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아파트에 살면서도 ‘집집마다 앞마당’ 누리며 살 수 있다면

등록 2021-08-21 15:29수정 2021-08-21 18:18

[한겨레S] 유현준의 아파트의 미래 : 몬트리올 해비타트67
자연 접할 공간 없는 한국 아파트, ‘마당 있는 아파트’가 표준모델 된다면
집마다 다른 마당이 만드는 개성들…공사비도 절감되는 현장 조립 방식
몬트리올 해비타트67의 다양한 마당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몬트리올 해비타트67의 다양한 마당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 혁신적인 아파트는 무려 54년 전인 1967년에 지은 아파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이 아파트의 건축가는 싱가포르의 옥상 수영장이 있는 호텔 ‘마리나베이샌즈’를 설계한 모셰 사프디다. 이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라는 점이다. 건축가는 그리스 산토리니 같은 지중해 언덕에 있는 주거 양식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아파트에는 방 하나짜리 유닛부터 방 4개짜리까지 다양하게 총 158가구가 있다.

•하늘 볼 수 없는 우리의 발코니

우선 발코니와 베란다와 테라스의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 우리는 사진 속의 발코니를 흔히 테라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사진 속에 보이듯이 위에서 지붕이 막지 않고 아래층의 옥상을 바닥으로 사용하는 것은 ‘베란다’라고 한다. 테라스는 건물의 1층 부분에 있는 데크 같은 공간을 가리킨다. 흔히 길가 카페에서 건물 앞 주차장에 불법으로 만들어놓은 데크가 ‘테라스’다. 우리나라 아파트에서처럼 매달린 툇마루 같은 것은 ‘발코니’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파트의 발코니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너무 폭이 좁다. 건축법규에서 발코니로 인정되어 용적률 계산에 안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폭이 1.5m가 넘으면 안 된다. 쉽게 말해서 1.5m까지는 공짜로 더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모든 아파트의 발코니가 다 1.5m다. 그리고 최대한 이 법을 이용하기 위해서 집 앞에 모두 1.5m 폭의 발코니를 가진다. 그러다 보니 좁고 긴 발코니에 윗집 발코니가 지붕처럼 덮여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좁고 길다 보니 마주 보고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안 되고 빨래를 너는 것 외에는 기능이 별로 없다. 윗집 발코니가 덮고 있다 보니 하늘도 안 보이고 비도 맞을 수 없다. 

몬트리올 해비타트67 전경. 유튜브 화면 갈무리
몬트리올 해비타트67 전경.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 와중에 국민들이 침대에서 자는 것이 중산층의 삶의 형식이 되면서 방이 좁아지게 되었다. 이때 동네마다 생겨난 알루미늄 새시집들이 발코니에 창문을 달아주고 발코니를 방이나 거실로 확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제 우리의 집에는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씨가 말랐다. 그런데 이 사진 속의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에서는 아파트에 살지만 마치 마당이 있는 것처럼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베란다가 한쪽 변의 길이가 3m가 넘는 정방형에 가까운 비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하늘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햇볕을 쬐거나 화분이 비를 맞을 수 있다. 전망은 앞으로 확 열려 있어서 아마도 도심 속에 있는 주택 마당에서 바라보는 경치보다 더 좋을 것이다. 게다가 집집마다 각기 다른 바닥 마감재를 사용해서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어느 집은 빨간 타일, 그 옆집은 나무 데크를 깔았다. 각자의 집에 개성이 생겼다.

이 아파트가 더 좋은 이유는 가구별로 모양이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3천가구 아파트단지 내 거의 모든 가구가 밖에서 보면 똑같아 보인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과 그에 따른 자존감을 가질 수가 없다. 모든 집의 모양이 똑같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 집의 가치를 집값으로만 바라본다. 획일화가 되면 가치관이 정량화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집값, 성적, 연봉, 키, 체중 같은 정량화된 지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획일화된 아파트가 한몫을 하고 있다. 몬트리올 해비타트67처럼 각 가구가 주변의 집들과 다른 관계를 맺고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면 우리는 집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몬트리올 해비타트67 전경. 유튜브 화면 갈무리
몬트리올 해비타트67 전경.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집마다 개성이 생기다

158가구가 각기 다른 모양처럼 보이는 이 아파트의 가구 타입은 겨우 15개다. 몇개 안 되는 평면 타입으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풍경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각 가구를 쌓는 방식을 조금씩 다르게 해서다. 마치 레고 블록의 크기나 모양은 몇개 안 되지만 쌓아 올리는 방식을 다르게 해서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 패널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해서 공사 기간도 혁신적으로 단축했다. 일반적으로 건축 공사가 비싼 이유는 야외에서 작업을 해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까닭이 크다. 그런데 건축물 제작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고, 현장에서 조립만 하면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 이 건물이 있는 캐나다 몬트리올은 겨울이 길고 추워서 공사가 더 어려운데, 공장 제작 콘크리트 패널 방식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유닛들이 모여서 복잡한 형태의 전체를 이루는 형식의 디자인 개념은, 세포들이 모여서 유기체를 완성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세포 증식의 원리를 이용한 이러한 디자인 개념을 어려운 말로 ‘메타볼리즘’이라고 한다.

몬트리올 해비타트67 공사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몬트리올 해비타트67 공사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러한 아파트가 우리나라에 건설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에서 동간 사이에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법규와 건폐율 때문이다. 발코니를 만들면 주거 공간이 아닌 곳이 그만큼 건폐율을 차지하게 되고 아파트 동과 동 사이의 거리 계산에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아파트 건물 길이가 60m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 해비타트67의 디자인은 한국의 일반적인 아파트 모양인 성냥갑 같은 건물보다 표면적이 넓어져서 건설비가 올라가는 단점도 있다. 베란다 바닥의 방수 공사와 단열 처리 등 신경 쓸 일도 많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분양가 상한제를 해서 기껏 아파트 분양가를 억제하면 입주와 동시에 수억원씩 가격이 뛴다. 몇년 후면 분양가 상한제에 맞춰 지은 그리 좋지도 않은 건축물을 비싸게 사는 꼴이 된다. 물론 최초의 입주자는 엄청난 혜택을 보게 되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재건축 연한 30년 그 이상을 훨씬 넘기도록 점점 낡아가는 집을 비싸게 사는 셈이다. 좀 억울한 상황이다. 해비타트67 같은 양질의 베란다를 건폐율 손해 없이 분양 면적에 넣게 해주면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이런 건축물을 못 짓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건축법규라는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서 마당 같은 베란다나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가 일반 주거의 표준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


_____________
유현준 |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다양하고 지속가능한 아파트를 꿈꾸며 어떻게 지을 것인가, 어떻게 자연을 연결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해외 사례를 통해 모색한다. 4주 연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