말로 씨를 말려버려야 해! 인류가 존속하기 위해선 제발, 그들은 이 지구에서 사라져야 해!’ 이것은 물론 패망을 앞두고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식민 통치 말기의 일본을 겨냥한 독백이지만, 이보다 몇 해 앞선 시점에서 지문 형태로 노출된 작가의 다음 발언에 곧장 이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 일본인은 언젠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 후일 세계에서 최초로 그들은 원자탄 세례를 받지 아니했는가.”

일제강점기를 점묘한 <토지>는 문학사적으로 보아 <북간도>(안수길)와 <태백산맥>(조정래)을 잇는 가교 노릇을 한다. <북간도>의 주인공들이 개척한 만주 벌판은 <토지>의 주요 무대가 되며, <토지>의 말미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지리산의 좌파 항일 투사들은 <태백산맥>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무너져가고 있는 일본, 느슨해진 후방, 이때야말로 우리가 나설 때 아닐까요?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대를 조직해야 합니다.…”


징용과 학병을 피해 지리산으로 숨어든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공산주의자 이범호의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특정 이념과 그에 근거한 무장 투쟁에 회의적이다. 우선은 일본이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는 싸움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일단락된 <토지>의 뒷이야기를 한번 가상해 보면 어떨까.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치면서, 일경의 하수인으로서 독립 투사들을 때려잡았던 거복이(두수)라든가 친일 자산가 두만 같은 인물들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다시금 득세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길상과 연학, 홍이 같은 항일 투사들은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결국 처형당하지 않았을까. 요는, 일제의 패망이 문제의 끝은 아니라는 말이다. <토지>의 위대성에도 불구하고 <태백산맥>이 감당해야 할 문학사적 몫은 엄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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