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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찾아서

등록 2021-05-28 04:59수정 2021-05-28 09:57

[책&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뉴 러브표

국청 외 지음/안전가옥(2021)

장르문학 창작 스튜디오 안전가옥의 일곱 번째 앤솔로지 <뉴 러브>는 새로운 시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잉여적인 표현 같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서사는 다 다른 형태의 관계를 말하고 있으며, 모든 이의 사랑은 죄다 다른 모습이다. 사랑을 인간 중심 헤테로섹슈얼 연애의 반대항에 놓는 작품들도 새롭다고 하기에는 오래전부터 익숙해졌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시작하는 것이 사랑이듯이, 사랑에 대한 소설들도 좌절을 감수하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뉴 러브>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기술적 발달 속에서 사람들이 관계에 대처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노력을 새로운 사랑으로 정의한 듯 보인다. 표국청의 ‘장군님의 총애’는 동명의 게임 속에서 인공지능 NPC(인간이 직접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 운영을 위한 캐릭터)끼리 사랑에 빠지면서 일어나는 버그를 다룬다. 황모과의 ‘나의 새로운 바다로’는 인간 정신을 지닌 기계 신체의 벨루가 벨카가 실제 벨루가 앵지와 나누는 깊은 교감, 그리고 벨카의 인간 어머니와의 연결을 그려내는 심오한 이야기이다. 안영선의 ‘롤백’은 죽은 군인 남편을 복제하여 되살리는 선택을 한 여자의 내적 갈등을 묘사한다. 하승민의 ‘사람의 얼굴’은 타인의 표정을 훔쳐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이코패스 의사를 그린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박태훈의 ‘가능성 제로의 연애’는 국가가 운영하는 알고리듬 기반의 소개팅 프로그램에 따라 인기 배우와 소개팅을 하게 된 물리학과 대학원생의 이야기로,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에피소드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같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는 것이 앤솔로지의 장점이다. 책의 서문에서 이은진 스토리 PD는 “사랑 이야기란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그 자체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욕심내고 무엇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이야기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닐까”라고 썼다. 결국 <뉴 러브>는 욕망의 우선순위를 탐색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사랑에 대한 취향이 다르듯이 다섯 편의 작품에 대한 독자의 선택도 다를 것이다. 나는 ‘장군님의 총애’를 인상 깊게 보았다. 이 단편은 두 개의 다른 층위에서 사랑을 다룬다. 하나는 게임 내에서 1장의 최종 보스 역할을 하는 진성과 주인공 플레이어를 돕는 동료 NPC 역할인 옥지 간의 금지된 사랑이다. 인간에게 익숙한 사랑의 개념을 비인간이 실행한다. 다른 하나는 이 게임의 프로그래머인 동진이 이 캐릭터들에게 느끼는 애정이다. 자기가 만들어냈으나 독자적 의식을 획득한 인공지능의 사랑을 지켜주려는 마음이 애틋하다. 이런 아름다운 감정들은 새롭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까. 그러니 새로운 사랑이란 우리 마음속 깊이 늘 있었으나 그간 덜 말해졌던 감정들인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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