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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문명, 녹색으로 맞선 ‘생태적 인간’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별세

등록 2020-06-25 16:09수정 2020-06-26 02:30

격월간지 〈녹색평론〉 발행·편집인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 별세
“생태학적 관심 없이 새로운 사상, 사회운동 있을 수 없다”
지난해 4월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내고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종철 발행인.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해 4월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내고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종철 발행인.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격월간지 <녹색평론>의 발행·편집인인 생태사상가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가 2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3.

 영문학자이자 운동가, 사상가로 지속가능한 생태 문명과 공동체 건설을 주장해온 그는 2008년께부터 기본소득 논의에 참여하며 초기 주창자로서 이론을 소개하고 운동에 참여하는 등 끊임없이 행동해온 지식인이자 실천가였다.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영문학과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70년대에 문학비평을 시작한 그는 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 참여했으나 그만두고 창작과비평 계열의 민족문학론과 제3세계 리얼리즘론에 입각한 비평활동을 펼쳤다. 1978년에 첫 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을 내놓고 무려 20여년 뒤인 1999년에 두번째 평론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묶어 냈는데, 그사이에 그에게는 근본적인 사상적 변모가 있었다. 역사와 리얼리즘에 바탕한 문학비평보다는 환경과 생명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지금은 생태학적 관심을 중심에 두지 않는 어떠한 새로운 창조적인 사상이나 사회운동도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판단은 1991년 생태 비평지 <녹색평론>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1999년에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녹색평론>을 내기 전에 저는 거의 미칠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현대 산업기술문명은 인류라는 종의 “거대한 집단자살체제”와 다름없었는데, 그런 절박한 문제의식을 내보이고 나눌 마당이 마땅치 않았다. 1991년 창간 뒤 올 5·6월호로 통권 172호를 기록하기까지 꾸준히 발행해 오고 있는 <녹색평론>이 그 마당 역할을 했다.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단 <녹색평론> 창간사를 그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지금 상황은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전면적인 위기, 정치나 경제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문화적 위기, 즉 도덕적·철학적 위기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를 발한 그는 농업과 생태적 상상력에서 희망의 희박한 근거를 찾는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남고, 살아남을 뿐 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 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녹색평론>은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았으며, 그렇게 모인 목소리는 전국 곳곳의 독자모임 등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갔다. 김종철 발행인은 2013년 녹색전환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문명사적 사상 전환을 모색하는 한편, 녹색당 창당에 참여해 ‘녹색 사상’의 정치 세력화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그 무렵부터 최근까지 <한겨레> 오피니언면 ‘특별기고’ 칼럼을 통해 생태적 상상력 회복과 함께 추첨제 민주주의, 기본소득제, 대안 에너지 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녹색평론> 발행을 비롯한 생태적 글쓰기와 환경주의 활동에 매진하느라 어느 시점부터는 문학비평에서 거의 손을 떼다시피 했던 그는 지난해 4월 윌리엄 블레이크, 찰스 디킨스, 프란츠 파농 등 외국 문인들의 작품을 다룬 글을 묶은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내고 오랜만에 <한겨레>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그는 “지금은 전면적인 문명의 전환기이자 인류의 존속이 걸린 위기 상황인데 지식인들과 문인들은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과 서운함을 나타냈다.

김 발행인은 지난 4월17일 치 <한겨레>에 실린 칼럼을 마지막으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칼럼 집필을 중단했다. 이 칼럼을 보완해 <녹색평론> 5·6월호 권두언에 ‘코로나 환란, 공생의 윤리’라는 제목으로 실은 글에서 그는 지금 지구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산업발전과 소비주의의 소산”이라며 “이윤을 위한 이윤 추구, 소비라기보다는 끝없는 낭비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시스템을 종식시키는 방향으로 사회적 역량이 총동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씨와 아들 형수씨·딸 정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9시다. (02)2227-7556.

최재봉 김정수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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