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루추차 지음, 한수희 옮김/스핑크스(2019) 소설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한 편이지만, 태도를 분명히 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보통은 작가의 삶과 책의 지향점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지만, 메시지는 좋은데 구성에 허점이 있거나 기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인물에 동의할 수 없는 내적인 문제가 있기도 하다. 중국 추리소설 <원년 봄의 제사: 무녀주의 살인사건>이 그런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가의 말을 굳이 붙이지 않고 독자가 이 서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놔뒀다면 이 책을 더 쉽게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먼저 이 책을 집어 든 사람에게는 일종의 안내문이 필요하다. 소설에서 현학적인 장광설을 꺼리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나 교고쿠 나츠히코, 혹은 마쓰다 신조 같은 작가의 첫머리를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책에 빠질 것이다. 굴원의 시를 모티브로 삼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소설 집필의 큰 동기가 고전을 탐구하는 현학에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논의를 걷어내면, 흥미로운 추리소설 구조가 눈에 띈다. 소설의 배경은 천한 원년, 기원전 100년의 운몽이다. 옛 초나라 땅이었던 이곳에 장안으로부터 오릉규라고 하는 열일곱 살 소녀가 찾아온다. 가문의 무녀인 규는 현지 소녀, 옛 귀족의 후손인 관노신과 친구가 되지만, 문헌 연구에 집착하며 거침없는 성격의 규와 배움에는 뜻이 없으나 따뜻한 노신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소설의 초입, 규는 노신에게서 4년 전 사건을 듣는다. 노신의 백부 집안에서 가족들이 모두 죽고 사촌 언니인 약영만 살아남은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 외부 사람의 통행이 없는 관씨 집에서는 차례차례 한 명씩 죽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작가는 엘러리 퀸처럼 자신만만하게 소설에서 두 번 독자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사건에만 집중하면 범인은 특정할 수 있지만, 옛 고전의 논의가 독자의 눈을 흐린다. 규는 이 소설에서 탐정인 동시에 용의자이고, 동시에 동기이다. 마침내 드러나는 사건의 전모는 의외롭고, 소설의 제목과 연결되며 의미를 펼쳐놓는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주요 인물들이 모두 소녀이며 그들의 의지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한나라 무제 시대, 소녀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제도에 대항하여 종교적, 정치적인 야망을 품는다. 이 모든 비극의 결과도 결국은 소녀들이 자신들을 잡아놓은 곳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원전 100년의 이야기는 현대적인 함의를 품는다. 하지만 제목을 <춘추경>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따왔고, 선조의 감화를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처녀들을 제물로 바치고 싶었다는 작가의 설명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여성이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과거와 단절되는 제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긍정해도, 나 자신은 이 이야기를 여성이 공동체의 희생양이 되는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방향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해 안에서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메시지와 인물의 행동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그러나 이런 비틀림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로서 의미가 있는 소설도 존재할 것이다. 확실히 <원년 봄의 제사>는 다른 추리소설의 팬들과 토론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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