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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음식을 향한 상상력, 더 넓어졌으면

등록 2017-11-30 19:46수정 2017-11-30 20:34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7맛 7작
박지혜 외 지음/황금가지(2017)

에스엔에스(SNS)의 발달이 글쓰기 장르에 불러온 가장 큰 변화는 음식에 대한 글이 수적으로 폭등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상을 기록하다 보면 무언가 먹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음식 주제의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테이스티 문학상이 있다는 사실도 의외롭지 않다. 그 수상작을 모은 작품집 <7맛 7작>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소재로 다양한 삶의 형태를 그려낸다.

여기 실린 일곱 편의 작품들은 음식을 다룬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장르는 다 다르다. ‘해피 버스데이, 3D 미역국!’은 2040년이라는 근미래에 과거 음식의 의미를 탐색하는 에스에프(SF)에 가깝다. ‘비님이여 오시어’는 세종 18년, 비를 기다리는 염원을 담아 용의 염통을 사냥하고 조리하여 임금께 바쳐야 하는 숙수가 등장하는 역사 판타지다.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은 오로지 스파게티만 만들고 먹는 파스타리안 아내가 실종되었으니 찾아달라는 남편의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이 주인공이고, ‘류엽면옥’은 일제강점기, 친일 인사가 살해되자 용의자로 의심받는 냉면 배달부인 중머리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퍼즐 추리소설이다. ‘하던 가닥’은 수상한 국숫집 주인과 그의 수제자 사이의 애증관계를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묘사했고,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은 인터넷 커뮤니티 유머글 같은 작법을 차용한 따뜻한 호러물이다. 마지막으로 실린 ‘커리 우먼’은 환상적 설정을 빌려 현실을 떠나려 하는 여성들의 욕망을 음식에 투영했다.

이 책의 장점은 한국어로 맛을 표현하는 갖가지 방식들을 여기 수록된 단편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띠지에는 “허기질 때 읽지 마시오”라는 진부한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여기 실린 작품들은 배고플 때 읽어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작품의 개성과 성취 수준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음식과 맛의 묘사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난다.

가장 애착이 갔기 때문에 아쉬움도 있었던 작품은 1회 우수작인 ‘해피 버스데이, 3D 미역국!’이었다. 원하는 음식은 안드로이드 요리사와 3디(D)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엄마가 끓여준 생일 미역국에 관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가 여전히 성의를 들여 음식을 직접 만드는 요리사를 만나 과거 기억 속의 미역국을 재현한다는 줄거리다. 이 단편은 정서적 공감과 단편다운 반전까지 있었으나 감동적인 결말이 따뜻한 만큼 안타까웠다. 내가 이 소설에서 특히 좋아한 면은 미래에는 우리가 자기 자신 외에는 다른 인간의 노동을 직접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2040년에도 “여전히 생일에는 미역국이지!”라는 말을 하는 직장 상사가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데, 결국은 기술의 힘을 빌렸대도 “인간의 손끝과 혀를 거쳐 간” 음식이 다정하다는 결론이라면 살짝 아득한 기분도 든다. 음식을 둘러싼 담화가 대체로 그렇듯이 이 작품집 또한 전체적으로 사람의 손맛 같은 정다움이라는 정서에 둘러싸여 있다. 음식은 해주고 먹는 사람 간의 정이라는 말은 전통적으로 낭만적이고 여전히 진실일 테지만, 음식을 향한 상상력은 이보다는 영역이 더 넓을 것이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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