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경계가 되는 시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정의돼 있진 않지만, 한국에서는 흔히 대학시절을 ‘청춘’이라 부른다. 개개인의 삶의 맥락에서야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 사회가 나이에 따라 부과하는 권리와 의무를 중심으로 볼 때 이는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한국 사회는 구성원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자아니 몸이니 관계니 다른 발달 영역은 무시하고 좌뇌의 특정 영역의 발달만을 촉진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한다. 권리는 물론 ‘교육권’. 이 좌뇌 훈련 자체가 권리이자 의무다. 여기에 ‘아동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가 추가된다.
자아도 찾고 진로도 찾고 연애도 하고 스팩도 쌓고 학비도 벌고…
이십대 중후반,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취직, 결혼, 재생산(출산 및 육아) 등의 의무가 차례로 부과된다. 권리는 어디있냐고? 저 모든 ‘의무’들을 ‘권리화’ 시키는 것이 사회와 문화의 무서움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한국의 성인들은 혹독한 좌뇌 훈련 말고는 변변찮은 추억이며 기억도 없는데도 그나마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던 아동시절을 심심찮게 그리워 하곤 한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타임캡슐이 발명된다면 타겠는가? 하는 질문에는 쉽게 끄덕이지 못한다. 우리에서 사육되는 동물마냥 입시 공부를 다시 하기는 싫은데, 그걸 안하면 수능 수리영역이 한없이 9등급에 가까워질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대학시절, 이십대 초중반 몇 년 간 부과되는 의무와 권리는 뭘까? 답은 ‘저것들 빼고 전부 다’다. 대학 입학 전 입시 공부 외의 무언가를 할라치면 ‘대학가서 하면 돼’라는 말을 20년 간 들은 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하면 ‘어른’이 되어야 하는 죄로, 대학생들은 그 옛날 경제성장기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압축적 고도 성장’을 해내야 한다.
자아도 찾아야지, 진로도 찾아야지, 연애도 해야지, 그동안 미뤄왔던 ‘대학가서 하면 돼’라는 말 속에 포함된 모든 놀이욕구도 풀어야지, 여기에 대학들이 점점 ‘글로벌’이라든가 ‘대학 순위’라든가 하는 것들에 집착해서인지 점점 많아지는 대학 수업 과제들도 해결해야지, 취직을 위한 스펙도 쌓아야지, 아르바이트 하며 학비며 생계비도 벌어야지, 정말 미치도록 할 게 많다.
‘청춘’은 ‘원래’ 힘든 거라고들 하는데, 그런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은 모르겠고, 보다 검증 가능하고 명확한 것은 (편견과는 달리) 대학생들에겐 사회에서 부과하는 의무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압축적 고도성장’이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닐진대, 그것을 해내지 못해 오는 좌절감은 또 얼마나 클지. 이는 성장에 실패한 채 ‘어른’인 양 살아가는 이들로 성인의 대부분을 채운 한국 사회의 악순환의 고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닮은 점도 많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청춘
여기, 너무 다른 두 청춘이 있다. 하나는 일본 청춘만화의 대명사 <허니와 클로버>의 대학생 주인공들, 다른 하나는 지금 한국에서 잡지 연재 중인 <눈부시도록>의 대학생 주인공들. 시기적으로 보자면 <허니와 클로버>는 2000년~2007년 사이에 연재됐고 <눈부시도록>은 2010년부터 연재가 시작돼 <허니와 클로버>가 앞서 있지만, ‘청춘물’의 정석, 대학생들의 자아찾기 내지 진로탐색, 사랑(연애)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점은 똑같다. 주인공들은 여느 ‘청춘’들과 같이 자신들에게 던져진 과업에 힘겨워하지만 운 좋게도 그들을 지지해주는 괜찮은 어른들 또는 주변인들이 곁에 있는 구도도 흡사하다.
닮은 점이 많은데도 불구, 두 작품의 주인공들의 살아가는 태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허니와 클로버>의 주인공들이 괴로워하면서도 진로든 사랑이든 수많은 삽질 속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데 반해 <눈부시도록> 의 주인공들은 세상 다 산 것 같은 시들시들한 태도이거나 삽질 따위 안 하는 영악함을 과시하며 ‘희망’보단 ‘포기’를 더 많이 생각한다. 어느 쪽을 더 현실적이라고 느끼고 어느 쪽에 더 공감할지는 물론, 개인적인 문제다.
같은 집에 하숙하는, 학년도 전공도 제각각인 5명의 미대생
<허니와 클로버>는 다섯 명의 미대생 다케모토, 하구미, 모리다, 야마다, 마야마의 성장담이다. 순박하고 손재주가 있지만 눈에 띄는 재능도 목표도 없는 주인공 다케모토는 한 학년 아래 ‘천재 소녀’ 하구미를 만나 짝사랑에 빠지지만 재능과 사랑, 두 방면에서 모두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느낀다. 뛰어난 예술 재능을 가진 하구미는 ‘행복한 인생’과 예술을 좇는 인생 사이의 충돌을 겪는다.
역시 예술 재능이 뛰어난 모리다는 자유분방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하구미와 마찬가지로 재능으로 인한 ‘업보’를 지고 있다. 마야마는 재학 중 가장 흔들림 없이 진로설계를 해 유명한 건축사무소에 취직하지만 대학시절부터 이어져 온 짝사랑으로 인해 쁘띠 스토커 상태다. 야마다는 졸업 뒤 바로 취직하진 못했지만 연구생으로 남아 계속 인상적인 도자기를 구운 덕에 착착 일거리를 늘려간다. 문제는 마야마. 짝사랑을 포기 못하는 마야마를 짝사랑하며 마야마와 같은 세월동안 마음을 다친다.
학년도 전공도 제각각인 다섯 주인공들은 같은 하숙집에 산다든지 같은 교수와 친하다든지 하는 우연한 계기로 둘도 없는 인연이 되어 대학생활과 그 이후 몇 년 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 사랑의 작대기가 얽히고 개인적인 고민들로 살짝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대학시절 거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을 함께 하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 이들의 성장기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렸는지, 일본에서 영화화, 드라마화, 애니메이션화 되며 인기를 끌었다.
타고난 재능은 접고 대학 갔지만 찌질한 알바인생
<눈부시도록>은 대학에 갓 입학한 주인공 석린과 그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학생들을 다룬 것은 맞지만 ‘캠퍼스 라이프’가 초점은 아니다. 동생의 과도한 음악유학 비용으로 인해 대기업 사원인 아버지를 두고도 아르바이트에 찌들어 사는 석린에게 학교는 잠깐 들렀다 오는 곳에 가깝다. 아직 전공도 결정되지 않았고 몰려다니는 친구들은 몇몇 있지만 동아리 등 대학 내에서의 거점은 없어 보인다. 이야기는 석린의 아르바이트처인 샌드위치 가게 알바생 희안, 유채, 하륜과 샌드위치 가게 주인 시현과 시열 남매 등의 인연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석린은 고등학교 때 미술 재능을 발견하지만 ‘일단 접고’ 공부에 몰입해 명문대 인문학부에 진학했다. 대학에 입학하니 아르바이트는 고되고 학점 따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미련은 있지만, 석린은 자신의 재능을 ‘보잘 것 없다’고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을 계속하며 포기해 나간다. 희안을 좋아하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고 ‘일상의 활력’ 쯤으로 위치시켜 바라보기만 한다.
착하고 성실한 희안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 자신의 노래 재능을 억눌러왔다. 그러나 연애로 인한 ‘한 번의 일탈’도 아버지는 용납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기대를 거두고 연인에게도 뒤통수를 맞은 뒤 그는 휴학을 반복하며 중심 잃은 삶을 산다. 희안은 석린을 곁에서 지켜보고 안타까워하며 그녀의 재능을 지켜주고자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천재와 천재 아닌 자의 넘을 수 없는 벽
<허니와 클로버>는 어찌보면 재능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처럼 <허니와 클로버>에도 천재와 천재가 아닌 자 간의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나름대로(!) 순정만화임에도 사랑으로 전혀 극복이 안되는. 그리고 이 경우 언제나 고민은 재능이 없는 자의 몫이다.
<허니와 클로버>에는 두 천재가 등장한다. 하구미와 모리다. 압도적 재능을 가진 이 둘은 그저 그리고 조각할 뿐인데도 세상이 그들의 작품에 알아서 값을 매기고 상을 준다. (모리다의 경우는 집안 사정으로 돈벌이가 되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선 돈이나 명예와 타협하지 않는다)
특히 하구미는 만화 내내 외부와 거의 갈등 없이 오직 자기 자신과만 싸운다. 그녀는 내레이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만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속내를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린아이 같은 외모에 몸도 약하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그녀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흔들리지 않는다.’ “신에 맹세했다.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는 날 이 목숨을 가져가도 좋다고.” 그녀의 인생엔 이미 답이 나와 있으며 일생을 함께 할 동반자며 재능을 펼칠 무대며 하는 몇 가지 사소한 것들만 결정하면 된다.
평범함의 좌절 끝에 ‘확실한 자기만의 것’ 찾아나서
하구미를 지켜보며 갈등하는 인물이 이 만화의 주인공, 순박하고 뭐든 열심이지만 결국엔 ‘평범’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다케모토다. 그는 첫 눈에 하구미에게 반하지만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는데 그녀가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구미의 고민과 좌절은 오직 그림에 관한 것뿐. 애초에 남에게 조언을 구해서 풀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녀가 끝까지 고민할 수 있도록 ‘고민할 힘’을 불어넣어 줄 물질적, 심적 지지뿐이다. 심지어 그녀 곁에는 그녀를 전면적으로 서포트해주는 5촌 오빠, ‘교수님’이 있었고 다케모토는 그조차도 보조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다케모토가 보기에 같은 천재인 모리다는 그녀의 내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모리다와 하구미는 함께 있는 시간도 적고 말한 횟수도 적지만 ‘뭔가 통하는 듯한’ 느낌으로 그려진다. 둘은 서로의 재능에 이끌린다. 다케모토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하구미와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어주고 그녀가 원하는 가구 미니어처들을 만들어주며 그녀 주변에서 소소한 서포터로 머물지만, 결국 자신은 그녀의 이해자가 될 수 없음에 좌절감을 느낀다.
다케모토의 이 갈등이 좌절만 남긴 것은 아니다. 재능의 강렬한 빛을 목도한 그는 더욱 더 ‘확실한 자기만의 것’을 갈구하게 된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무난한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는 것만을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그의 인생에 ‘자아 찾기’의 욕구가 분출된 순간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충동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으로 시작해 땅끝마을까지 달린 자아찾기 여정은, 이 만화를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청춘만화’로 부르게 한다.
희미해진 재능에 대한 진혼곡…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허니와 클로버>가 자아를 찾는 열정 가득한 여정이라면 <눈부시도록>은 희미해진 재능에 대한 진혼곡에 가깝다. 하구미와 모리다의 재능이 전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피카소, 사라 브라이트만 정도의 재능이라면 <눈부시도록>의 석린의 미술 재능은 검증받을 기회조차 없이 사그라진 미련이며 희안의 재능은 한국에서 ‘아는 사람은 아는’ 인디 가수 정도의 재능이다. 각각 대학 입시와 과학고 입시를 겪으며 부모의 손에 잘려나간 석린과 희안의 재능은 그 자신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둘은 하구미와 모리다처럼 재능 앞에서 삶을 불사르지 않는다. 다케모토처럼 자아찾기 여정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저 때때로 자기 연민으로 아쉬워하고 눈물 흘린다..
석린과 희안 앞에도 모리다와 하구미 같은 ‘천재’가 있다. 인디 음악 작곡가 규원이다. 다케모토가 압도적 재능과 더불어 돈이나 명예 같은, 그들에게 사회가 지불한 대가를 동시에 본다면, 석린과 희안은 재능은 목도하지만 사회가 지불한 대가는 보지 못한다. ‘천재’임에도 규원은 밥벌이 안되는 음원 수입 탓에 음악과 관계없는 회사에 다니며 그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안 팔리는 음악가에 예술은, 돈을 벌어들이긴커녕 돈이 드는 취미에 더 가깝다. 이를 지켜보는 석린이 자신의 자그마한 그림 재능을 거듭거듭 포기하자고 다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딱히 다른 삶의 목표도 없으면서 재능에 헌신하지도 않는 두 사람을 ‘청춘이 아니다’ ‘용기가 없다’라며 타박할 수 없는 이유다.
‘진혼’은 온 가족의 기대를 짊어지고 온 집안의 돈을 훑어 음악 유학을 간 석린의 동생 석영이 집으로 보내 온 편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빠, 재능은 양초와 같은 거야.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굵기나 길이는 전부 달라. 이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난 여기까지야.” 기대에 보답하려 우울증까지 겪으며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안 되는 건 안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는 다케모토를 통해 평범한 사람도 ‘자기만의 소박한 재능’을 찾아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줬지만, <눈부시도록>은 ‘어정쩡한 재능으로 뭘 할래?’ 라며, 석린과 희안의 부모가 그들을 다그쳤듯이 현실의 좀 더 각박한 부분을 눈앞에 들이댄다. 그 앞에서 석린과 희안은 가지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채, 어느 것에 노력해야 할 지도 정하지 못한 채, 그것을 정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떠돈다.
김효진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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