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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항문의 도움으로 화성에서 살아남다

등록 2015-08-13 21:12수정 2016-07-15 15:48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마션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알에이치코리아 펴냄(2015)

2015년 8월10일, 미항공우주국(NASA) 국제 우주정거장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는 30초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세 명의 우주인이 우주 정거장에서 첫 번째로 재배한 채소인 적상추를 먹으며 “건배!”를 외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다. 아래에는 “인간에게는 작은 한 입, 인류에게는 위대한 잎사귀(leaf)”이라는 재치 있는 설명이 붙었다. 우주 환경에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는 건 인류가 우주 환경에서 생명 유지를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이 사소하면서도 거대한 사건은 <마션>의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가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입자 물리학자인 앤디 위어가 2011년 자가 출판했던 <마션>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2014년에 정식 출판되었고, 현재도 인기도서 순위 상단에 올라 있다. “<아폴로 13>과 <캐스트 어웨이>의 만남”이라는 평을 들었던 이 소설은 화성의 지질 환경과 화성 거주용 막사의 구조, 하이드라진을 태워 물을 만드는 방법 등 그야말로 과학을 업이자 취미로 삼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구구절절한 묘사를 잔뜩 늘어놓는다. 그러나 전문 설명의 세부사항까지는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마션>은 단연 올 여름 가장 흥미로운 소설로 꼽을 만하다. <오뒷세이아> 이후 모든 훌륭한 모험담이 그러하듯 이 소설 또한 위험에 처한 인간이 살아남아 가족에게 돌아오려는 이야기이다.

화성 탐사대 아레스 3의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에 탐사선 헤르메스를 타고 화성을 급히 떠난다. 사고로 혼자 낙오된 마크 와트니는 자신의 기계 공학 기술과 식물학 지식을 다해, 다음 탐사대가 올 4년 뒤까지 생존해야 한다. 그는 지구와 화성의 토양을 섞고 거기에 박테리아를 배양하여 감자를 심어서 모자라는 식량 분을 채우려 계획한다. 또, 작동이 중지된 교신 장치를 대신할 물건을 어떻게든 찾아서 지구와 통신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화성의 로빈슨 크루소와 그를 지구로 데려오려는 나사의 분투기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어떤 조난을 했든 생존을 위해서는 전문 기술과 체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술 부족과 체력 고갈보다 더 빨리 조난자를 죽일 수 있는 건 두려움과 좌절, 그리고 고독. 주인공의 생존 비결은 우주의 미아가 된 최악의 위험에서도 잃지 않았던 유머이다. 비료를 만들면서 “나의 항문은 나의 두뇌 못지않게 나의 생존을 돕고 있다”는 사색이나 화성 최고 인기 음악이 된 디스코에 대한 묘사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70년대 시트콤에 몰두하고 애거서 크리스티를 읽으면서 영혼을 좀먹는 외로움과 싸우는 와트니는 화성에서 지구일 기준 687일을 살아낸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낙관은 와트니가 조난을 견디는 연료이지만, 소설로서 <마션>의 약점도 이 낙관주의에 있다. 와트니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도 당하고 모래 폭풍도 겪지만 우연의 확률을 훌쩍 넘을 정도로 무사하다. 나사의 직원들을 포함한 전 인류가 그의 생존을 간절히 기원하고, 아레스 3 탐사대원들은 목숨을 건다. 그러나 <마션>의 가장 큰 장점도 “인류는 결국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이 있다”는 믿음에 있기도 하다. 기실, 우주여행 자체가 인류가 지닌 가장 위대한 낙관주의 아니겠는가? 무한한 우주를 향해 위험한 항해를 떠나자면 인류의 지혜와 선의에 대한 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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