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곽재식 지음/엘릭시르(2017)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도 이 질문의 답은 늘 궁금했다. 물론 답을 안다고 해도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안다면 가능성은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취향과 기질 따라 다르겠지만, 곽재식 작가는 아마 그 답을 “가장 무서운 이야기, 남들 돈 번 이야기 중에 가장 기막힌 이야기, 바람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무서운 이야기라고. 소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은 이 전제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한규동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열심히 구직 중인 백수다. 아무런 희망적인 답도 없어 좌절하던 차, “차세대 인터넷 미디어 벤처”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단 회사에서 면접 연락을 받는다. 하지만 그 회사의 사무실은 “묵은 유령들이 쓰는 공중화장실을 연상하게 만드는” 곳이고, 회사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인 이인선은 한규동에게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남들 돈 번 이야기 중에 가장 기막힌 이야기, 바람난 이야기 중 하나를 해보라고. 결국, 한규동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아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때와 장소는 일본 강점기 말, 어떤 옷 공장이다. 등장인물은 아들이 미군 수용소에 잡혀 있다고 믿고 광기에 빠져버린 친일파 사장 남자, 그 광기의 희생양이 된 공장 직원들, 그중에서 신비하고 기괴한 존재가 되어버린 한 여자이다. 마음 약한 분들을 위해 미리 일러두자면, 한규동이 한 이야기는 우화적인 분위기를 띠기는 하지만, 결말에서는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를 만큼 오싹하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은 산업화 시대의 괴담을 전하는 호러 소설만은 아니다. 문제편 ? 풀이편 ? 해답편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무서운 이야기는 왜 무섭나?”와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왜 좋아하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메타-호러 소설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는 줄거리는 잊어도 섬뜩한 기분만은 오래 남아 있다. 기운이 불쾌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 같은 부분에서 오싹함을 느낀다. 정체 모를 회사의 사장 인선은 대중서사로서 괴담의 기제를 분석하면서, 내키지 않아 하는 한규동을 이끌고 괴담의 현장으로 향한다. 준비물로 꼭 필요한 것은 수산 시장에서 고른 그럴듯한 생선 한 마리이다. 곽재식은 배경이 과거든 현재든 구전 설화를 재구성하는 데 무척 능한 작가이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도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동시에 이 소설은 논리적 해답이 있는 추리소설이다. 그에 더해 일본 강점기의 잔재, 보물 소동, 선정적 보도 매체, 부동산과 재개발, 이주 노동자 등 동시대의 소재를 다룬 사회 소설적 성격도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의 정체를 깨닫고 만다. 공장 사람들이 으스스한 소문이 나오는 건물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까닭, 한규동이 귀신 나오는 현장에 갈 수밖에 없는 까닭이 뭘까. 귀신이 아무리 무서워도 밤샘 야근과 무직은 더 무섭기 때문이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곽재식 지음/엘릭시르(2017)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도 이 질문의 답은 늘 궁금했다. 물론 답을 안다고 해도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안다면 가능성은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취향과 기질 따라 다르겠지만, 곽재식 작가는 아마 그 답을 “가장 무서운 이야기, 남들 돈 번 이야기 중에 가장 기막힌 이야기, 바람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무서운 이야기라고. 소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은 이 전제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한규동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열심히 구직 중인 백수다. 아무런 희망적인 답도 없어 좌절하던 차, “차세대 인터넷 미디어 벤처”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단 회사에서 면접 연락을 받는다. 하지만 그 회사의 사무실은 “묵은 유령들이 쓰는 공중화장실을 연상하게 만드는” 곳이고, 회사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인 이인선은 한규동에게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남들 돈 번 이야기 중에 가장 기막힌 이야기, 바람난 이야기 중 하나를 해보라고. 결국, 한규동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아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때와 장소는 일본 강점기 말, 어떤 옷 공장이다. 등장인물은 아들이 미군 수용소에 잡혀 있다고 믿고 광기에 빠져버린 친일파 사장 남자, 그 광기의 희생양이 된 공장 직원들, 그중에서 신비하고 기괴한 존재가 되어버린 한 여자이다. 마음 약한 분들을 위해 미리 일러두자면, 한규동이 한 이야기는 우화적인 분위기를 띠기는 하지만, 결말에서는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를 만큼 오싹하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은 산업화 시대의 괴담을 전하는 호러 소설만은 아니다. 문제편 ? 풀이편 ? 해답편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무서운 이야기는 왜 무섭나?”와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왜 좋아하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메타-호러 소설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는 줄거리는 잊어도 섬뜩한 기분만은 오래 남아 있다. 기운이 불쾌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 같은 부분에서 오싹함을 느낀다. 정체 모를 회사의 사장 인선은 대중서사로서 괴담의 기제를 분석하면서, 내키지 않아 하는 한규동을 이끌고 괴담의 현장으로 향한다. 준비물로 꼭 필요한 것은 수산 시장에서 고른 그럴듯한 생선 한 마리이다. 곽재식은 배경이 과거든 현재든 구전 설화를 재구성하는 데 무척 능한 작가이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도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동시에 이 소설은 논리적 해답이 있는 추리소설이다. 그에 더해 일본 강점기의 잔재, 보물 소동, 선정적 보도 매체, 부동산과 재개발, 이주 노동자 등 동시대의 소재를 다룬 사회 소설적 성격도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의 정체를 깨닫고 만다. 공장 사람들이 으스스한 소문이 나오는 건물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까닭, 한규동이 귀신 나오는 현장에 갈 수밖에 없는 까닭이 뭘까. 귀신이 아무리 무서워도 밤샘 야근과 무직은 더 무섭기 때문이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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