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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20대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

등록 2014-01-09 12:14수정 2014-01-09 15:12

청춘만화<2> <허니와 클로버><눈부시도록> 
죽어라고 해야할 생애 과업인데 죽어라고 안해
돈 시간 취업…, 그보다 더 속의 생각이 문제다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어릴 적 배웠던 ‘가난한 사랑 노래’에서처럼, 가난? 내 주변 수많은 유부남들의 한탄처럼, 결혼?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고 싶은 결혼 적령기 남녀들에게는, 조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30대 이상이 되어 결혼을 하고 나면 드라마에서 나오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은 통상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 같다. 아내나 남편을 헌신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고, 법적인 문제를 떠나 사랑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사회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람으로 취급된다. 사회에서 그들에게 부여하는 생애과업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10대 때는 죽어라 공부만 하는 것이 생애과업으로 지정돼 있듯이, 30대가 되어 결혼하고 직장을 잡은 뒤에는 죽어라 일해서 회사의 톱니바퀴가 되고 아이를 낳고 길러 사회 구성원을 훌륭하게 재생산하는 것이 생애과업이 된다.

10대의 과업 공부와 30대의 과업 결혼 사이

사랑이니 연애니 온갖 낭만적인 말들로 포장돼 있던 ‘결혼’은, 일단 하고 나면 사회의 기초 구성 단위를 이루기 위한 과업에 불과하게 된다. 사회는 그 전 30년 간 그들에게 시킨 교육과, 소비며 연애 영역에서 부여해 준 약간의 자유를 밑바닥부터 회수하기 시작한다. 가정을 설립하고 회사의 일원이 되어 사회구성원이 될 것, 사회를 이루는 기초 단위 중 하나가 될 것, 그것만이 요구된다. 그들의 인생에는 이제 개인적인 기쁨이나 성장,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이 가능했던, 그들이 유일하게 ‘개인’이었던 ‘청춘’을 미화하고 그리워하며, ‘요즘 20대’에게 훈계를 일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나, 힘없는 20대가 사랑을 하지 않는 삶을 택하도록 세상을 쥐고 흔드는 것은 바로 그 자신들인 것을.

20대는 사랑이며 연애를 사회에서 생애과업으로 부여하는 유일한 시기이다. 사회는 20대 초반에는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랑도 ‘연애’라는 형태로 허용할 정도로 담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른들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것이, ‘요즘 20대’들은 이 아까운 시기를 뜨거운 사랑 한 번 없이 흘려보낸다. ‘왜 사랑을 안 하니?’ 어른들의 문제제기에 대다수의 20대들은 침묵했고 몇몇 20대가 답했다. ‘저희 취업 때문에 바빠요. 등록금이 너무 비싸 아르바이트 하느라 시간이 없어요.’ 취업, 등록금, 아르바이트. 어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얘기인 돈 얘기에 어른들은 쉽게 납득했다. ‘아, 시간과 돈의 문제구나.’

쓸모 없는 감정…헌신보다 그냥 보고 소비

<눈부시도록>의 주인공 석린은 딱 그런 20대다. 석린은 첫 눈에 희안에 반하고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되지만, 결코 다가서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도 벌어야 하고 학점을 올려 장학금도 타고 싶은 그녀에게 눈앞에 나타난 사랑은 아무 쓸모도 없다. 그녀는 사랑에 헌신하기보다 사랑을 소비하는 방식을 택한다. 희안의 눈에 들려 노력하며 사랑에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멀찍이 희안을 바라보며 ‘일상의 활력소’로 위치시킨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수업도 듣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것보다 학점 잘 주고 시간이 맞는 것 위주로 듣고 있다. 아직 전공 선택도 못했고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모든 것을 훑어 미국 유학 중인 동생은 때로 이메일을 보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석린의 그림 재능은 무시한 엄마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동생을 따라갔다. ‘알아서 잘하는 큰 딸.’ 씁쓸하고 무책임한 타이틀만 석린에게 남겨둔 채.

스무 살에 불과하고, 명문대생이고, 중산층 출신인 석린, 즉 그간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자란 석린은, 바로 그 때문에 가정과 사회에서 한국적 모순을 듬뿍 안고 이미 지쳐 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희안을, 그 상태 그대로 놔 두고 싶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랑에 안달복달하며 작은 기쁨과 커다란 괴로움을 함께 안기 보다는, 방 안에 들여 놓은 아름다운 화분처럼 그저 한 번 보고 흐뭇하게 웃는 것이 낫다.

짝사랑이든 뭐든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

반면, <허니와 클로버>는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난다. 주인공 다케모토는 2학년 봄, 신입생으로 입학한 하구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소위 말하는 고백-허락의 과정을 거쳐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다케모토는 아무리 괴로워도 자신의 길을 향해 똑바로 걸어나가는 그녀를 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은 하구미가 그녀의 존재 자체로서 다케모토에게 던진 질문이다. 어렵사리 진로를 결정한 다케모토는 대학을 떠나며 결국 하구미에 대한 사랑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야마와 야마다의 짝사랑은 애잔하다. 본인들을 성장시키지도 않고 계속 괴롭힐 뿐이지만, 거절당해도 앞 뒤 안 가리고 사랑에 뛰어들어 그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 우위에 두는 삶의 방식은 상대방의 재력이며 나의 커리어며 요모조모 재는 돈에 찌든 ‘어른들’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몇 년이 지나도 한 사람에게 매달리고 친구 관계도 깨질까봐 머뭇거리고 그래도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강의동 앞을 서성대고 그림자라도 보고 싶어 그 사람의 집 앞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그 집 창문을 바라보는 방식의 열정적이며 자학적인 사랑. 학생 시절이 지나면 곧 찾아오는 ‘결혼적령기’의 조급함에 더 이상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삽질과 괴로움으로 점철된 짝사랑을 마야마와 야마다는 이 작품 내내 견딘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이 불어났던 특정 시기에 보편적으로 가능했다고 여겨지며, 지금도 사람에 따라서는 가능한 ‘청춘’의 사랑이다.

답이 없는 질문…설득할 언어가 아무 것도 없다

왜 생애과업에 ‘사랑’이 포함돼 있는 20대조차 사랑에 헌신하지 않게 된 걸까? 돈 문제일까? 돈 문제이고 취업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 조건들보다 ‘속’이 더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사랑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라는 사고방식 속에 살게 됐다. ‘목적’을 이루어주는 즉각적인 수단 외에 다른 것들, 사랑, 봉사, 믿음, 슬픔 같은 것들을 무엇에 써야할지 알 수 없게 됐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 가치들은 원래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많은 ‘목적들’에서 돈을 버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는 목적들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탈락됐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목적’이라는 단어는 이전에는 수많은 ‘목적들’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제 그 의미는 삭제된 채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게 됐다. 20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그 틀 안에서 살아 왔다.

사랑이 어떻게 목적이 될 수 있는지,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는 아무 것도 없다. 아무리 들어도 ‘오글거릴’ 뿐이다. 실은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그 틀은 단순하고 시시한 것이며, 어딘가 더 따뜻하고 완전한, ‘가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추억팔이 식의 ‘말’로는 절대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20대들은 그 틀을 말로 배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힘, 자신을 짓누르는 힘으로 배우고 감지한 것이니까.

김효진기자 july@hani.co.kr

▶김효진의 만화가게 아가씨 http://plug.hani.co.kr/toon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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