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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주권자 ‘앎의 질’이 ‘민주주의의 질’을 결정합니다”

등록 2015-06-18 21:24수정 2015-07-17 08:41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열정 가득한 어조로 3시간여 동안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설명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과 앎에 대한 추구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냐고 묻자 “둘을 결합시켜왔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때문에 책을 못 쓰는 것이 갈등 요인”이라며 웃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열정 가득한 어조로 3시간여 동안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설명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과 앎에 대한 추구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냐고 묻자 “둘을 결합시켜왔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때문에 책을 못 쓰는 것이 갈등 요인”이라며 웃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금 집필중 ⑦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일찌감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뛰어들었다면 적잖은 논쟁거리를 낳았을 강단 있는 ‘글빨’‘말빨’의 소유자다. 지난해 12월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서는 “유신을 떠올린다”(<한겨레> 2014년 12월20일치 23면)며 곧장 일갈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찾은 그의 연구실은 지도학생과 손님으로 북적였다. 일정이 빠듯해 보였다. 민주시민교육, 인권 강의와 각종 토론회까지 청하는 곳이 많은데다, 매주 하루는 온종일 논문학기 대학원생 스터디 모임에 매달린다. “후학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서비스”라고 했다. 지난 13년 동안 이 모임에서 석사 20명, 박사 4명이 배출됐다.

메르스 유행으로 외부 강의가 대폭 취소된 틈을 타 탈고하기로 결심한 중요 저작이 있다. 1000쪽이 넘는 ‘21세기형 민주주의 시민 교과서’, <민주청서21>이다. 교육기본법을 보면 우리 교육 이념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그간 민주시민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해 1월 서울시에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고 그는 기꺼이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일수록 국가가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해요. 국가는 아니지만 지방 정부가 단군 이래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민주정치 역량 제고의 기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몹시 흥분된 상태입니다. 하하.”

집필중인 책은 지난 2007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5·18기념재단이 공동으로 의뢰한 ‘민주시민교육 연구보고서’(2008년 발간)가 기초가 됐다. 민주시민교육의 개념을 정립하고, 한국의 민주시민교육 실태를 방대하게 조사했다. 외국의 주도적인 시민교육모델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한국적인 시민교육의 맥락도 검토했다. “지금도 민주시민 교육과 관련된 책들이 많지만, 준법정신이나 공중도덕 등 ‘순응적인 국민 만들기’에 쏠려있다고 오해받을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번 책은 그런 단점을 보완해 민주교육에 대한 본뜻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알려주려 한다.

1000쪽 시민교과서 ‘민주청서21’
21세기 민주시민 교육 나서기로
“앎의 질 개선이 삶의 질 개선
대한민국에 대한 마지막 충성”

“주권자인 국민, 시민은 신경쓸 게 많아요. 아무런 생각 없이 투표권만 갖고 있다면 민주주의적 결정의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죠. 시민이 민주국가의 운영 지식을 제대로 갖고 있어야 제대로 민주주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 이런 교육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2차대전 뒤 승전국인 미국이 독일에게 요구한 것 중의 하나가 국민들이 다시는 히틀러식의 야만에 매료되지 않도록 교육시스템을 만들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일의 ‘정치교육’, 곧 민주시민교육의 출발이었다. “패전 뒤 독일은 국가가 민주적이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어요. 민주시민교육 때문에 성공적으로 동·서독이 통합하게 됐고 지금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동독 출신입니다. 정당이 교육의 덕을 보는 겁니다.”

독일 정치교육의 대표기관인 연방정치교육원은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라는 세가지 원칙을 의무적으로 준수한다. 이는 1976년 각 정파들이 한데 모여 치열한 회의 끝에 얻은 사회적 대타협 결과물이다. 핵심 원칙은 세가지. 우세한 사람이 특정 의견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제압(강압) 금지의 원칙’, 정치·사회·학문 영역에서 논쟁적인 문제는 교육현장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논쟁성 재현의 원칙’, 피교육자가 자기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정치적 토론에 참여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자기 이해관계의 공적 연관성 설정의 원칙’이다.

“제가 독일에 있었을 때도 연간 1만원이 안되는 구독료로 정치전문지 <다스 팔라멘트>와 최고 학자들이 학술적 논쟁을 펼치는 기관지를 받아볼 수 있었어요. 의회의 모든 정치 현안, 각 정당의 입장이 고스란히 요약돼 있는데 이것이 전국 학교와 정치교육단체에 뿌려졌습니다. 시민 스스로 정치의 쟁점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최상의 조건이 마련됐던 거죠.”

2000년대 중반까지 그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진보 논객이었다. 2000년 <당대비평>에 자신이 쓴 권두논문 게재가 거부당하자 월간 <인물과 사상>으로 ‘원고 망명’을 했던 일, 2003년 ‘대중독재’ 패러다임과 ‘우리 안의 파시즘론’을 비판했던 일, 2006년부터 시작된 ‘노마디즘’ 논쟁에 가세한 일, 2007년 좌우를 떠난 통합적 해결력이 필요하다며 주장한 ‘강한 중도’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그 뒤 그는 연구에 몰두해 ‘통합 인문학’ 구상이나 교육을 통한 갈등 극복 같은 주제로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다수 발표하면서 사회철학과 교육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한국철학교육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강한 국가들 틈새에서 작은 나라가 살아남는 방법은 서로 문제와 차이를 이해하고 감싸안으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민주시민교육으로 관심이 이어진 건 자연스러워보인다.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비판에는 한계가 있고,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에 대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충성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앎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철학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앎의 질을 개선하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고, 민주시민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권자의 앎의 질이 민주주의의 질을 결정합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홍윤기 교수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고 치른 변증법 전문가

1957년생. 강원도 동해에서 교육자 아버지와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 밑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5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해 3학년 때인 1977년 이른바 ‘서울대 26동 사건’에 연루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2년2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수감 생활과 제적이 거듭되면서 10년 만에 학부 졸업을 했다.

학교 밖에서 공부는 가속도가 붙었다. 독일어 번역을 주로 해 1980년대 초 <마르크스의 철학적 기초>(루이 뒤프레), <하버마스의 이론과 실천>(위르겐 하버마스), <혁명이냐 개혁이냐>(허버트 마르쿠제·칼 포퍼 논쟁) 등을 번역했다. “운동권이 공부하던 시절”이라 각각 1만부가 넘게 팔렸다.

1988년 독일 유학을 떠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최고우등점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95년 귀국했다. 박사 학위논문은 고대부터 현대 초에 이르는 변증법 패러다임을 현대 언어철학을 이용해 공식화한 것이다. 세부전공은 변증법, 시민민주주의, 현대성 이론, 헌법, 규범기반 등이다.

1991년 4월부터 귀국할 때까지 <한겨레> 베를린 통신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병상에 있었던 작곡가 윤이상을 인터뷰(“우리 민족은 내 음악의 탯줄이다”, 1992년 6월17일치)했고, 스페인 알메리아 태양열 발전소 취재(“스페인 남부 알마리아 태양단”, 1993년 4월19일치)는 태양 에너지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가 귀국하면서 <한겨레> 독일 통신원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가 바로 유시민 전 장관이다. 독일에서 귄터 그라스의 소설 <무당개구리 울음>(풀빛)을 번역하기도 했다.

1999년부터 동국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위원, 사회와 철학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변증법 비판과 변증법 구도>(1995),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2010),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공저, 2003),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공저, 2007) 등이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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