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
진 리프먼-블루먼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 펴냄. 1만5000원
진 리프먼-블루먼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 펴냄. 1만5000원
죽어서도 숭배자를 거느린 이승만·박정희
지지자들은 독성리더를 참아낼 뿐 아니라
되레 좋아하고 심지어 만들어내기도 한다
악의의 지지자·언론의 유착도 분석
지지자들은 독성리더를 참아낼 뿐 아니라
되레 좋아하고 심지어 만들어내기도 한다
악의의 지지자·언론의 유착도 분석
이승만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해먹으려다 4·19혁명으로 쫓겨났다. 박정희는 측근의 손에 피살되어서야 18년 독재의 손을 놓았다. 이들은 죽어서도 숭배자를 거느리고 있다. 또 재벌 기업인은 적은 지분으로 기업군을 좌우하는 것도 이상한데 회삿돈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닦아먹거나 정치권과 짝자꿍 놀아나면서도 권좌에 머문다.
도대체 이런 해괴한 일이 왜 일어나는 걸까. 이를 막을 수는 없을까.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부글 펴냄)은 그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은이는 미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 ‘첨단리더십연구소’ 소장인 진 리프먼-블루먼. 말머리에서 든 것처럼 한국의 예는 없지만 도찐개찐이다.
리더 또는 리더십에 관한 연구는 많다. 회사, 조직 그리고 나라를 좀먹는 ‘독성리더’에 관한 책도 더러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이 독성리더를 참아내고 되레 좋아하여 그런 존재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배경을 분석한 책은 희귀하다. 이 책은 그 가운데 하나다.
독성리더들이 제시하는 비전은 거창하고 환상적이다. 이들은 부모의 존재를 대신하여 안전과 확실성을 보장하고, 선택되었거나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며, 공동체의 일원임을 주지시켜 사회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며, 그에게 도전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준다. 독성은 마약과 같아서 한번 취하면 자유를 헌납하게 되고 그것에서 헤어나기 무척 힘들다.
사람들이 독성리더에 중독되는 여유
독성리더의 환상을 벗기면 추악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지지자의 인권을 지키지 않는다. 비판을 억누르고 무조건 리더를 따르라고 가르친다. 시스템의 절차를 뒤엎고 범죄적인 행위를 한다. 자기 외에 리더를 기르지 않는다. 네편-내편을 갈라 미워하거나 파괴하도록 설득한다. 때론 희생양을 만들기도 한다. 무능하고 오만하며 아집이 강하고 부패를 무시하거나 조장한다. 독성리더는 또 개인의 약점을 쥐고 흔든다. 악명높은 미 연방수사국(FBI) 후버 국장이 죽자 뒤구린 닉슨은 “제기랄, 그 늙은 개같은 놈”이라고 중얼거렸으면서도 국장(國葬)을 지시했다.
사람들은 독성리더를 잘 모른다. 또 알아도 회피하거나 방관함으로써 이들의 수명을 늘린다. 아스펜연구소가 미 MBA(경영학 석사)학생을 조사한 결과(2001~2002),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회사의 가치와 상출할 때 다른 회사를 찾겠는가”라는 설문에 ‘상당히 높을 것 같다’는 겨우 34%였다. 또 1964년 스물여덟살 피해자가 거듭 칼에 찔리는데 현장에서 38명은 방관자로 지켜보기만 한 사건도 있었다.
역경이나 위기도 독성리더의 온상이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이를 웅변한다. A군 학생에게는 사전에 자신의 죽음을, B군 학생에게는 곧 닥쳐올 시험을 생각하라는 요구를 한 다음 카리스마, 과업지향, 상호관계 중시를 공약으로 내건 세 후보의 가상 선거연설문을 읽혔다. 후보를 선택하게 한 결과, B군에서는 과업지향, 상호관계 중시후보가, A군에서는 카리스마 후보 선호도가 높았다. 9·11동시테러 뒤 74%가 “테러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개인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하여 그 이전과 큰 격차를 보였다.
자기 합리화와 변명이 없을 수 없다. “생활비를 벌게 해 주잖아” “맞서면 나만 손해” “모두 힘들어… 나도 참아야 해” “더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어” “다른 사람들은 위대하다고 하는데” “나 혼자서는 못해” “통제불능 상황…그가 필요해” 등등. 문제는 이런 합리화와 변명이 내면화되어 독성리더를 전복시키려는 시도조차 못하게 만든다는 것. △우리가 열등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반격의 두려움을 불어넣으며 △가만히 있으면 주어질 혜택이 줄어들까 걱정하게 만들고 △현상유지를 당연시하며 △리더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 심지어 △리더의 고귀함과 불멸을 믿게 만든다.
대책은 임기제한·내부고발자 보호
본디 독성리더가 있겠는가. 때로는 유순한 지지자, 리더의 측근, 악의에 찬 지지자가 무독성리더를 독성리더로 만든다.
“돈을 내도 모자랄 판인데 돈까지 주다니… 나는 역사의 주역이 되고 있어요.” 이라크전에 참전한 한 미군병사가 아버지에게 건 전화다. 영광스런 비전에 목마른 자는 갈증을 준다는 리더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지지할 채비가 되어 있다. 조급증은 급조비전을 부추기고 이는 실패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그럼으로써 무독성 리더가 독성리더가 되고 지지자들은 예스맨으로 전락한다. 급기야 꿈이 악몽으로 변하기 시작해도 공개적 비판을 꺼리게 만든다. 이러한 ‘유순한 지지자’와 달리 ‘악의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고의로 리더의 기반을 약화시키려고 하고 새 리더가 들어오면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할 것을 걱정한다. 일이 잘못 돌아갈 때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그것은 리더의 결정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리더의 측근’들은 지도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지위와 존재 이유를 끌어내기 마련. 이들은 지도자의 측면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권력을 손에 쥐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 일쑤다. 그러면 판단력이 흐려져 지도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더러운 속임수 쓰기도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표.
언론도 더러운 일에 한몫을 한다. 한쪽은 아첨기사를 원하고 다른 쪽은 특종을 원한다. 그 결과 호혜적인 관계가 이뤄지면 언론은 객관성을 잃고 신봉자로 전락한다. 또 장삿속 언론은 표지기사로 재계 거물을 자주 내세운다. 그러나 그것도 떠오르는 별일 때와 추락하는 천사일 때에 한한다. 후광이 사라지면 언제냐 싶게 돌아서는 게 그 속성이다. 이사회 역시 리더를 감독하는 본연의 역할과 달리 아첨꾼집단이 많다.
지은이가 제안하는 대책은 뜻밖에 평범하다. 임기에 제한을 두고 리더선택 절차를 보완해야 하며, 존경받으며 떠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것을 권한다. 또 정책과 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며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따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제목처럼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은 없다. 독성리더의 눈속임이 있을 뿐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람들은 독성리더를 잘 모른다. 또 알아도 회피하거나 방관함으로써 이들의 수명을 늘린다. 아스펜연구소가 미 MBA(경영학 석사)학생을 조사한 결과(2001~2002),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회사의 가치와 상출할 때 다른 회사를 찾겠는가”라는 설문에 ‘상당히 높을 것 같다’는 겨우 34%였다. 또 1964년 스물여덟살 피해자가 거듭 칼에 찔리는데 현장에서 38명은 방관자로 지켜보기만 한 사건도 있었다.
히틀러는 1차대전의 패전과 수치스런 베르사유조약이라는 국가적 위기, 그 자신의 조작된 카리스마, 최측근인 아이히만의 부도덕한 충성이 결합되어 나타난 괴물이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 가톨릭, 노조, 개신교 등 나치의 탄압이 강도를 더해가도 방관했던 ‘다수의 침묵’이 있었기에 존속 가능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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