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이 너무도 생경하다. 늘 시끌벅적하던 도심에서도, 시장에서도 사람들이 사라졌다. 버스, 지하철의 승객도 현저히 줄었고, 거리의 행인들도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꼭꼭 감싼 채 빠른 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용한 동네 산책길에서도 사람들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타인의 출현에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지며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식당, 카페, 쇼핑몰, 영화관, 공연장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공공장소들이 끔찍하리만치 적막해졌다. 늘 개방돼 있던 학교 운동장들도 일제히 닫혀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라고 소문난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이 이토록 가라앉아버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하기는 한국만 이런 게 아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란, 이탈리아,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있는 곳은 어디서든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에서도 레스토랑에 손님이 끊어졌다는 소식이 들리고, 세계적인 관광 명소들이 폐쇄된 이탈리아에서는 식료품점의 파스타가 동나고, 심지어 마스크 한장을 구하는 데도 50~60유로라는 고액을 치러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은 예외적으로 나쁜 경우가 아닌 모양이다(존스홉킨스대학의 한 연구소가 작년 10월에 발표한 ‘2019년도 세계보건안전성 지표’라는 것을 보면, 195개국 중 한국은 세계적 유행병에 대응할 준비가 가장 잘되어 있는 최상위 10개국에 속해 있다. 이 10개국에 포함된 비서구 국가는 타이(6위)와 한국(9위)뿐이고, 이탈리아도 독일도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의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것은 물론 ‘신천지’ 탓이 크다. 하지만 ‘신천지’도 결국은 피해자이다. 이 점을 잊고 그들을 손쉬운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매우 우둔한 짓이다).
돌이켜보면, ‘사스’나 ‘메르스’가 유행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바이러스에 실제로 감염된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보통의 생활인들이 행하고 있는 이 ‘자가 격리’에는 좀 과도한 측면이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계의 견해로는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감염력이 강하기는 하지만 치사율도 그리 높지 않고, 대부분은 가벼운 증세를 유발할 뿐이라는데, 왜 우리는 이토록 공포에 질려 있을까. 그러나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일절 중단된 이 상황을 우리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도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지금은 버티고 있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까. 심각한 경기침체로 인한 시련 이외에도, 장기간의 고립에 따른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등, 정신적 고통의 광범한 확산이라는 또 다른 큰 재난을 우리는 겪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번의 코로나 사태는 어떻든 종료되는 날이 오겠지만, 이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들은 앞으로 더욱더 빈번히 창궐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과학자들이 지목하는 현상, 즉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사회 가까이로 접근해올 확률은 매우 높고, 그 과정에서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을 통해서 바이러스들이 인체로 건너오는 현상이 더욱 빈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끊임없이 출현할 신종 병원체들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즉 항구적인 비상상황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생태계가 광범하게 파손된 상황에서는 바이러스만 인간을 괴롭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에 의한 가공할 재난들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갈수록 극성스러워지는 홍수, 태풍, 가뭄, 기근, 물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생물종의 대량 멸종 사태에 따른 재앙 등등, 생각만 해도 끔찍한 지뢰밭들이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아직도 기후위기라고 하면 기껏 에어컨이나 전기 자동차를 떠올리는 도시인들이 적지 않지만, 이제는 자동차의 유리창에 부딪히는 곤충들마저 확연히 줄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막연하게나마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작년 7월 이후 전례 없이 혹심한 산불로 대재난에 봉착했던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최근 쏟아진 대량의 비 덕분에 전면적 참화는 모면했다. 그 산불로 인해 원시림을 포함한 호주의 광대한 삼림지대가 잿더미가 되고, 토착민들의 삶터가 붕괴되고, 10억 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생태계의 균형이 돌이킬 수 없이 깨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관으로 명성이 높았던 이 나라의 생존의 자연적 토대는 엄청난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의 최근 르포기사에 의하면, 지금 호주인들 중에는 이 끔찍한 사태를 통해서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기후변화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즉, 화석연료를 그만두고 재생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종래의 온갖 제도와 관행 그리고 생활방식과 사고습관의 근본적 전환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휴가라면 으레 항공여행이나 크루즈 따위를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지 깊이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끔찍한 재난을 겪고 난 호주인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은 정치·경제적 변혁과 동시에 더욱 근원적인 변혁, 말하자면 ‘문화혁명’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깨달음은 왜 꼭 처참한 비극을 겪은 다음에야 오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호주인들의 이 통절한 깨달음에 담긴 메시지는 인류사회 전체를 위해 시사해주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쿤슬러라는 미국의 작가가 쓴 <장기 비상상황>(2005, 번역본은 <장기비상시대>·2011)이라는 책이 있다. 이것은 현대문명이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한, 급진적인 전환 없이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인류는 적어도 수백년 이상 ‘비상상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상세히 논증하고 있는 책이다. 쿤슬러의 예견은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선구적인 생태사상가들이 줄곧 해왔던 이야기다. 다만 이 책은 좀 더 과감하게 발언하고, 종합적인 그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는데, 저자는 우리가 비록 늦었다고 생각될지라도 시골의 작은 공동체들로 돌아가 자립성을 기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각에 공감을 하든 않든, 우리가 냉정히 인정해야 할 것은 온갖 정황으로 봐서 우리는 지금 장기적인 비상상황에 이미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이 갑갑한 상황은 그 신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김종철 ㅣ <녹색평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