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인간이 서로 평등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답인 것 같은데 왜 타인을 차별하는지가 늘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가 비주류와 소외된 삶을 발굴하고 ‘영웅 만들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사진 이유진 기자
지금 집필중 ① 강명관 부산대 교수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학술서와 번역서들이 있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등이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지식 생산에서 눈에 띄는 저서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출판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학술지의 논문이 책 저술보다 더 대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학 안에서는 인문학이 실종되고 밖에서는 대중인문학이 ‘유행’하고 있는 이 시대, 자신만의 속도와 시각으로 돋보이는 학술서와 인문학 저서를 집필중인 학자들, 인류사회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을 번역하는 사람들을 미리 만나본다.
입춘을 하루 앞둔 캠퍼스 안 벚나무 가지엔 벌써 빨간 물이 오르고 있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좌식으로 꾸민 연구실을 미리 데워놓고, 직접 내린 원두커피를 권했다.
공부밖에 모르는 천생 학자다. 매일 새벽 너댓시에 일어나 책을 읽는 지독한 진지함과 성실성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1997)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낸 25권의 단독 저서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의 ‘파워 라이터’로 평가받는다.
강 교수는 올해 언론과 출판계가 고대하는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홍대용 평전>이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담헌 홍대용(1731~1783)의 공과를 200자 원고지 4000매 분량에 담아낼 예정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영웅 탄생’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짐작한 것과 다를지 모른다. 강 교수는 이번 책을 “홍대용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를 과학자다, 천문학자다, 수학자다 하는데 재점검이 필요하다. 어린이 위인전을 보면 홍대용이 가난한 선비 집안 출신이라는데 순전히 거짓말이다. 그의 집안은 ‘갑족 중의 갑족’인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다. 평등주의자였다고 하지만, 이도 검토해봐야 한다. 자부심이 머리 끝까지 차있었고, 백성을 엄혹하게 통치하는 강력한 국가를 주장했다.”
강 교수에게 홍대용은 청을 오가며 조선에 충격을 던진 지식인일뿐 아니라 ‘엄격한 도덕주의자’다. 자신은 중국을 넘나들었지만 백성은 몸에 문신을 새기고,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둑질을 세번 하면 즉각 죽여야 한다고 할 정도로 냉혹했다. 백성에게 갈 돈을 가로챈 것이 들통나 전전긍긍한 기록도 있다고 한다. 그가 쓴 수학책 <주해수용>은 온전한 학술서나 참고서라기엔 무리가 따랐다. “과학자, 수학자, 사상가로서 그의 모든 것을 재통합하되 과거 지나친 의미부여에서 벗어나 당시 동시대적인 맥락에서 그를 읽어주자는 것이 이 ‘평전’의 목적”이라고 강 교수는 말했다.
학계·출판계 주목받는 홍대용 평전
합리적 주자학자 정조 톺아보기도
과거 정확히 봐야 해석 풍부해져
새벽 네댓시 일어나 책 읽는 성실함
“인문학은 원래 불온한 것
학문은 자본·국가에서 자유로워야” 이렇듯 그는 ‘역사’가 과대평가하거나 그릇된 인식을 재생산해온 인물의 제자리 찾기에 몰두해왔다. “과거를 정확하게 보면 해석도 더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조 또한 계몽군주가 아닌 합리적 주자학자로서 <가을의 황혼>(가제)이란 책에서 재조명할 계획이고, <신태영의 이혼>이란 책도 동시에 준비중이다. 신태영은 숙종 때 인물로, 남편 유정기가 이혼 소를 내자 비첩(노비로서 첩이 된 여자)을 둔 남편의 성적 취향을 폭로하며 맞섰다.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에 저항한 주체로서 여성의 전략적 대응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지식의 탄생, 유통, 소비의 역사를 톺아보아온 그는 한문(학)을 전근대사회의 지배도구로 평가한다. 지배층인 양반 남성들은 지식을 독점하면서 여성과 백성의 복종 윤리를 요구했다. 이에 그는 양반 남성이 아닌 ‘개인’, 특히 묻혀있던 ‘비주류 인생’의 발굴과 복원에 힘을 기울였다. 인문 대중서로서 드물게 1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조선의 뒷골목 풍경>(2003)에서 그는 탕자, 도박꾼, 도둑, 기생의 삶을 되살려냈다. 명료한 문장을 쓰는 강 교수는 지루한 논문 형식을 벗어난 문체를 강조한다. “정통 고문을 벗어난 연암의 글쓰기는 열렬히 찬미하면서, 판에 박힌 논문의 형식과 문체란 우상은 왜 그리 섬기고 있는가.” ‘우상’ 대신 그는 피지배, 착취, 차별에 집중한다. 차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장자를 우대하는 아버지에게 “차별하지 말라”며 대들어 혼쭐이 났다. 국어교육과를 나왔지만 주류인 국문학을 일부러 피해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선택했다. 석사 논문을 쓸 땐 양반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계급의 성격을 찾으려고 중인·경아전 등이 주체인 여항문학을 주제로 잡았다. “중세 귀족에 대항한 부르주아와 비슷한 중인 문학을 연구했는데 당혹스러웠다. 그들은 경제적·문학적 능력에 견줘 차별받았지만 양반 계급에 대한 적대의식, 독립적 의식이 없었다.” 그는 실학이 근대의 출발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지배-피지배의 구도를 인정하며 발전했다”는 점 때문이다. 국민국가의 국민 만들기에 동원된 ‘영웅서사시’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은 민족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론 여성의 ‘시집살이’가 시작되고 상속에서 배제되며 수절이 일반화한 계기였다. 민족 중심의 역사관(메타 히스토리)은 이런 점을 삭제한다. 민족-영웅이란 주어가 개인의 개별성을 삼켜버린다는 것이다.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2007)는 그의 이런 생각을 알려주는 대표작이다. 사실 이 책은 그가 2002년 4월 극심한 과로 탓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머릿 속으로만 썼다가 회복 뒤 펴낸 것이다. 한국 민족주의는 일제강점기 저항적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있지만, 지금은 판타지로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계급성을 은폐하는 강한 국가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그는 풀이한다. 직설이다. “왜 인간이 인종·성별·나이로 타인을 차별하는가. 미셸 푸코의 말처럼 정치권력부터 일상까지 발견되는 권력의 논리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 없었다.” 한문학자로서 국문학,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을 넘나드는 까닭이다. 1993년 임용 뒤 연구실에 틀어박혔던 그가 2012년 7월 처음으로 ‘문 밖’ 출입을 하게 된다. 동료 교수들과 7달 동안 총장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인 것이다. 직선제를 지켜내겠다던 총장은 선출 뒤 교육부의 압력을 이유로 공약을 번복했다. 점거농성 때 본 ‘대학의 민낯’은 충격이었다. 큰 내상을 입고 건강도 악화되었다. “대한민국 대학이 기업논리에 종속된 실업자 양성기관이 됐다. 대학원이 붕괴하고, 시간강사를 착취한다. 대학 내 민주화로 직선제를 쟁취한 것을 잊고 수십억 돈에 민주주의를 팔아먹었다.” 2013년엔 자본과 국가의 통제 아래 학문이 시들어가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침묵의 공장>을 펴냈다. 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으려고 대학은 연구비 확보에 광적으로 돌입했다고 지적했다. 연구 내용까지 관리되니 연구 주제도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강진 유배지에서 다산이 ‘시골’ 지식인으로 구성된 학단을 학문적 자발성과 신뢰로 움직였듯이 대학의 인문학도 자본, 국가, 테크놀로지로부터 해방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국가는 억압으로 존재한다. 권력의 총화이자 폭력의 독점체다. 국가가 은혜로우면 세월호에서 애들이 왜 빠져죽었겠나. 우린 국가에 중독된 것이고, 국가의 노비다. 학문 자체가 자유다. 학문의 자유가 종속되는 한, 본래 불온성을 가진 인문학도 제 길을 갈 수 없다.” 부산/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합리적 주자학자 정조 톺아보기도
과거 정확히 봐야 해석 풍부해져
새벽 네댓시 일어나 책 읽는 성실함
“인문학은 원래 불온한 것
학문은 자본·국가에서 자유로워야” 이렇듯 그는 ‘역사’가 과대평가하거나 그릇된 인식을 재생산해온 인물의 제자리 찾기에 몰두해왔다. “과거를 정확하게 보면 해석도 더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조 또한 계몽군주가 아닌 합리적 주자학자로서 <가을의 황혼>(가제)이란 책에서 재조명할 계획이고, <신태영의 이혼>이란 책도 동시에 준비중이다. 신태영은 숙종 때 인물로, 남편 유정기가 이혼 소를 내자 비첩(노비로서 첩이 된 여자)을 둔 남편의 성적 취향을 폭로하며 맞섰다.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에 저항한 주체로서 여성의 전략적 대응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지식의 탄생, 유통, 소비의 역사를 톺아보아온 그는 한문(학)을 전근대사회의 지배도구로 평가한다. 지배층인 양반 남성들은 지식을 독점하면서 여성과 백성의 복종 윤리를 요구했다. 이에 그는 양반 남성이 아닌 ‘개인’, 특히 묻혀있던 ‘비주류 인생’의 발굴과 복원에 힘을 기울였다. 인문 대중서로서 드물게 1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조선의 뒷골목 풍경>(2003)에서 그는 탕자, 도박꾼, 도둑, 기생의 삶을 되살려냈다. 명료한 문장을 쓰는 강 교수는 지루한 논문 형식을 벗어난 문체를 강조한다. “정통 고문을 벗어난 연암의 글쓰기는 열렬히 찬미하면서, 판에 박힌 논문의 형식과 문체란 우상은 왜 그리 섬기고 있는가.” ‘우상’ 대신 그는 피지배, 착취, 차별에 집중한다. 차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장자를 우대하는 아버지에게 “차별하지 말라”며 대들어 혼쭐이 났다. 국어교육과를 나왔지만 주류인 국문학을 일부러 피해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선택했다. 석사 논문을 쓸 땐 양반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계급의 성격을 찾으려고 중인·경아전 등이 주체인 여항문학을 주제로 잡았다. “중세 귀족에 대항한 부르주아와 비슷한 중인 문학을 연구했는데 당혹스러웠다. 그들은 경제적·문학적 능력에 견줘 차별받았지만 양반 계급에 대한 적대의식, 독립적 의식이 없었다.” 그는 실학이 근대의 출발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지배-피지배의 구도를 인정하며 발전했다”는 점 때문이다. 국민국가의 국민 만들기에 동원된 ‘영웅서사시’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은 민족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론 여성의 ‘시집살이’가 시작되고 상속에서 배제되며 수절이 일반화한 계기였다. 민족 중심의 역사관(메타 히스토리)은 이런 점을 삭제한다. 민족-영웅이란 주어가 개인의 개별성을 삼켜버린다는 것이다.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2007)는 그의 이런 생각을 알려주는 대표작이다. 사실 이 책은 그가 2002년 4월 극심한 과로 탓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머릿 속으로만 썼다가 회복 뒤 펴낸 것이다. 한국 민족주의는 일제강점기 저항적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있지만, 지금은 판타지로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계급성을 은폐하는 강한 국가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그는 풀이한다. 직설이다. “왜 인간이 인종·성별·나이로 타인을 차별하는가. 미셸 푸코의 말처럼 정치권력부터 일상까지 발견되는 권력의 논리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 없었다.” 한문학자로서 국문학,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을 넘나드는 까닭이다. 1993년 임용 뒤 연구실에 틀어박혔던 그가 2012년 7월 처음으로 ‘문 밖’ 출입을 하게 된다. 동료 교수들과 7달 동안 총장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인 것이다. 직선제를 지켜내겠다던 총장은 선출 뒤 교육부의 압력을 이유로 공약을 번복했다. 점거농성 때 본 ‘대학의 민낯’은 충격이었다. 큰 내상을 입고 건강도 악화되었다. “대한민국 대학이 기업논리에 종속된 실업자 양성기관이 됐다. 대학원이 붕괴하고, 시간강사를 착취한다. 대학 내 민주화로 직선제를 쟁취한 것을 잊고 수십억 돈에 민주주의를 팔아먹었다.” 2013년엔 자본과 국가의 통제 아래 학문이 시들어가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침묵의 공장>을 펴냈다. 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으려고 대학은 연구비 확보에 광적으로 돌입했다고 지적했다. 연구 내용까지 관리되니 연구 주제도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강진 유배지에서 다산이 ‘시골’ 지식인으로 구성된 학단을 학문적 자발성과 신뢰로 움직였듯이 대학의 인문학도 자본, 국가, 테크놀로지로부터 해방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국가는 억압으로 존재한다. 권력의 총화이자 폭력의 독점체다. 국가가 은혜로우면 세월호에서 애들이 왜 빠져죽었겠나. 우린 국가에 중독된 것이고, 국가의 노비다. 학문 자체가 자유다. 학문의 자유가 종속되는 한, 본래 불온성을 가진 인문학도 제 길을 갈 수 없다.” 부산/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강명관 교수는
1958년생.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 한문학과 조선시대 인물 제자리 찾기, 지식사, 풍속사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해왔다.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1997)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1999)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2001) <조선의 뒷골목 풍경>(2003) <공안파와 조선 후기 한문학>(2007) <안쪽과 바깥쪽>(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2007)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2007) <한양가>(2008) <열녀의 탄생>(2009) <조선풍속사 1, 2, 3>(2010)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2012) <침묵의 공장>(2013)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2014) <홍대용과 1766년>(2014) 등을 썼다.
연재지금 집필중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