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스미디어(2020) 거리 두기라는 말이 주요 화두가 된 시절이다. 직면한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도 심리적으로도 거리 감각은 늘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시간 스트리밍과 개인 창작 미디어의 시대에서는 타인의 삶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 콘텐츠화하기도 하고, 오로지 이입하거나 이상화할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만을 받아들인다는 태도들이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내가 절대로 일치해서는 안 될 인물의 관점에서 지속하는 이야기는 존재할 가치가 없는가? 우리는 타인과 거리를 두고 그를 바라볼 능력이 없는가? 많은 작가는 단호히 아니라고 할 것이다. 특히 찬호께이 같은 작가라면. 중국어권 추리소설의 존재감을 단단히 새긴 <13.67> 이후로 찬호께이의 작품은 국내에 꾸준히 소개되었다. <디오게네스 변주곡>은 그가 10년 동안 발표한 단편소설을 모은 작품집이다. 소설집 내에는 에스에프(SF)나 호러, 우화적 판타지 같은 단편도 있지만, 모두 작품의 길이와 무관하게 특이하게 보이는 사건에서 또 한 번의 반전을 노렸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리고 이 소설들을 읽을 때는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화자를 좋아할 수 없으며, 좋아하게 되었더라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작가는 기존 발표 작품을 모았지만, 무작위적인 수록이 아니고 작품 간의 조화를 살리기 위해 변주곡이라는 구성을 차용했다고 한다. 각각의 작품은 특정한 클래식 음악과 짝을 지었으며, 실로 각 단편의 분위기와 음악이 꽤 어울린다. 소설은 스토커, 살인자, 탐정, 환상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내가 쉽게 일치할 수 없는 자들이지만, 그들의 눈을 통해서 세계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공포와 혐오감이 독서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습작 수준의 엽편도 있고, 꽤 중량감 있는 단편도 있다. 옛 TV 시리즈 <환상 특급>에 향수가 있다면 ‘산타클로스 살인사건’을 좋아할 것이며, SF적 세계관에 익숙하다면 ‘가라 행성 제9호 사건’의 반전을 알아차릴 것이다. 정통 추리소설과 그 변주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마지막 작품인 ‘숨어 있는 X’가 좋다. 비 오는 토요일, 대학의 추리소설 수업 강의에서 눈 내린 산장의 범인을 추론하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로, 마지막 대사가 유쾌한 반전을 준다. 이 단편집에는 친절한 작가 후기가 붙어 있다. 여기서 작가는 <디오게네스 변주곡>이라는 제목을 설명한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유명한 일화, 셜록 홈스 소설 속 클럽에 대한 언급을 거쳐 작가는 자신의 창작 시기를 회상한다. 요란한 삶 속에서 멀어져 조용히 사색하며 이야기를 상상하는 시간이 즐겁다는 말이다. 남들과 멀어져 자기만의 통 속에 들어가는 시절, 외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이길 창조적 힘을 낸다면 이를 우리의 디오게네스 시간으로 삼아도 좋겠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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