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넷플릭스 제공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추이를 보면 넷플릭스 비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의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이자 최고콘텐츠책임자(CCO)인 테드 서랜도스가 27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코드 컨퍼런스 2021’에서 한 말이다. 앞서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이자 창립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에스엔에스(SNS) 인스타그램에서 <오징어 게임>의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자신이 457번 참가자임을 인증한 바 있다. 외국 온라인 쇼핑몰에선 주인공 기훈(이정재)의 번호 456번이 적힌 티셔츠, 달고나 만들기 재료 등이 팔리고 있다. 10여년 전 작품을 처음 구상해 끝내 세상에 내놓은 황동혁 감독은 이런 반응을 예상이나 했을까?
“방탄소년단, 싸이 ‘강남 스타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죠. 작품 속 단순한 놀이들이 세계적인 소구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고 넷플릭스와 작업했지만, 이 정도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킹덤>으로 갓이 뜬 것처럼 달고나도 뜨는 거 아냐?’라는 농담을 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얼떨떨합니다.”
황 감독은 28일 진행한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계속 잘 돼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됐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고 솔직한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오징어 게임>의 성공 비결로 “게임의 심플함”을 들었다. “전 세계 남녀노소 누구나 게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 안의 인물들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만화방에서 <라이어 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 ‘데스 게임’을 다룬 일본 만화를 보며 영감을 떠올렸다는 그는 “다른 작품들에선 게임이 어렵고 복잡해서 천재 같은 주인공이 진행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단순해서 보는 이들이 게임보다 사람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작품들처럼 한 명의 영웅이 이끄는 게 아니라 ‘루저’의 이야기”라는 것도 차별점으로 꼽았다. “루저인 기훈도 남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한 단계씩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 황 감독은 극중 징검다리 게임 얘기를 했다.
“징검다리 게임에서 살아남은 기훈과 상우(박해수)가 이런 대화를 해요. 상우는 ‘난 내가 죽도록 노력해서 내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어’ 하고, 기훈은 ‘우린 그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라고 해요. ‘이 사회의 승자들은 패자들의 주검 위에 선 것이다. 그 패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의 게임이어서 이 작품의 주제에 가장 잘 닿는다고 생각해요.”
황 감독은 10여년 전 작품을 처음 구상했을 때와 달라진 현실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10년 전에는 난해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그 사이 세상이 바뀌면서 현실감이 생겼어요. 슬프게도 세상이 바뀐 게 성공 원인이 된 거죠. 비트코인·부동산·주식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임이라는 소재가 공감과 관심을 불러온 것도 같고요.”
기훈은 쌍용차를 연상시키는 ‘드래곤 모터스’ 해고자로 나온다. 실제 쌍용차 해고자인 이창근씨는 페이스북에 이에 대한 언급을 하며 황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기회가 되면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대해 황 감독은 “쌍용차를 레퍼런스로 삼은 게 맞다. 평범했던 기훈이 어떻게 바닥까지 갔는지를 그 사건을 레퍼런스 삼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어느 순간 기훈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어요. 잘 다니던 직장이 도산하거나 해고되는 일은 지금도 많죠. 기훈이 이후 치킨집 하다 망하는데, 지금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위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여기까지가 아티스트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실제 이창근씨를 만나 얘기하는 건 다른 차원이라, 창작자로서 적절한 일인지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호평 일색인 국외와 달리 국내에선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남녀노소, 세대, 인종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야심이 있었는데, 국내에선 불호 반응이 꽤 있다고 해서 ‘역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그래도 외국에선 좋은 반응이 많다고 해서 ‘의도가 먹히고 알아준 분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화제가 되면서 몇몇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극중 노출된 전화번호로 많은 이들이 장난전화를 하면서 실제 이용자가 피해를 호소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없는 번호, 안전한 번호라고 해서 썼는데, 실제로 걸면 앞에 010이 자동으로 붙는 걸 제작진이 예측하지 못했다”며 “제작진이 문제 해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걸로 안다. 피해 입은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극중 계좌번호는 제작진 것이다. 요즘 통장으로 456원이 자꾸 들어오고 있다고 하더라. 아예 그 계좌도 정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극중 한미녀(김주령)가 목적을 위해 몸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 게임을 관전하는 브이아이피(VIP)실에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의 몸을 인테리어처럼 활용한 장면을 두고 ‘여성혐오’ 논란도 일었다. 이에 대해 황 감독은 “한미녀의 그 장면은 극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걸 보여주려 한 것으로, 여성 비하·혐오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보디페인팅 장면도 브이아이피들이 사람을 어디까지 경시하고 도구화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기 힘들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황 감독도 적극 동의했다.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어디서 이런 제작비로 이런 걸 자유롭게 했겠어요? 처음 아이디어를 듣고 전적으로 밀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세계 동시 공개할 수 있는 것도 큰 이점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안에 말도 안 되는 반응이 나올 수 있었어요.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한편으론 아무리 대박을 터뜨려도 넷플릭스로부터 애초 받은 ‘제작비 플러스 알파’ 말고는 추가 수익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아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겠죠. 하지만 어차피 알고 시작한 거니 아쉬워하면 뭐 하겠어요. 지금 얻는 뜨거운 반응만으로도 창작자로서 감사하고 축복받은 거라 생각합니다.”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넷플릭스 제공
이전까지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 영화를 연출해온 그는 이번 <오징어 게임>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만 하다) 처음 해본 시리즈였는데,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둬서 평생 훈장과 꼬리표로 남을 것 같아요. 부담이자 영광이죠. 앞으로 뭘 하든 <오징어 게임>과 비교될 겁니다.”
벌써부터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말에 그는 시즌1을 만들 당시의 어려움부터 토로했다. “<오징어 게임>을 쓰고 연출하고 제작하는 과정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애초 이 작품은 모 아니면 도, 걸작 아니면 망작이라고 생각했기에 작업 내내 긴장을 한시도 놓을 수 없었죠. 스트레스 지수가 계속 100에 차 있어서 이가 여섯개나 빠졌어요.”
그러면서도 “너무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시즌2 안 한다 하면 난리 날 분위기”라며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림은 몇가지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우선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영화를 먼저 하고요, 시즌2는 넷플릭스 쪽과 얘기해봐야 해요. 하게 된다면, 시즌1을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게 마무리한 터라 내용을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시즌2를 혼자 해낼 수 있을지, 이러다 틀니를 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웃음)”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