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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힘들 땐 울자, 그러나 울고만 있지 말자”

등록 2022-03-26 18:16수정 2022-03-26 21:59

[한겨레S] 유선애의 배우는 사람
배우 길해연
사진 이규원 사진가
사진 이규원 사진가

배우 길해연

1986년 극단 ‘작은신화’의 창단 멤버로 연극을 시작한 뒤 제25회 이해랑연극상, 제47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하며 오랜 시간 무대에 올랐다. 2000년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과 가까워졌다. 현재 배우 박정자, 윤석화에 이어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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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는 촬영감독에게 중견 여성 배우들의 인터뷰 연재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듣고 별다른 이유도 덧붙이지 않은 채 대번에 꺼내든 이름이 배우 길해연이었다. 무수한 배우 중 왜 그였을까. 어쩌다 잠시 스치는 이에게 우리는 한없이 좋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일을 하며 괜찮은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다. 좋은 동료로 기억되는 것을 최고의 찬사로 여기는 건 그래서다. 내 쪽에서 일찍이 여러 물음표를 품은 인터뷰였다. 약속 시간 15분 전, 배우 길해연이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사람 ‘배우’

―지금 촬영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을 찍고 있는데 한 신 정도 남았어요. <멘탈코치 제갈길>이라는 드라마와 독립영화도 촬영 중이고요. 특별 출연하는 건 말 안 할게요.(웃음)”

―여러 작품에 몸담으면서도 현장마다 극명히 다른 인물로 분하는 배우의 일은 들을 때마다 놀랍습니다.

“촬영 환경이 바뀌면서 제작 기간이 길어졌잖아요. 코로나로 인해 촬영이 지연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미묘하게 한두달 작품이 겹쳐지기도 하죠. 드라마 <로스쿨>과 <괴물>이 그랬는데 <로스쿨>의 ‘오정희’는 속이 깊고 말수가 없는 사람인 반면 <괴물>의 ‘도해원’은 다혈질인 사람이라 그때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좀 힘들었어요.”

―연륜과 경력으로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이지요?

“연기를 하다 보면 찍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맡은 인물과 내가 비슷해질 때가 있어요. 가령 화를 냈는데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저게 화낸 거야?’ 할 수 있잖아요. 기질적으로 어떤 사람은 조금만 화를 내도 크게 화낸 것처럼 보이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결국 배우가 가진 본성과 극 중 인물의 성격이 만나는 과정에서 두 인물이 대등한 상태를 만들어놓는 걸 잘해야 하는 것 같아요.”

―실제의 나와 극 중 인물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새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겠네요.

“그렇죠.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극 중 인물이 거울처럼 나를 비출 때가 있잖아요. ‘맞아,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지.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요. 배우도 마찬가지죠.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맡았던 ‘김미연’이라는 역할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거든요. 자식을 옭아매고, 위악적인. 그럴 때 먼저 주변에서 모델을 찾아요. 겉으로는 약자를 돌봐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본인 삶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거부하는 사람 있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을 흉내만 낸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에게도 질문하죠. ‘나에게는 정말 그런 모습이 없는가?’ 하고. 왜 없겠어요. 있어요. 연기는 결국 자기 안에 있는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나는 착한데 저렇게 위악적인 사람을 연기한다고?’ 아닌 것 같아요. 살아가며 내보이지 말아야 할 자기 모습들을 어떻게 정리하며 사느냐가 결국 인격인 것 같아요.”

―흔히 배우들이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연기에 도움된다고들 하잖아요. 좋은 사람과 좋은 배우가 연결된다고 보십니까.

“막내 스태프부터 감독까지 사람이 모여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잖아요. 한데 그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배우로 살기 어렵지 싶어요. 좋은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대본에서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할 수 있어도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연기는 가능하지 않다고 봐요. 세상을, 인간을 얼마만큼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는가가 결국 연기로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사진 이규원 사진가
사진 이규원 사진가

친구 권유로 시작해 35년 넘게 연기…“사람 깊이 이해해야 좋은 연기 가능”

고된 무대가 가르쳐준 것들

―처음부터 배우의 꿈을 가진 건 아니었다고요.

“문예반을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들도 ‘쟤는 글을 쓸 애야’라고 여겼고, 저 역시 조금의 의심도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사르트르의 연극 <무덤 없는 주검>을 보고 희곡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그럼에도 연극은 꿈도 안 꿨어요. 남 앞에 서는 것은 더더욱.”

―한데 어쩌다 극단 ‘작은신화’의 창단 멤버가 돼 극단 부대표까지 맡으며 35년이 넘도록 배우로 살았습니까.(웃음)

“그러니까요. 인생이 알 수가 없죠. 처음에는 싫어했어요. 연극반 선배들이 오라고 해서 가보기도 했는데요. 연극반이 군기가 세잖아요. 선배 한명이 들어오면 후배들이 벌떡 일어나 기립 자세를 하는데 그걸 본 순간 ‘아,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도망을 다니다가 친구들이 극단을 만들자고 했어요. 또래끼리 하는 것이니 괜찮을 것 같았죠. 근데 그때도 배우를 하겠다는 건 아니었고 희곡이 좋아서였어요. 모여서 희곡도 읽고 연극 공부를 했는데 초대 대표였던 친구가 ‘해연아, 이 부분은 네가 한번 읽어봐, 네가 이 역할을 하면 좋겠다’면서 유독 연기를 권하더라고요. 마음속으로 ‘왜 저래, 웬 배우?’ 했죠. 결국 그 친구에게 ‘나는 아무래도 연극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안 하겠다’고 전화를 했어요. 그렇게 통화를 마쳤는데, 그날 그 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아.

“가혹했죠. 그렇게 극단을 와해시킬 수는 없으니까 저희끼리 5만원씩 걷어서 대관을 하고 그 친구가 준비하던 작품으로 추모 공연을 올렸어요. 공연을 마치고 남은 친구들이 모여 딱 10년만 해보자고 했어요. 10년을 하고 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달라진 게 없더라고요. 그렇게 10년을 더 하게 됐고요. 20년이 됐을 때부터는 더 이상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떠밀리듯 연극 안으로 들어와 배우가 됐고 이후 생활고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연극을, 배우를 놓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연극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가난을 먼저 떠올리는데요. 글쎄요. 우리끼리는 무대 위에서 한 발자국 옮기는 것으로, 대사 하나로 며칠 밤낮을 고민하고 싸워요. 남들이 보면 저게 뭐라고 그런 걸 가지고 싸우냐고 할 만큼 치열했어요. 그 안에서 조금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을 정도로요. 무대가 너무 고되니까 오히려 삶이 가뿐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그걸 별로 못 느끼고 살았어요.”

―일전에 ‘40대까지만 해도 투쟁적이었다’고 하셨는데요. 무엇에 투쟁을 했던 시간이었어요?

“돈을 못 벌거나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연극이 취미 생활처럼 보이니까. 가족이 가장 옆에서 괴롭히죠. 투쟁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연극만 하고 있으면 수모를 받으니까 연기 수업도 병행을 했던 거예요. 아침에 나가서 어린이 교육 연구 프로그램 수업을 하고, 연기 강의도 하고, 끝나면 극단에 와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잠을 정말 조금씩 자면서 살았어요. 아이도 키워야 했으니 그때는 정말 눈에서 불이 났어요.”

―무용하게 보이는 것을 무용하지 않다고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불행을 막지는 못하지만 불행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예술인 것 같아요. 왜 우리는 예술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어색해하잖아요. 삶과는 멀리 떨어진 거창한 것으로만 여기고요. 살아가는 데 예술이 뭐가 필요해?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지금 왜 그런 걸 들이대? 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해가 가요. 아마 예술로 위로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다 쓸데없는 일일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이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로 깊은 위로를 받아본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내가 받았던 위로를 다른 이에게도 전하고, 나누고 싶은 거거든요.”

사진 이규원 사진가
사진 이규원 사진가

드라마 ‘괴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에서 다양한 성격 엄마 역 열연

‘엄마’에게도 이름을 주세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등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엄마 역을 맡았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엄마의 모습으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폭넓은 모성을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촬영하고 있는 역할도 지금껏 했던 엄마와는 또 다른 결을 지닌 엄마예요. 엄마라 하더라도 각자 겪어온 삶에 따라 한 인간으로서 지닌 가치관과 태도가 다를 텐데 왜 그렇게 특정 면만을 부각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엄마라는 존재를 오직 자식의 눈으로만 보고 그렸기 때문 같아요. 엄마라는 모습으로 가둬놔서 그렇지 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 소비자가 되었을 때, 유권자가 되었을 때 저마다 다른 가치관으로 행동을 한단 말이에요. 엄마는 늘 퍼주기만 하는 헌신적이기만 한 존재인가? 일단 우리 엄마부터가 안 그런 분이라.(웃음) 삶에서 그렇듯 작품 안에서도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죠. 그래서 배우들이 자주 하는 말이 ‘역할 이름을 정할 때 ○○ 모(母) 하지 말고 제발 이름을 다오’예요.”

―한편 <고요의 바다>의 우주항공국 최 국장, <괴물>의 시의원 도해원, <로스쿨>의 대법관 출신 로스쿨 원장 오정희, <보이스4> 지방경찰청장 김종숙 등 최근 1~2년 사이 작품에서는 고위직에 종사하는 중년 여성으로도 자주 등장했는데요. 극 안에서 여성의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기도 하나요? 우리 사회의 변화들이 작품 안에 잘 반영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껴요. 이야기는 결국 그 이야기가 뿌리내린 사회의 모습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작품 안과 밖에서 여성의 역할은 더 폭넓어지고 깊어질 거라고 봐요. 물론 아직까지는 치밀하게 얽히고설키는 극의 중요한 장면에서 여자 배우의 역할이 약한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잘 나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다시 엄마로 돌아가기도 하고요. 사건에 개입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계속 집에만 있는 거죠.(웃음)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정말 딱 두명 나왔잖아요. 예쁜 여자 한명, 엄마 한명.”

―현장에서 젊은 작업자들도 많이 만나고 있죠. 이들로부터 어떤 자극과 영감을 받나요?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이 예전과는 다름을 느껴요. 특히 감정을 다루는 것에 있어 달라요. 결국 작품에는 감독의 세계관이 묻어나기 마련이고 이로써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도 보이거든요. 새로운 세계관과 세계를 보며 많은 걸 얻어요. 굳어진 것이 풀리고, 깎아지기도 하면서요. 지금 찍고 있는 독립영화는 젊은 감독의 입봉작인데 같이 대본 보면서 ‘이 엄마가 너무 문학적이지는 않아?’ 하며 열띠게 토론을 해요. 그 과정에서 저도 귀담아듣고요. 환기가 돼요.”

사진 이규원 사진가
사진 이규원 사진가

“상처입은 청년들에게 그래도 살아볼 만한 삶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상처입은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

―독립영화의 경우 대중적인 관심을 받거나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렵죠. 그럼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품을 만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아요. 영화 <벌새>에서는 영지(김새벽) 엄마 역할로 한 장면 등장하는데요. 분량과는 상관없이 시나리오가 좋았어요. 좋은 시나리오를 읽으면 감독을 만나고 싶어요. ‘선생님, 도와주세요’ 하고 나를 부르지만 아니에요. 그때부터는 내가 배우러 가는 시간이에요.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죠. ‘본인 이야기냐, 너무 좋다, 근데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버겁지 않냐,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하고 물으면 ‘그래서 선생님에게 부탁드린 겁니다’라고 해요. 그럼 나는 작품 안에서 감독이 꼭 하고 싶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튀지 않게 끌고 갈 수 있을지 큰 숙제를 안고 돌아오는 거죠. 도와주기는커녕 민폐가 되면 어떡하나 하면서. 독립영화는 예산이 부족하고 현장도 열악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잖아요. 이렇게 귀한 시간을 어디 가서 찾을 수 있겠어요. 앞서 말했지만 젊은 창작자들이 보는 세계가 나에게도 필요해요. 공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살아왔던 세계관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세계잖아요. 저들은 나와 다르다고 단정하기보다 지금 저 사람들이 어디를, 어떻게 들여다보고 있는지 저도 배우는 거예요. 감각은 금방 낡기 마련이고 인간은 자기가 행해온 대로만 살고 싶어하잖아요. 혼자 힘만으로는 익숙함을 떨칠 수가 없어요. ‘자, 지금부터 나의 낡은 생각들을 버리자!’ 하고 버려지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젊은 세대로부터 얻는 만큼 무엇을 내주고 계신지요. 요즘 만나는 20대, 30대 청년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나요?

“마음이 다쳐서 저를 찾아오는 청년들이 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괜찮다고 말하지 말자’예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데 이야기 나누다 보면 속으로 병든 친구들이 많아요.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마치 아픔도 고통도 못 느끼는 집단처럼 이야기하는데 잘못된 판단이에요. 말을 안 할 뿐이에요. 괜찮다고 자기를 속이는 건 훗날 꼭 병이 돼요. 아픈 건 아픈 거예요. 화난 건 화난 거고요. 그러니 일단 울자, 우는 것조차 막지 말아라. 대신 계속 이렇게만 울고 있지는 말자고 해요. 그리고 내 이야기도 하죠. ‘나는 요즘도 그런다. 근데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까 아닌 척해야 하잖아’ 하며 서로 위로하는 거죠. 나이가 든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1990년대에 태어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묶은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2021)을 펴냈다. 매 순간 새롭게 배우고 깨치는 배우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맡은 배역을 깊이 탐구하고 탐험해온 중견 여성 배우들에게 ‘배우는 삶’에 대해 묻고,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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