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위즈덤하우스(2019) 2년 정도, 어떤 아이돌을 좋아했다. 소위 ‘덕질’을 했다는 뜻이다. 참으로 행복하고, 그만큼 괴로웠던 시기였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강렬한 애정을 주면서 일상에서는 얻을 수 없던 몰입의 기쁨을 매일 느꼈다. 하지만 내 애정은 어린 소녀, 소년에게 열정을 착취해서 경쟁 구도를 심화하고, 대중의 구미에 맞는 인간형을 판매하는 시스템을 비대하게 살찌우는 먹이이기도 했다. 이 세계는 누구를 숭배하면서 동시에 그를 통제하려는 양면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유지된다. 아사이 료의 <꿈의 무대, 부도칸>은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소설이지만,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예 프로덕션과 휴대전화 회사의 합작 오디션에서 선발된 여섯 명의 소녀들은 넥스트 유라는 그룹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중 한 명이 졸업이라는 이름으로 탈퇴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아직은 시디(CD)에 악수회 응모권을 끼워 파는 전략이 없으면 오리콘 일간 차트에 드는 것도 어려운 넥스트 유이지만, 그들의 구호는 언젠가는 부도칸에 간다는 것이다. 일정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가수들만 설 수 있는 무대 부도칸. 그저 공연 규모와 관련한 이야기 같아도, 하나의 목표가 된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아이코도 다른 소녀들과 함께 달려간다. 모두가 나만 주목하는 그곳을 향해. 이야기 자체는 요새 우리가 흔히 보는 다큐멘터리나 다를 바가 없다. 매주 금요일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보는 광경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도쿄 아이돌스>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아이돌 산업의 빛과 그림자, 환한 조명 뒤의 눈물. 그렇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아사이 료이다. 그의 가치는 최연소 나오키상 수상 작가란 타이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자음과모음)로부터 시작한 그의 소설에는 늘 어둠과 밝음으로만 가릴 수 없는 인간의 미묘한 심리와 삶의 과정을 거쳐 가는 성장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꿈의 무대, 부도칸>도 결국은 소녀들의 선택을 말한다. 아이코는 이해할 수 없다. 익명의 악플, 도촬, 신상털기, 이런 일에도 왜 화를 내면 안 되는지. 팬들은 응원하는 아이돌이 인기가 올라 바빠지길 바라면서도 왜 에스엔에스(SNS) 업데이트 등을 소홀히 하면, 명품을 사면, 남자친구를 사귀면 화를 내는지. 왜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불행을 보기를 즐기는지. 왜 사랑하면서 비난하는지. 모든 사람의 선택에 빨간 동그라미를 해주고 싶어 하는 아이코는 옳은 선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옳았던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삶임을 배운다. 소설은 아이코와 넥스트 유 1기 소녀들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중간에 누군가의 부도칸 공연을 준비하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삽입한다. 아이돌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들이 언젠가는 꿈의 무대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고척 돔으로, 잠실 주경기장으로, 그보다 더 큰 세계의 스타디움으로 가기를. 하지만 응원이란 결국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들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 되도록 함께한다는 뜻이다. 나는 나의 아이돌의 선택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줄 수 있는 팬이 되고 싶었다. 나중에 꿈의 무대에서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간에.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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