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선수들의 도전 덕분에 무더운 여름이 행복했다. 성평등한 올림픽을 향한 작은 시도들도 눈에 띄어서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스포츠계에서도 시작됐다는 희망도 보였다. 하지만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여자들은 운동장에 있으면 안 된다. 스포츠는 남자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2018, 샤나 디야 제작, 우라즈 발 감독)는 인도의 양궁 선수 디피카 쿠마리가 여성 스포츠인에 대한 편견에 맞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디피카가 태어난 인도의 자르칸드주 라투 마을은 빈곤 지역이며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을 꺼릴 정도로 가부장적인 곳이다. 그의 숙부는 형수인 디피카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일하는 것에 트집을 잡고 폭행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별일 아니라고 웃으며 말하는 숙부의 얼굴을 카메라는 무심히 비춘다. 그런 곳에서 디피카는 집안에 경제적 도움이 되고 싶은 한편, 그곳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은 마음에 세라이켈라라는 무료 양궁학교로 찾아간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그의 도전은 직업을 가졌던 어머니의 지지와 딸을 일찍 결혼시키지 않은 아버지 덕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을 위한 무료 교육 시스템이 없었다면 재능은 꽃을 피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18살에 세계 1위 여자 양궁 선수가 된 디피카의 도전은 올림픽에서만은 계속 가로막힌다. 그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자국 여성 선수가 없다는 이유로 디피카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분위기는 그를 엄청나게 압박한다. 결국, 2012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데 실패한다. 언론은 디피카 선수를 일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은 디피카 선수가 메달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세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모든 상황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아예 그간의 노력과 성과조차도 인정받기 어려운 여성 스포츠 선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올림픽이 아니면 그 어떤 대회에서 우승을 해도 존중받지 못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디피카 선수를 보면서 ‘올림픽 메달’이라는 가치를 개발도상국에서 어떤 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멘탈 코치나 스태프도 없이 올림픽에 가는 선수의 뒷모습을 보면 그가 들고 있는 활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지원도 없이 강요된 올림픽 금메달로 인해 우울증이 생기고, 무너질 것 같은 디피카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계속해서 그의 도전이 이대로 끝나지 않기만을 염원하게 된다.
디피카는 늘 ‘레이디 퍼스트’라고 말은 하면서, 여자들이 교육이나 스포츠에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중요한 순간에는 왜 레이디 퍼스트가 적용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여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을 남자들은 두려워하는 것일 거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은 이미 미래를 향해 있다. 영화 속 통계를 보면 인도에서는 1% 미만의 여자들만 조직화된 스포츠에 참여한다. 디피카 선수는 2020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했고 8강까지 진출했다(하필 8강에서 안산 선수와 맞붙었다). 그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음에 안심하면서도 인도의 분위기가 조금은 변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큐멘터리의 말미에 디피카가 어린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변화의 시작이 엿보인다.
영화감독
강유가람 감독은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