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살림(2019) 베스트셀러는 작품을 넘어선 현상이다. 내용보다는 책이 알려진 사연이 더 쉽게 유통되기도 한다. 현재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칼라하리 사자와 갈색하이에나,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수십 년 동안 연구했던 동물행동학자가 70대에 접어들며 첫 번째 소설을 냈다. 2018년 8월 출간 이후 배우이자 제작자인 리즈 위더스푼이 헬로 선샤인 북클럽에서 이 책을 소개했다. 그 직후에는 판매고가 수직상승하여, 현재는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머무른 지 40주가 넘었다. 리즈 위더스푼은 벌써 영화 제작에 나섰다. 바깥 이야기가 더 흥미로운 베스트셀러들과는 달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담긴 이야기는 작품의 배경인 해안 습지만큼이나 깊고 반짝인다. 소설은 크게 소녀의 성장 서사와 살인 미스터리의 두 경로로 나뉘어 진행된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바다를 면한 늪, 1969년 거기서 마을에서 사랑받는 청년인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가 발견된다. 소설의 한 흐름은 1952년부터 1969년에 이르기까지 습지에 사는 “마시 걸” 카야의 삶을 그린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떠나고 그 후에 차차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게 된 카야는 자연이 준 선물로 삶을 이어간다. 사회에서 거절당하고 혼자 살아가는 카야에게 외부와의 접촉이란 생필품을 제공해주는 잡화점 주인 점핑과 그 아내 메이블, 그리고 처음으로 글을 가르쳐주고 습지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동네 소년 테이트뿐이다. 소설의 또 다른 길은 1969년의 시점에서 체이스 앤드루스의 사망 사건을 조사한다. 소방망루에서 떨어진 체이스의 죽음은 과연 살인일까? 수수께끼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 사건이 카야의 삶과 어떻게든 얽힐 것을 안다. 그리고 마침내 접점이 생겼을 때 소설은 다시 법정 스릴러로 변모한다. 개성적인 인물, 자연의 서정이 담긴 시적인 언어, 동물 집단인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긴장감을 주는 서사 구성까지 갖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성실하고 힘이 있는 소설이다. 오랫동안 동물의 무리를 연구해온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고립된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실제로 이 생각은 카야의 오빠 조디의 대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에게 남는 것 그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무리에서 떨어진 카야는 늘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랐다. 그러나 거절당해도 인간은, 생명은 생존해나갈 수 있다. 그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의미이다. 동물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그곳을 발견한 사람의 삶은 충만하다. 인간의 삶을 환경에 적응한 동물의 행동으로 파악한 오언스의 시각은 분명히 이 소설의 장점이다. 하지만 여기에 철학적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동물로서 우리가 황소개구리, 반딧불, 코끼리처럼 행동한다면, 인간의 선택에는 어떤 의지가 있을까? 각자 카야의 선택에 다른 대답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선택을 이해할 여지가 있다는 건 역시 우리가 같은 종족이라는 뜻일 것이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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