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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누구나 애호가가 되는 진한 감칠 맛, 라멘이 온다

등록 2022-05-07 08:59수정 2022-05-07 22:42

[ESC] 커버스토리 ㅣ 라멘 열풍
문턱 낮은 미식의 세계, MZ 매혹한 일본 라멘
한 그릇 안에 온전히 담긴 요리사의 의도와 기술
식당 따라 다른 개성에 진화 속도 빨라 젊은층 매료
서울 마포구 연남동 라멘집 ‘거북이의 꿈’에서 판매하는 대표 메뉴 ‘가이센마제소바’ 모습. 마제소바는 국물 없이 비벼 먹는 라멘 종류로, 가이센마제소바엔 생참치회가 들어간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서울 마포구 연남동 라멘집 ‘거북이의 꿈’에서 판매하는 대표 메뉴 ‘가이센마제소바’ 모습. 마제소바는 국물 없이 비벼 먹는 라멘 종류로, 가이센마제소바엔 생참치회가 들어간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오전 9시는 어떠세요? 저는 8시부터 나와서요.” 지난달 29일 금요일 아침,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골목길은 텅 비어 있었다. 한적한 골목 사이 라멘집 안에서 덩치 큰 남자 혼자 오픈 키친을 오가고 있었다. 달걀을 삶고, 제면기에 밀가루를 넣고 면을 뽑았다. 여기는 마포구 연남동 ‘하나라멘’. 지도 앱을 펼쳐 살펴보면 연남동은 한국의 행정동 중 단위 면적당 라멘 가게가 가장 많다. 하나라멘은 그중 업력 1년이 조금 덜 되는 신규 시장 진입자다.

일본식 라면인 라멘 집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18년을 기점으로 라멘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 기세는 ‘노노재팬’과 코로나19 등 대형 변수에도 꺾이지 않았다. 카카오톡의 한 라멘 오픈채팅방에 따르면 전국에 소재한 라멘집만 300개 이상, 네이버 지도 기준 마포구에 등재된 라멘집만 100개가 넘는다.

2000년대 후반에도 라멘이 유행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돼지뼈로 국물을 우린 규슈 지방의 ‘돈코쓰라멘’계가 주류였고, 일본 라멘의 인지도가 높지 않아 일본 체인 그대로 한국에 들여와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돈코쓰를 비롯해 한국의 사골국처럼 걸쭉한 국물을 백탕이라 한다. 그와 대조되는 부류로 맑은 국물을 말하는 청탕이 있다. 해물이나 닭 등으로 맑은 국물을 낸다. 요즘은 청탕도 늘어나는 추세다.

참치회가 들어간 라멘?

하나라멘은 여러모로 오늘날의 라멘 시장을 상징한다. 강동준(35)은 하나라멘이 첫 가게다. 그는 회사원으로 일하다 ‘오레노라멘’과 ‘라멘트럭’에서 경험을 쌓고 연남동에 가게를 내기로 결심했다. 오레노라멘은 마포구 합정동에서 시작해 서울 전역으로 세를 넓혀간 유명한 라멘집이고, 라멘트럭 또한 마포구 상수동에서 유명한 맛집이다.

강동준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연남동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였다. 그가 라멘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니 왜 개점 3시간 전부터 준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면을 뽑고, 달걀을 삶고, 차슈(면 위에 얹는 고기 고명)를 만들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금요일 연남동에는 낮부터 사람이 많다. 이곳에도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들어온다.

하나라멘에서 도보 2분 거리에만 라멘집이 7개 있다. 복잡하게 얽힌 거리에서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라멘집 ‘거북이의 꿈’이 나온다. 거북이의 꿈도 개점 두시간 반 전인 오전 9시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각각의 라멘집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확연하다. 같은 장르의 음식이라도 점주의 개성에 따라 공간과 음식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한다. 거북이의 꿈은 한결 능숙한 느낌이다. 라멘집인데 가게에는 은은한 생선회 냄새가 풍긴다.

이것도 점주의 개성이다. 거북이의 꿈 대표 조성권(49)은 외식 경력 30년에 일식 경력만 20년에 가까운 베테랑이다. 그는 서울 홍익대 근처에서 아주 유명했던 ‘천하의 문타로’에서 일식에 입문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홍대 권역으로 돌아왔다. 오사카의 유명 라멘집을 아홉번이나 방문해 한국에 진한 간장 맛의 블랙 쇼유라멘을 선보였으니 일종의 ‘멘익점’이다. 지금 운영하는 거북이의 꿈에서는 독자적으로 새 메뉴를 개발했다. 장르는 마제소바, 국물 없이 비벼 먹는 라멘의 한 분파다.

“제가 한 그릇 메뉴에 빠졌어요. 라멘은 한 그릇에 다 들어 있잖아요.” 조성권의 말에서 사람들이 라멘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라멘은 한 그릇에 서빙이 끝난다. 공급자 입장에서 가장 편리하게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며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거기 더해 라멘은 수십년의 역사를 거치며 굉장히 많은 분파가 생겼다. 그에 따라 독창성을 인정하는 포용성도 생겼다. 거북이의 꿈 대표 메뉴인 가이센마제소바가 그 증거다. 이 메뉴에는 생참치회가 들어간다. 일본에도 없는 메뉴다. “일본인 손님이 오셔서 번역기 돌려가며 맛있다고 얘기하고 가신 적도 있어요. 그러면 엄청 힘 나죠.” 놀라울 정도로 동안인 조성권이 웃으며 말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서울, 뉴욕, 런던을 사로잡은 맛

“라멘의 특징은 진화의 스피드가 아주 빠르다는 점이에요.” 거북이의 꿈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사루카메’ 2대 사장 혼마 히로토(47)가 말했다. 사루카메는 탄생과 지속 자체가 극적이다. 사루카메 1대 사장은 한국인이다. 1대 사장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라멘집 ‘인류 모두 면류’에서 수행하고 귀국해 사루카메를 차렸다. 한국에서 쉽게 찾기 힘든 조개 육수 라멘집이라는 기본 설정에 실험적 메뉴로 인기가 많았는데, 사정이 생겨 가게를 지속할 수 없게 됐다. 마침 한국으로 건너온 혼마 히로토가 우연히 사루카메 대표를 알게 되고, 브랜드를 계승했다.

사루카메는 오늘날의 국제화된 라멘 시대를 상징한다. 혼마 히로토의 커리어부터 국제적이다. 그는 일본 교토에서 일을 시작해 미국 뉴욕대에서 레스토랑 경영을 전공했다. 뉴욕의 스시 레스토랑 ‘주얼 바코’, 미슐랭의 별을 받은 교토의 료칸 ‘유즈야’ 등에서 국제적 경험을 쌓았다. 지금은 한국인 아내와 함께 자식들에게 한국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이곳에서 라멘집을 운영한다.

실제로 라멘은 일본을 벗어난 국제적 음식이 되었다. 뉴욕에서 가장 평점이 높은 음식점 중 하나는 라멘집 ‘잇푸도’다. 런던 중심가에도 라멘집이 있다. 취재 중에도 서양인들이 라멘집을 드나드는 장면을 여러번 보았다. 저녁에 하나라멘을 찾았을 때는 맛집 리뷰 앱 망고플레이트를 보고 찾아왔다는 시카고 출신 미국인들이 라멘을 먹고 있었다. 그만큼 애호가의 폭도 넓고 깊다. “전세계적으로 라멘만 애호가 그룹이 있어요. 우동, 카레, 버거는 없는데 말이에요. 육수, 다레(육수 간을 맞추는 소스), 토핑, 면이라는 기본 요소가 확실히 있고, 라멘 팬들이 그 변화를 느끼고 즐길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혼마 히로토의 설명이다. 한국 라멘을 주제로 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만 1500개에 이른다. 그중에는 재한 외국인도 있다.

최근엔 라멘 문화의 저변을 증명하는 행사도 열렸다. 4월 한달간 진행된 ‘함께라멘데이’는 민간 라멘 애호가들이 꾸리고 현장의 라멘 가게들이 참가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자가 육수’를 내는 수도권 라멘집 52곳을 선정해 라멘 스탬프 투어를 떠나는 행사다. 각자 다른 9개 라멘집에 방문해 스탬프를 채우고 경품에 응모하는 구조다. 이번 이벤트로 3300그릇 가까운 라멘이 팔려나갔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한성웅(30)씨는 10년차 라멘 마니아다. 그는 “코로나로 매출이 줄어 고민이라는 현장 점주님들과 상생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장 저렴하게 즐기는 미식

익명의 라멘 애호가 K씨는 라멘을 두고 ‘가장 저렴한 미식’이라고 표현했다. 미식의 정의는 여러가지겠지만, 나는 미식의 개념을 요리사의 의도와 기술을 느끼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려면 우선 특정 방향성과 기술적 완성도가 있는 요리가 있어야 하고, 해당 장르의 메뉴가 여럿 있어서 상호 비교가 가능해야 하며, 그 비교를 즐길 수 있는 훈련된 미각과 최소한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와인, 파인다이닝, 평양냉면이 그렇다. 모두 비싸다. 라멘은 그에 비하면 문턱이 낮다. 개념으로의 미식에 눈떴으나 예산에 한계가 있는 젊은이들의 미식, 그게 오늘날의 라멘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맛있기도 하고.

박찬용 칼럼니스트 iamin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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