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26일 오후 국정원에서 ‘동백림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위원들과 함께 회견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부정선거 규탄 막으려 정치적 이용”
단순 대북접촉 과장해 간첩죄로 옭아매
박대통령 수사지시…중정, 유죄판결 종용 1967년 7월 중앙정보부(중정)가 발표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을 누르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실체를 왜곡하고 과장한 사건이라는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26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이 사건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중정이 관련자들에게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고, 사건의 범위와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5c부정선거 반발 막으려 왜곡·과장=이 사건은 동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학생과 지식인을 비롯한 국내·외 인사 203명이 북한의 지령에 따른 간첩행위와 사회주의 정권 수립 활동에 연루됐다고 중정이 발표하고, 66명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23명에게 간첩죄를 적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규모는 물론이고, 작곡가 윤이상씨와 화가 이응로씨 등 국외 명망가들이 포함됐다는 점에서도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당시 사법부는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반공법 위반죄 등을 적용해 2명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등 36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1970년까지 모든 관련자들이 석방됐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관련자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하면서 동베를린(50명) 및 북한 방문(12명), 북쪽 인사로부터의 금품수수(17명) 등을 통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맞다”며 “그러나 중정은 단순한 대북 접촉 및 동조행위에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중정은 1964~65년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이끈 학생조직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동백림 공작단’의 일부로 몰아 가고, 수사 도중 10일 동안 7차례에 걸쳐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며 “이는 6·8 국회의원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사위는 당시 규탄시위가 확산되면서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는 등, 우리 사회가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으로 가는 분기점에 놓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5c박정희 지시로 수사 시작=국정원 과거사위는 동백림 사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인 홍아무개씨의 제보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1967년 5월 서독 유학 뒤 교수로 일하던 임아무개씨는 자신이 북한 인사를 접촉한 것이 탄로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박 전 대통령의 처조카 홍아무개씨에게 정부 인사 소개를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임씨는 “유학생들이 북한 인사를 만났다”고 알렸고, 박 전 대통령은 “철저히 수사하라”고 중정에 지시했다. 손호철 과거사위 위원은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해외 거주 인사들을 강제연행하라고 지시한 증거는 발견 못했지만 중정이 최소한 대통령에게 사전보고를 하거나 승인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5c중앙정보부의 판·검사 매수 계획=과거사위는 중정이 관련자들에게 물·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서독과 프랑스 등 5개국에서 30여명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중정 요원들이 일부 인사들에게 폭력을 써 강제연행하는 국제법상 불법행위도 저질렀다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이 일부 피고인들에게 무리한 법 적용이 있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 보내자, 중정이 판·검사들을 매수하기 위해 100만원의 예산지급을 계획한 문서가 발견됐다. 과거사위는 이 돈이 실제로 집행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또 중정 박아무개 국장이 판사를 만나 유죄 판결을 종용한 사실도 관련자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박대통령 수사지시…중정, 유죄판결 종용 1967년 7월 중앙정보부(중정)가 발표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을 누르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실체를 왜곡하고 과장한 사건이라는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26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이 사건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중정이 관련자들에게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고, 사건의 범위와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5c부정선거 반발 막으려 왜곡·과장=이 사건은 동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학생과 지식인을 비롯한 국내·외 인사 203명이 북한의 지령에 따른 간첩행위와 사회주의 정권 수립 활동에 연루됐다고 중정이 발표하고, 66명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23명에게 간첩죄를 적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규모는 물론이고, 작곡가 윤이상씨와 화가 이응로씨 등 국외 명망가들이 포함됐다는 점에서도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당시 사법부는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반공법 위반죄 등을 적용해 2명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등 36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1970년까지 모든 관련자들이 석방됐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관련자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하면서 동베를린(50명) 및 북한 방문(12명), 북쪽 인사로부터의 금품수수(17명) 등을 통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맞다”며 “그러나 중정은 단순한 대북 접촉 및 동조행위에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중정은 1964~65년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이끈 학생조직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동백림 공작단’의 일부로 몰아 가고, 수사 도중 10일 동안 7차례에 걸쳐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며 “이는 6·8 국회의원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사위는 당시 규탄시위가 확산되면서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는 등, 우리 사회가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으로 가는 분기점에 놓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5c박정희 지시로 수사 시작=국정원 과거사위는 동백림 사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인 홍아무개씨의 제보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1967년 5월 서독 유학 뒤 교수로 일하던 임아무개씨는 자신이 북한 인사를 접촉한 것이 탄로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박 전 대통령의 처조카 홍아무개씨에게 정부 인사 소개를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임씨는 “유학생들이 북한 인사를 만났다”고 알렸고, 박 전 대통령은 “철저히 수사하라”고 중정에 지시했다. 손호철 과거사위 위원은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해외 거주 인사들을 강제연행하라고 지시한 증거는 발견 못했지만 중정이 최소한 대통령에게 사전보고를 하거나 승인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5c중앙정보부의 판·검사 매수 계획=과거사위는 중정이 관련자들에게 물·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서독과 프랑스 등 5개국에서 30여명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중정 요원들이 일부 인사들에게 폭력을 써 강제연행하는 국제법상 불법행위도 저질렀다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이 일부 피고인들에게 무리한 법 적용이 있었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 보내자, 중정이 판·검사들을 매수하기 위해 100만원의 예산지급을 계획한 문서가 발견됐다. 과거사위는 이 돈이 실제로 집행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또 중정 박아무개 국장이 판사를 만나 유죄 판결을 종용한 사실도 관련자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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