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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희서
2016년 영화 <동주>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후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 역으로 대종상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청룡영화상 등 총 11개의 상을 받았다. 이후 영화 <아워 바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드라마 <비밀의 숲 2>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등에 출연했다. 영화 <아워 바디>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으며 최근 단편영화 <반디>를 연출하며 감독 데뷔를 했다.
배우 최희서가 대중에게 알려진 일화 하나가 있다. 8년 동안 단역 배우로 살아가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대본 리딩을 하던 그에게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신연식이 명함 한 장을 건넨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작품이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다. 이후 영화 <박열>까지 그 인연이 이어졌고, 이 작품으로 그는 대종상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한다. 장거리 구보에 가까운 그의 배우 여정을 보며 자신을 끝까지 다 써보려 하는 사람의 치열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열성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기에 오직 자신을 향한,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고자 하는 충실함에서 비롯된 것일 거다. 단련된 성실함과 긍정성을 무기로 축적해온 구력이 지금 그의 연기 안에서 빛을 내는 중이다.
―최희서라는 이름이 예명이라고 들었습니다.
“효자동에 있는 작명소에서 받은 이름이에요.(웃음) 3개 정도 이름을 받았는데 그중 ‘희서’가 있었어요. 소설 <토지> 속 ‘최서희’를 좋아해서 선택했어요.”
―소설 속 ‘최서희’의 단단한 성정을 닮고 싶었던 걸까요?
“최서희만큼 카리스마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체 제 성격이 그래요. 주눅 들 만한 상황이 있어도 웬만하면 움츠러들지 않으려는 편이에요. 잘못을 하면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할게요’ 사과하고 뉘우치는 성향이지 안으로 파고들진 않아요. 삶의 순간순간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래 지닌 모습을 지키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미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지요.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이방인이라는 감각 때문에 스스로를 작게 느낄 때도 있었을 텐데요.
“오히려 한국에서 가장 소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또래들에게 (어눌한) 발음으로 놀림을 받기도 했고요. 한국에서는 제가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예를 들어 배구면 토스를 몇번 하는지 세고, 멀리뛰기를 하면 몇미터 앞으로 나갔는지 기록 측정을 하잖아요. 한데 미국에서는 체육 시간이라 하면 수치로 학생을 채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더라고요. 그렇게 미국에서는 육상부에서 선수도 하고, 치어리딩도 했어요. ‘나 이거 되네. 이것도 해볼까?’ 하며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변한 게 아니라 저는 원래 그런 기질의 사람이었던 거예요. 적극적이고 욕심 많고, 성취욕 강한.”
―성취욕 강한 이가 8년의 시간 동안 이렇다 할 성취 없이 무명 배우로 지냈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가늠이 안 되는데요. 중간중간 열매가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을 다른 이보다 더 길고 고되게 느끼지는 않았습니까?
“절망적인 순간은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좌절의 나락으로 빠지려 할 때마다 ‘아, 됐어. 이미지가 안 맞았나 보다’ 하고 저의 어떤 부분이 작동을 해 스스로를 구했어요. 무수히 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싶었지만 단 한번도 배우의 일을 쉬거나 멈추지 않았어요. 관객이 10명인 날에도 ‘지금 여기서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열매라고 생각했으니까. 본능적으로 뭔가를 계속하고 있다는 감각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공연했다. 공연이 수확이다’ 생각하며 공연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고, 프로필 사진도 다시 찍으며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미미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요.”
―이름 없는 역할을 거듭하다 보면 배우로서의 성장 가능성이나 효용에 대해 의심하게 될 법도 한데 그러진 않았나 봅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진짜 별거 아닌 것 같긴 하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끼어들 때가 있죠. 그때마다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워야 했어요. 상업 드라마나 영화 한편 없이 독립 단편 영화 또는 영화과 학생들의 영화에 출연하고 대학로에도 못 들어가는 연극을 하면서 10년 가까이 버텼다는 게 저도 신기한데요. 어느 순간부터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될 수가 없어’ 하는 오기도 작동했어요. 연기를 하기 전까지는 인생에서 늘 제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있었거든요. 열심히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왔고, 연습한 만큼 운동도 잘했어요. 근데 연기는 아닌 거예요. 스물아홉살 때 출연료 없이 참여했던 연극이 지원금을 받게 된 적이 있어요. 지급 조건 중에 지방 공연을 하는 게 포함돼 있어서 울릉도에 갔었거든요. 날씨 때문에 3일 동안 배가 못 떴어요. 포항에서 며칠 동안 배를 기다리다 마지막 날에는 결국 숙박비가 없어서 24시간 운영하는 순대국밥집에서 밤을 새웠어요. 국밥집 온돌바닥에 쪼그려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제 그만하라는 계시인가? 나는 더 이상 하면 안 되나?’ 싶더라고요.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에서는 뱃멀미는 또 얼마나 했는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비참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었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주변에서 다른 선택을 권할 법도 했을 텐데요. (최희서는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과 영어영문학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공연예술학을 공부했다.)
“아버지가 딱 한번 연극 연구자나 교육자가 돼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은 하셨죠. 근데 제가 귓등으로도 안 들어가지고.(웃음) 그래도 뜯어말리지는 않으셨어요.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긴 담금질의 시간을 보내고 영화 <박열>을 만났죠. ‘가네코 후미코’라는 역할로 대종상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주연상을 동시에 받는 최초의 배우가 됐습니다. 어땠나요?
“어마어마한 무게의 영광이자 짐이었죠. 지금도 여전히 양가적인 감정이 들어요. 또다시 내가 가네코 후미코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두렵다가도 ‘그래도 나에게는 후미코가 있는걸!’ 하는 자부심도 커요. 예전에는 그 이상을 해내야 할 것만 같고, 외연적으로는 상업 영화의 주연을 해야 한다는 등의 부담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가벼워졌어요. 왜 굳이 가네코 후미코를 넘으려고 하지? 그는 내가 너무나 사랑한, 빛나는 나의 과거이고 앞으로 그를 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부터는 또 다른 게 있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그 당시 받았던 트로피들도 다 창고 청소함에 넣어놨어요.”
영화 <박열>에 출연한 최희서.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유리 수납장이 아니고요?(웃음)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촬영 준비하면서 전부 안 보이게 넣었어요. 맡았던 ‘황치숙’이라는 캐릭터의 방향을 못 잡는 통에 작가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도 하고 고민이 컸거든요. 어느 날 괴로워하다가 울면서 ‘나는 이 상들을 받을 가치가 없어’ 하고 다 넣어버렸어요. 약간의 술기운을 빌렸지만.(웃음)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납장을 열어본 적이 없어요. 알지 못한 어떤 부담이 있었나 봐요.”
―맞아요. 철없고 미숙한 재벌 2세 ‘황치숙’은 최희서 배우가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었죠. 도전이었을 텐데요.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이 화두지만 그 역할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할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저는 주체성의 범위를 넓게 보는데요, 이야기 안에서 크건 작건 인물이 변화하고, 그 과정이 보여진다면 그것으로도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설사 그 변화가 타의에 의해 일어나는 변화라 하더라도요. 영화 <아워 바디>의 ‘자영’이라는 역할도 처음에는 그저 소극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만의 주체성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누구나 정도가 다를 뿐 저마다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것, 식물에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돌보는 행위에도 주체성은 필요하죠. 주체성이 얼마나 분명하게 발현되는가는 제게 중요한 기준은 아닌 것 같아요. 역할에 있어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어떤 변화를 겪는 인물인가,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이 작품 안에서 충분히 보여지는가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에요.”
―여성 배우가 주요 역할로서 극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좀 더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를 품 넓게 끌어안아야 할 때가 온 것이겠죠?
“실제로 매 순간 주체성을 갖고 할 말을 다 하면서 살아가는 여자들이 많지 않잖아요. 영화 안에서 틀린 선택을 하는 여성이 등장할 수 있죠. 영화 <아워 바디>에서 도덕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 주인공에 대해 ‘미쳤어. 왜 저래. 어떻게 주인공이 저럴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분들도 있을 텐데요. 인물을 탐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수많은 삶이 존재하니까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이 여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 궁금증을 갖게 된다면 그로써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제가 끌리는 역할들은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오래 생각하게 되는 인물일 때가 있어요.(웃음)”
―‘나는 매번 첫 테이크가 좋은 배우이고 싶지는 않다’라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일반적으로 첫 테이크에서 좋은 연기가 나올 확률이 높거든요.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본능과 직관, 훈련, 당시의 긴장이 첫 연기에서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테이크가 거듭된다는 건 그때마다 배우가 앞서 한 연기를 지우고 백지가 돼 새롭게 연기를 한다는 의미예요. 테이크가 거듭될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이야말로 확장성 있는, 잠재력을 지닌 배우라고 생각해요. 찍으면 찍을수록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고, 작품을 해나갈수록 발전하는 배우이고 싶죠.”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을 끝까지 써보려는 것이죠?
“그렇죠.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상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면이 있고, 동시에 배우 최희서의 잠재된 가능성이 있을 거라 믿고 싶거든요. 예전에 내가 했던 캐릭터와 비슷하거나 어떤 표정이나 말투를 답습하게 될 때 다른 걸 찾고 싶다는 욕망이 커져요. 그래서 가끔 왜 할리우드 배우들 보면 다른 코를 붙이는 분장을 하잖아요. 저도 어떨 때는 그런 힘이라도 빌려서 새로운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늘 커요. 그건 배역의 크기와는 상관없는 욕망 같아요.”
―자기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싶은 바람 때문일까요. 최근의 활동을 보면 매번 낯선 곳으로 자신을 보내려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일본 감독 이시이 유야의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에서 배우 이케마쓰 소스케, 오다기리 조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감독이 돼 단편영화 <반디>도 연출했어요. 곧 에세이도 출간한다고요?
“영화 <반디>의 시나리오는 20대에 처음 쓰기 시작한 이야기예요. 작품이 없을 때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언젠가는 내가 출연해야지’ 하며 쓴 시나리오가 꽤 있어요. 곧 출간될 에세이는 드라마 <지금, 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를 끝내고 바로 쓰기 시작했고요. 예전에 써둔 글들을 고치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변한 게 있다면 ‘잘하자’라는 욕심을 덜어내고 내 모습대로 있어 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고쳤어요.”
단편영화 <반디>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 최희서. 왓챠 제공
―배우는 결과물만을 내보이는 일이잖아요. 만들어지는 과정은 함께한 작업자들 정도만 알고요. 철저히 결과물로서만 판단된다는 직업적 속성이 배우를 고통스럽게 하고 동시에 성장시킬 것도 같습니다. 어떤가요?
“날씨나 일정 등 외부 요인 때문에 여건이 내 마음처럼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요한 장면을 연기해야 할 때는 속상하죠. 드라마에서 그 점을 절실히 느껴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찍으면서 송혜교 배우로부터 배운 것들이 많아요. 송혜교 배우는 수십년간 주연을 해온 사람이잖아요. 그런데도 현장에서 ‘지금은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한 걸 본 적이 없어요. 25년차 주연 배우의 위엄이랄까.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예요.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촬영 현장에서도 이케마쓰 소스케와 오다기리 조를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본인 촬영이 아닌 경우 촬영장 밖이나 차에서 쉴 법도 한데 현장을 끝까지 지키더라고요. 한국말로만 이뤄진 현장이라 무슨 말이 오가는지도 모를 텐데. 하다못해 휴대폰 메시지도 보지 않더라고요. 간이 의자에라도 앉으라 하면 다들 서 있는데 왜 우리가 앉냐고 하면서 그렇게 3시간을 서 있더라고요. 본받을 배우들이 많아요.”
―인터뷰 칼럼명이 ‘배우는 사람’이잖아요. 배우라고 하면 역할을 통해 배울 거라 짐작했는데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을 통해 얻는 배움도 큰가 봅니다.
“이준익 감독님의 영화 <동주> 때는 배우이자 스크립터였고, <박열> 역시 거의 스태프처럼 있다 보니 현장에서 배운 게 정말 많아요. 어느 날 이준익 감독님이 ‘남는 건 사람이야’라는 말씀을 한 적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흔히 감독은 영화만 바라보고 사는, 오직 목표가 영화일 것 같잖아요. 사람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는 그 말이 저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깊게 새겨져 있어요. 대중에게는 한 편의 작품으로, 결과물로 남겠지만 그걸 만든 우리는 다 기억을 하잖아요. 저 역시 현장이 힘들고 지칠 때가 있지만 그래도 결국 이준익 감독님의 말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남는다고요.”
―마무리할까요? 작품과 안과 밖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와중에도 잘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제가 지닌 긍정적 에너지는 계속 가져가고 싶어요. 할머니가 돼서 연기를 할 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최희서 선생님 오셨네’ 하는 그런 배우요.(웃음) 예전에 시상식에서 나문희 선생님을 뵌 적이 있거든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와하하’ 하는 웃음소리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어요. 경호원분들이 있어서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 나문희 선생님 계신가 보다’ 하고 인사드렸었거든요. 고두심 선생님도 뵈면 광채가 나요. 품 안에 가지고 있는 긍정성에서 나오는 빛이요.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도 저 모습으로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힘들 때 웃으면 조금 괜찮아지잖아요. 힘든 신에서 막 울다가도 환히 웃으며 끝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