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금민 소장
금 소장은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를 만들어 상임이사로 이끌었고 5년 전엔 대안 연구소를 꾸려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그가 최근 기본소득 논의의 역사와 이론적 정당성, 디지털 경제 시대에 갖는 함의 등을 두루 살핀 책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지금 바로 기본소득>(동아시아)을 펴냈다. 22일 서울 합정역 근처 대안 사무실에서 금 소장을 만났다.
“왜 이번에 모두 재난소득을 받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쉽게 재난 때문이라고 해요. 저는 앞으로 사람들이 우리가 다 토지나 생태, 지식, 데이터 같은 공통부의 주인이어서 받는 것이라고 답하게 하고 싶어요. 지적 실천 활동을 통해서요.”
최근작도 그런 실천의 결과물이다. “복지가 확장하면서 사람들은 국가가 나눠주는 것은 당연시해요. 하지만 모두에게 주자고 하면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많아요. 모두에게 무엇을 그리고 왜 나눠줘야 하는지 책에서 설명하고 싶었어요. 이는 (생산자와 사용자를 연결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도 현재성이 있어요.”
그는 기본소득 사상의 뿌리를 토머스 페인(1737~1809)의 이중적 소유권 이론에서 찾았다. 페인은 미국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소책자 <상식>의 저자이다. 페인은 <토지정의>(1797)에서 토지 등에 대한 원천적 공유는 자연적 소유권이라며, 사적 소유인 인공적 소유권과 구분했다. “페인은 토지를 모두의 것으로 봤어요. 그래서 개간으로 토지 가치가 증대하더라도 토지 개간 수익의 일부는 모두에게 나눠야 한다고 했죠. 개간자가 토지를 창조한 것은 아니잖아요. 페인은 이런 공통부의 분배를 처음으로 자비가 아니라 정의의 관점에서 본 사람이죠.”
그가 책에서 특히 강조한 논점은 디지털 시대의 데이터도 토지와 같이 모두의 것인 공통부라는 사실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플랫폼 자본은 데이터를 모아 만든 빅데이터로 큰 수익을 냅니다. 데이터가 황무지라면 빅데이터는 개간된 토지이죠. 이용자가 구글에 접속하는 순간 데이터가 생기는데 데이터는 그 자체로 별 가치가 없어요. 플랫폼 회사 소유도 아니고요. 하지만 데이터가 없으면 엄청난 수익의 원천인 빅데이터가 나올 수 없죠.” 데이터가 모두의 것이란 생각은 빅데이터가 일군 수익도 나눠야 한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구글과 페이스북으로부터 어떻게 수익을 거둘 수 있을까. “전 세계 플랫폼 무역협약을 체결해 거대 플랫폼 회사에 대해 공유지분권을 설정해야죠. 그렇게 조성한 기금을 모두에게 나눠야 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내 스타트업 기업도 공유지분권을 설정해 이익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써야죠. 빅데이터가 공동소유임을 명문화하는 입법도 필요하고요.”
자동화 시대 ‘일자리 없는 사회’에 대한 공포도 기본소득 주장을 강화하는 배경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단기적으로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합니다. 자동화로 일자리 10개가 없어지면 혁신적 성격의 일자리는 한 개 정도 생겨요. 하지만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은 노동자의 임금 협상력을 키워 자동화 시대에도 임금 수준을 올릴 수 있죠. 이는 또 더 많은 자동화와 더 높은 지식 생산성으로 연결됩니다.”
2007년 대선 사회당 후보로 출마
‘1호 공약 기본소득’ 최초 공론화
기본소득한국네트 상임이사 활동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출간해 ‘공통부의 분배는 자비 아닌 정의’
“코로나19 효과 국민 인식 넒어져” 그는 책에서 일자리 보장을 강조하는 ‘노동주의’가 기본소득 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썼다. 정부의 일자리 보장 정책도 기본소득 도입을 지연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으로 평했다. “일자리 지키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동운동 진영에서 기본소득 의제를 채택하기는 어려워요. 민주노총에서도 10% 정도 소수파만이 기본소득을 말합니다. 하지만 영국이나 스위스 등 외국에선 꽤 지지가 있어요. 독일은 자동차 회사 노조들이 속한 금속노조는 격렬히 반대하지만 공공서비스노조는 미온적으로 지지하죠.” 하지만 지금 일자리를 보호하는 투쟁은 반대하지 않는단다. “노동이 신성해서가 아니라 일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이 존엄해서죠. 지금은 일자리 외에 다른 생계수단이 없잖아요. 하지만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언제쯤 가능할까? “다음 정권에서는 가능할 것으로 봐요. 그때는 기본소득 지급 논의를 해야 할 겁니다. 모든 토지에 매기는 국토보유세 토지배당을 도입하고 소득세도 거둬 분배액을 높여야겠죠. 토지배당은 국민 공감이 꽤 높아요. 소득세는 뜨거운 감자가 되겠죠. 탄소세 배당은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 설득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가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만난 때는 독일 유학 중이던 98년이다. 그때만 해도 기본소득이 좋기는 하지만 공상적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85년 유학을 간 독일에서 여행으로 머문 기간까지 꼬박 15년을 살았다.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정치철학도 공부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프랑스 생태주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1923-2007) 책을 읽고 기본소득을 알게 되었죠. 그땐 제가 노동의 미래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기본소득의 현실적 맥락이 잘 안 잡히더군요. 그러다 2006년 사회당 대표로 추대된 뒤 당 정책을 업그레이드할 때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느꼈죠. 그 시절엔 북유럽식 복지국가모델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저는 어렵다고 봤어요.” 왜? “노무현 정부 시대를 지나 노동 유연화가 너무 많이 됐어요. 늘어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는 게 어렵다고 봤죠. 2007년 대선 때 제 기본소득 공약을 두고 신자유주의에 투항한다는 비판까지 받았어요. ‘베짱이 투쟁’이라거나 ‘트로이의 목마’란 소리도 들었어요. 기본소득이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좌·우에서 두루 지지를 받는 현실도 그런 비판에 영향을 미쳤겠죠.”
언제 기본소득에 대한 확신이 들었냐고 하자 그는 “세 차례”라고 답했다. “처음은 2008년 경제위기입니다. 그때 독일에서 기본소득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등 기본소득 논의가 뜨기 시작했어요. 그때 내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번째는 알파고가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을 꺾을 때죠. 이때부터 인공지능과 자동화, 다지털 전환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시작했어요. 기본소득에 대한 탐구도 그 쪽 방향으로 넓혔고요. 마지막은 이번 코로나 재난소득입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비례로 의원을 배출한 기본소득당 평당원이기도 하다. 이 당은 올 1월 노동당 탈당자들을 중심으로 창당했다. “2만 당원의 3분의 2가 20대이고 3분의 1은 30대입니다. 세대 차를 많이 느껴요. 정규직 노동자는 거의 없고 대부분 알바 노동자이거나 투잡을 뛰는 가정주부입니다. 사실 우리 국민의 절반이 이렇게 사는데 사회 세력으로는 너무 힘이 없어요. 지금껏 조직운동이 이들을 경시해서죠. 우리당 당원 대부분이 면세 소득이라 후원금 걷기도 어려워요. 버젓한 직장을 다니면 후원금 12만원 중 10만원은 세액공제로 돌려받잖아요.”
그가 2015년 12월 설립한 대안에는 상근 4명, 반상근 2명 등 모두 6명의 연구원이 있다. 연구소는 기본소득을 다루는 국내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단다. “기본소득 연구자들이 많지는 않아요. 30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들 결속력은 높은 편이죠. 대학원생도 참여하는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에도 30여명이 참여하고 있어요.”
다음 대선의 유력 후보군 중에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에 가장 적극적이다. 그는 다음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쪽과 정책 연대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후보자를 지지할 수도 있겠죠.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편입니다. 데이터 배당도 이야기하니까요. 지역화폐 사용으로 발생한 데이터를 공개해 기업에 데이터 사용료를 거두기도 했죠.”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설 계획은 없냐고 물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것은 아무도 기본소득 이야기를 하지 않아 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설 필요가 없죠. 제가 사회에 효과적으로 쓰이는 분야는 기획과 정책 그리고 연구입니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대학이나 기업에서 월급장이로 살아본 적이 있냐고 하자 고개를 저었다. “제가 ‘9시에서 오후 6시(9to6) 형 인간’이 아닙니다. 프로젝트형이죠. 하하.”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이젠 기본소득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기본소득 지지가 62%가 나오더군요. 코로나 재난소득 효과로 (지지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요. 코로나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의 장이 바뀐 거죠. 예전엔 기본소득 이야기를 하면 왜 부자한테 돈 주느냐, 왜 일도 안 하는데 주냐는 말로 끝나버렸는데 이젠 기본소득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기본소득을 주면서 재정 건전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등이 논의 주제로 떠올랐어요.” 금민(58)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은 2007년 대선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하며 기본소득 지급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은 한국 사회의 주요한 의제가 된 기본소득이 대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기본소득은 국가나 사회공동체가 구성원 모두에게 어떤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금민 소장의 신작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표지.
‘1호 공약 기본소득’ 최초 공론화
기본소득한국네트 상임이사 활동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출간해 ‘공통부의 분배는 자비 아닌 정의’
“코로나19 효과 국민 인식 넒어져” 그는 책에서 일자리 보장을 강조하는 ‘노동주의’가 기본소득 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썼다. 정부의 일자리 보장 정책도 기본소득 도입을 지연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으로 평했다. “일자리 지키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동운동 진영에서 기본소득 의제를 채택하기는 어려워요. 민주노총에서도 10% 정도 소수파만이 기본소득을 말합니다. 하지만 영국이나 스위스 등 외국에선 꽤 지지가 있어요. 독일은 자동차 회사 노조들이 속한 금속노조는 격렬히 반대하지만 공공서비스노조는 미온적으로 지지하죠.” 하지만 지금 일자리를 보호하는 투쟁은 반대하지 않는단다. “노동이 신성해서가 아니라 일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이 존엄해서죠. 지금은 일자리 외에 다른 생계수단이 없잖아요. 하지만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언제쯤 가능할까? “다음 정권에서는 가능할 것으로 봐요. 그때는 기본소득 지급 논의를 해야 할 겁니다. 모든 토지에 매기는 국토보유세 토지배당을 도입하고 소득세도 거둬 분배액을 높여야겠죠. 토지배당은 국민 공감이 꽤 높아요. 소득세는 뜨거운 감자가 되겠죠. 탄소세 배당은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 설득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금민 소장. 강성만 선임기자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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