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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혜영·혜정 자매…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같이 웃을 수 있길

등록 2022-09-02 19:00수정 2022-09-02 19:25

[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어른이 되면

“13살 때 너는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평생을 살아야 해. 너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어. 네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그래.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2018, 장혜영)은 언니 혜영의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동생 혜정은 서른이 될 때까지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지냈다. 언니는 어린 시절 돌보았던 동생을 사회로 데려와 다시 함께 살기로 한다.

너무나 오랜만에 같이 살게 된 두 자매의 동거는 쉽지 않다. 혜정이 시설에서 나오기까지 18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의 장애인 복지체계는 혜정이 시설에 들어가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로 이사 온 두 자매가 장애인 복지 관련 서비스를 신청하려면 6개월 이상 거주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국민연금공단의 활동보조 등급 심사는 한달 동안 고작 94시간의 서비스 시간을 통보한다. 혜영에게 생활비를 벌기 위한 노동 시간과 동생을 돌볼 시간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게다가 혜정과 함께할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것마저도 쉽지 않다.

혜정이 시설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이렇게 장애인 돌봄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 전담시키는 한국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있다. 장애인을 돌본다는 것은 긴 시간과 품이 들어가는 일이다. 개별 가족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 사회 전체가 ‘돌봄’을 함께하기보다는 특정 시설이 그 일을 맡고 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하루 종일 벽을 보고 살아도, 일평생 갇혀 살아도 괜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선택은 장애인 자신이 한 것이 아니다. 감독인 혜영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를 보고 있는 비장애인들에게 ‘돌봄’이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만 한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영화를 찍으며 감독은 자신이 몰랐던 동생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혜정은 춤과 노래, 스티커 사진 찍기를 좋아하며 커피 마시기를 즐긴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과 좋아하는 음악도 뚜렷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울기도 하며 짜증도 낸다. 동생의 새로운 면모와 취향을 만나가며 자매는 함께 있기 위한 둘만의 해법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쉽지 않지만,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시도 앞에서 둘은 행복해 보인다.

시설에 있던 혜정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 그렇게 <어른이 되면>이 되었다. ‘누군가의 삶을 위해, 누군가의 삶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어른이 되면>은 증명한다. 먼 훗날 언니 혜영과 동생 혜정이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더 많은 일을 함께 하고 좌충우돌하면서 살아가는 다큐멘터리를 꼭 보고 싶다. 영화 속 노래 가사 ‘언젠가 정말 할머니가 된다면 역시 할머니가 됐을 네 손을 잡고서 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 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처럼 웃을 거야’처럼 말이다.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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