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국가는 국왕의 몸…14세기 바퀴 상징을 풀다

등록 2020-01-24 06:00

12~13세기 독일·영국의 성경 시편 삽화 속 우주 질서 상징에서 실마리
논문 집필 시작했으나 ‘국왕이 바라보는 거미’ 의미는 여전히 미궁
[책&생각]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

19) 롱소프의 바퀴-도상학으로의 길 2

지난 글은 원이나 구, 혹은 바퀴가 중세의 상징체계에서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는 데서 끝났다. 그때 연구했던 이미지 중 하나가 이 연재의 7회분 기독교 상징체계의 신체(<한겨레> 2019년 3월29일치 31면)에서 소개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신의 역사>(1141~1152) 필사본 삽화이다. 당시에 설명했듯 그 이미지에서 신의 몸을 이루는 원들은 우주를 이루는 물, 불, 흙, 공기, 에테르의 다섯 원소를 상징한다. 빙엔은 원문에 이 원들을 바퀴, 라틴어로 로타(rota)라고 적었다.

이와 비슷한 이미지들 중에는 1170년대 독일의 힐데스하임 지역에서 제작된 <슈탐하임 미사 경본>(Stammheim Missal)에 실린 삽화도 있다.(사진 1) 여기에선 신이 바퀴를 잡고 있다. 빙엔의 이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이미지에서도 바퀴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신이 창조한 우주의 시원적 질서를 의미한다. 이 바퀴에는 여섯개의 작은 원이 등장한다. 이들은 창세기에 그려진 창조의 6일을 나타낸다. 그 안에는 빛과 어둠이 갈라지고 하늘과 땅이 나눠지며 생물들이 탄생하는 창조의 순간들이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각각의 날에 맞춰 등장한다. 바퀴의 한가운데에는 한 남성이 잠들어 있고 그 옆구리에서 한 여성이 왼쪽에 보이는 손의 부름에 응하듯 눈을 뜨고 일어나고 있다. 쓰여 있는 글씨를 보지 않아도 잠든 남성은 아담을, 여성은 이브, 손은 그녀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바퀴 아래에는 두 장면이 그려져 있다. 왼쪽에는 천사로부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고, 오른쪽에는 카인에 의한 아벨의 살해가 그려져 있다. 맨 아래에는 다윗왕이 “주께서는 하늘과 땅, 바다 위와 바닷속 깊은 곳 어디에서나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는 분이시다”라는 시편 135장 6절의 구절이 담긴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삽화 속의 두루마리에는 시편 구절의 일부인 Omnia quaecumque voluit Dominus fecit만이 약자로 쓰여 있다.)

그림 1. <슈탐하임 미사 경본>, 1170년대. 폴 게티 박물관 제공
그림 1. <슈탐하임 미사 경본>, 1170년대. 폴 게티 박물관 제공
원과 바퀴는 우주의 질서를 의미

앞서 빙엔의 이미지를 설명하면서 신은 우주를 창조하고 이끌어가는 이성 내지 원리로서 인간의 머리에 비유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연장선상에서 신이 창조한 우주 질서는 그러한 신이 물질 안에 구현되어 밖으로 드러난 모습으로서 인간의 몸에 비유되곤 했다. 머릿속의 생각이 신체를 지배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듯, 신은 우주를 이끌고 우주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빙엔의 이미지에서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는 바퀴들을 신의 몸으로 그려놓은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슈탐하임 미사 경본>의 삽화에서 창조의 질서를 상징하는 바퀴가 신의 몸을 덮고 있는 것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실 빙엔의 이미지와 <슈탐하임 미사 경본> 삽화 이미지의 기본 구도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똑같다.

1265년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 시편 삽화는 동일한 구도를 써서 우주 질서와 신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또 다른 예다.(사진 2) 7회에서 엡스토르프 지도를 설명하면서 중세의 상징적 세계지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이미지에서 신의 몸 위에 겹쳐 그려진 세계지도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구를 상징하는 원의 한가운데에는 예루살렘이 그려져 있다. 엡스토르프 지도와 마찬가지로 이 지도에서도 동쪽이 위에, 서쪽이 아래에, 따라서 아시아가 위에, 유럽은 아래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동쪽이 진리가 발원하는 신성한 방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쪽이 신의 머리를 향해 위쪽에 배치된 것이다. 빙엔의 이미지와 슈탐하임 삽화, 그리고 이 상징적 세계지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이들이 얼마나 동일한 구도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림 2. 시편 삽화, 1265년경,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림 2. 시편 삽화, 1265년경,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이미지들을 연구하면서 필자는 14세기에 롱소프 벽에 그려진 국왕과 바퀴의 이미지(사진 3)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중세의 정치이론에서 국왕은 신의 대리인이자 신의 모상으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국가는 바로 그런 신의 대리인이 지배하는 작은 우주처럼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신과 우주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동원된 메타포와 구도를 국왕과 국가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신과 우주의 질서를 나타낸 이미지들에서 원과 바퀴가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듯, 롱소프 벽화에 등장하는 바퀴는 국가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원과 바퀴를 신의 신체 위에 겹쳐놓음으로써 우주는 신의 몸이라는 사고를 표현했듯, 롱소프 벽화에서 왕의 몸 위에 등장하는 바퀴는 국가는 국왕의 몸이라는 사고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롱소프 벽화가 그려진 시기에 국가는 국왕의 신체라는 생각이 유행했다는 점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12세기 영국의 대표적 지식인인 솔즈베리의 존이 국왕은 머리에, 국가는 그의 신체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펼친 이래, ‘국가=국왕의 신체’라는 메타포는 유럽의 정치 문헌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필자의 가설이 맞다면 롱소프의 벽화는 이성에 의한 감각의 통제라는 자연과학적이고 윤리적인 주제가 아니라, 왕의 지배와 국가의 이상적 질서를 상징화한 정치적 이미지로 보아야 했다. 이 가설대로라면 필자는 지금 국가는 국왕의 신체라는 생각을 나타낸 이미지들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미지를 앞에 두고 있는 셈이었다. 이렇게 하여 기존의 해석과 완전히 다른 해석을 제시할 가능성이 열렸다.

그림 3. 다섯 감각의 바퀴. 롱소프 타워, 케임브리지셔 피터버러, 14세기.  필자 제공
그림 3. 다섯 감각의 바퀴. 롱소프 타워, 케임브리지셔 피터버러, 14세기. 필자 제공
논문 집필 마지막날 번개처럼 생각난 구절은…

논문 집필을 시작했으나, 여전히 두 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나는 다섯 감각의 상징을 바퀴 주변에 배치한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국가를 국왕의 신체로 묘사하는 여러 중세의 저자들은 흔히 가슴과 심장을 고위 귀족들과 조언자들에, 두 팔과 손은 군대와 관리에, 두 다리는 상인과 농민 계급에 비유하곤 했다. 연장선상에서 눈이나 입과 같이 신체의 생명활동에 관계된 주요 기관을 주요 관리나 관직에 비유하는 일이 드문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롱소프 벽화에 등장하는 다섯 감각의 상징을 국왕을 보좌하는 주요 기관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느낌은 필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두번째 의문은 국왕이 유독 거미줄에 앉은 거미를 응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12세기부터 13세기에 쓰인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거미에 대한 항목을 샅샅이 훑었지만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다. 결국 그에 대한 논의는 빼고 집필을 진행했다. 어차피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긴 글이 될 터였다.

생각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어쨌든 집필은 진행되었다. 투고할 학술지도 정해졌다. 어둠이 내린 어느 저녁, 베를린 제2국립도서관 일반열람실에서 마지막 문장을 썼다. 아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며 가방을 챙겼다. 이제 다음날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기만 하면 더는 할 일이 없었다. 출입문을 향해 낡고 색이 바랜 카펫이 깔린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의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필자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어떤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어떤 책에서 스쳐가듯 읽었던 어떤 구절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