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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의 마을] 성문 앞 보리수

등록 2020-09-04 04:59수정 2020-09-04 10:11

성문 앞 보리수 남 진 우

장님의 행렬이 지나간다. 누군가 등불을 들어 지나는 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석양의 재가 떨어져 쌓이는 지평선. 어디선가 은밀히 축제가 시작되고 떠들썩한 웃음과 거품 이는 술잔들이 오간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뒤안으로 가서 말라버린 우물을 들여다본다. 거기 잃어버린 눈들이 모여 살고 있다. 두레박을 내려 눈들을 퍼올린다. 장님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거센 바람이 부는 황폐한 거리. 누군가 등불을 들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내 눈에 가득 고인 검은 재가 바람에 불려 흩어진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뒤안 우물 속에 눈들이 나지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집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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