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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선수 A’가 이름을 밝히다…성폭력에 맞선 미 체조선수 500명

등록 2022-08-19 19:00수정 2022-08-19 19:25

[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매기 니컬스는 국가대표 체조선수가 되는 것이 인생 목표였다. 그러나 자신을 치료하던 담당의가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신고한 이후, 대표 선발에서 탈락한다.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보니 코언, 2020)는 미국 체조계 성폭력 은폐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이다.

니컬스의 가해자는 29년간 미국 여자체조 팀의 담당의로 일했던 래리 나사르였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가혹한 훈련으로 심리적으로 취약해진 틈을 파고들었다. 간식을 주거나 거짓 위로로 선수들의 마음을 산 뒤, 치료라는 명목으로 성학대를 일삼았다. 선수들은 가혹한 훈련 때문에 자신이 당한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였다. 심지어 신고를 했던 선수들조차도 예민하다는 식으로 무시당했다. 놀라운 것은 2015년의 니컬스의 신고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997년에 첫 신고가 이뤄진 이후로도 신고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은 지속적으로 은폐되었다.

보니 코언 감독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역사적 맥락까지 살피며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1976년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가 14살의 나이에 올림픽 스타로 등극하기 전에는 주로 성인 여성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었다. 하지만 코마네치 이후 어린아이에 가까운 체형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국가대표는 어린 선수들 위주로 선발된다. 어린 선수들은 코치진이 통제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이들은 신체적 성숙을 미루기 위해 과도한 식이요법을 강요받거나 학대에 가까운 방식으로 훈련을 받았다. 게다가 코마네치를 키워낸 카로이 부부가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선수들을 양성하게 되면서 문제의 싹은 더 커졌다. 미국이 열광하는 체조선수들이 탄생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광고를 협찬했고 여자체조 협회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 부와 명예를 쥔 협회 회장은 결국 성범죄 사실을 은폐하기에 이른다. 승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기형적 구조의 엘리트 체육인 양성 방식이 나사르 같은 범죄자를 길러내는 토양이 되고 만 셈이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현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어서 화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나사르가 자신의 가해 사실을 부인하자, 신원을 밝히고 고소를 진행한 피해자도 나타난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 상황을 즐겼을 것이라거나, 한물간 체조선수가 인기를 얻기 위해 그런다는 식의 비난에까지 휩싸인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어린 선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런 비난을 이겨내고, 나사르를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직접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에 나선다.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들인 그들은 나사르에게 당신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가해자는 초라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원제이기도 한 <선수 에이(A)>로 익명 표기되었던 니컬스 역시 재판 과정에서 신원을 밝힌다. 니컬스가 이름을 밝히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싸우게 된 사람들이 겪었어야 할 시간들이 떠오른다. 5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음에도 29년이나 가해가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그 시간들 탓이 아니었을까.

영화감독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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