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2018) 죄책감은 개인에게 해롭고 사회에게 이로운 복잡한 감정이다. 이미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 수 없는데도 마음을 괴롭히고 미래의 전망까지도 망치는 것이 죄책감이지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는 사람만이 세계의 무너진 질서를 수복하려고 노력한다. 죄책감은 자신의 과오를 남이 알아내어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유래하지만, 우리는 남이 비난하지 않는 일에도 죄책감을 품기도 한다. 우리 내면에도 바깥 세계와 연결된 재판관이 있고 그의 요구를 맞추지 못하고 실패했을 때 고뇌가 생겨난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죄를 범한 한 인간이 그로 말미암은 죄책감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1999년, 숲과 접한 마을 보발에 사는 열두 살 소년 앙투안은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고독감을 느낀다. 비디오 게임을 금지한 어머니 때문에 또래 친구들과도 멀어진 앙투안이 애정을 주는 대상은 옆집 데스메트 씨네에서 기르는 개 윌리스와 동네 여자애인 에밀리이다. 어느 날, 윌리스가 차에 치이고 데스메트 씨가 개의 고통을 끊기 위해 엽총으로 쏴버리자 앙투안은 좌절한다. 그렇게 생겨난 분노를 앙투안은 충동적으로 데스메트 씨의 여섯 살 난 아들 레미에게 쏟아내고 만다. 자신의 죄와 시체를 숲 속에 묻어버린 소년, 그러나 죄책감은 수색이 진행된 사흘 동안, 그리고 그의 인생 동안 따라다닌다. 프랑스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추리소설가 중 하나일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짧은 소설 속에서도 거장이란 어떤 작가인지를 보여준다. 잔혹한 사건을 풀어내는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나 2013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오르부아르>(열린책들)와도 다른 궤의 이 작품은 소년 앙투안의 내면 갈등을 그리는 데 초점이 있다. 범죄 후 괴로웠던 사흘이 지나자 자연의 힘으로 그의 죄는 숨겨지지만, 12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다. 거기에 새로 저지른 잘못이 결합되자 그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또, 4년이 흐른 후에 드디어 앙투안은 진실을 깨닫는다. 심리묘사에 초점이 있는 앞부분까지는 설사 진행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더라도, 각각 2011년과 2015년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서는 전율을 느끼지 않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죄와 두려움, 사랑과 침묵, 회피와 회개의 씨실과 날실이 만드는 거대한 운명의 옷감을 마주하는 소설이 바로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이다.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존재할 듯싶다. 보통의 사람은 죄가 “눈에는 눈”처럼 같은 방식으로 벌해질 때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죄가 피해자는 물론, 신과 국가,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빚이며, 속죄는 그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르메트르의 해법도 납득할 수 있다. 죄책감이 개인에게 해로울 만큼 괴로운 이유는 어떻게 해도 쉽게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흘이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결국, 죄책감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인 동시에, 평생을 등 대고 살아가는 친척이 된다. 아무리 짐스럽다 해도 그를 받아들이고 갚으며 살아가는 법을 익힐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고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말하는 듯하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2018) 죄책감은 개인에게 해롭고 사회에게 이로운 복잡한 감정이다. 이미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 수 없는데도 마음을 괴롭히고 미래의 전망까지도 망치는 것이 죄책감이지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는 사람만이 세계의 무너진 질서를 수복하려고 노력한다. 죄책감은 자신의 과오를 남이 알아내어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유래하지만, 우리는 남이 비난하지 않는 일에도 죄책감을 품기도 한다. 우리 내면에도 바깥 세계와 연결된 재판관이 있고 그의 요구를 맞추지 못하고 실패했을 때 고뇌가 생겨난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죄를 범한 한 인간이 그로 말미암은 죄책감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1999년, 숲과 접한 마을 보발에 사는 열두 살 소년 앙투안은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고독감을 느낀다. 비디오 게임을 금지한 어머니 때문에 또래 친구들과도 멀어진 앙투안이 애정을 주는 대상은 옆집 데스메트 씨네에서 기르는 개 윌리스와 동네 여자애인 에밀리이다. 어느 날, 윌리스가 차에 치이고 데스메트 씨가 개의 고통을 끊기 위해 엽총으로 쏴버리자 앙투안은 좌절한다. 그렇게 생겨난 분노를 앙투안은 충동적으로 데스메트 씨의 여섯 살 난 아들 레미에게 쏟아내고 만다. 자신의 죄와 시체를 숲 속에 묻어버린 소년, 그러나 죄책감은 수색이 진행된 사흘 동안, 그리고 그의 인생 동안 따라다닌다. 프랑스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추리소설가 중 하나일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짧은 소설 속에서도 거장이란 어떤 작가인지를 보여준다. 잔혹한 사건을 풀어내는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나 2013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오르부아르>(열린책들)와도 다른 궤의 이 작품은 소년 앙투안의 내면 갈등을 그리는 데 초점이 있다. 범죄 후 괴로웠던 사흘이 지나자 자연의 힘으로 그의 죄는 숨겨지지만, 12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다. 거기에 새로 저지른 잘못이 결합되자 그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또, 4년이 흐른 후에 드디어 앙투안은 진실을 깨닫는다. 심리묘사에 초점이 있는 앞부분까지는 설사 진행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더라도, 각각 2011년과 2015년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서는 전율을 느끼지 않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죄와 두려움, 사랑과 침묵, 회피와 회개의 씨실과 날실이 만드는 거대한 운명의 옷감을 마주하는 소설이 바로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이다.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존재할 듯싶다. 보통의 사람은 죄가 “눈에는 눈”처럼 같은 방식으로 벌해질 때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죄가 피해자는 물론, 신과 국가,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빚이며, 속죄는 그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르메트르의 해법도 납득할 수 있다. 죄책감이 개인에게 해로울 만큼 괴로운 이유는 어떻게 해도 쉽게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흘이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결국, 죄책감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인 동시에, 평생을 등 대고 살아가는 친척이 된다. 아무리 짐스럽다 해도 그를 받아들이고 갚으며 살아가는 법을 익힐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고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말하는 듯하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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