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이 한국방송(KBS) 〈전국노래자랑〉의 차기 진행자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날, 나는 유튜브에서 그가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선보였던 캐릭터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머리에 쟁반을 이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제일 바쁜 여섯시 반에, 소고기 하나, 불백 하나, 짬뽕, 계란말이 누구야? 하나만 시키란 말이야, 하나만!”이라고 포효하는 전설의 밥집 사장님, “따블을 준대도 언니가 해초 마사지를 안 하는 이상은” 먼저 해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새치기를 저지하는 목욕탕 세신사 아주머니, 자기는 이제 살 만큼 다 살아서 욕심이 없다고 이야기하다가 손녀에게 빠르고 정확한 말투로 계좌번호를 불러주는 할머니, 정체불명의 추임새를 자꾸 넣는 주부노래교실 강사…. 김신영은 평상시 사람들을 관찰해서 머릿속에 저장해 뒀다가, 상황극을 할 때면 한명씩 꺼내 접신하듯 초고해상도 이미지로 출력해낸다. 분명 어디서 본 적 있는 이름 모를 아줌마들, 아저씨들이 김신영의 육체를 빌려 생생하게 제 목소리를 낸다.
그건 단순히 관찰력만 좋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때로 우악스럽고 자주 우스꽝스러운 이 캐릭터들을 연기하려면, 저 사람은 어쩌다가 저렇게 우악스럽고 우스꽝스러워졌는지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자꾸만 한 가지 메뉴로 통일하라고 화를 내는 밥집 사장님에게는 “우리 아저씨 아파서 누워 있어서 나 혼자 일해야 한다”는 속사정이 있고, 세신사 아주머니에게는 손님들의 때를 밀어주느라 제 밥때도 제대로 못 챙기는 애환이 있다. 주부노래교실 강사에게는 수강생들의 이목을 빠르게 집중시키기 위해서라도 과장된 추임새를 넣어야 한다는 직업적 특징이 있다.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연기하는 것과 이해 없이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재현이지만, 후자는 자칫 건조한 조롱이 되기 쉬우니까. 그리고 생면부지의 상대가 보여주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 뒤에 깔려 있는 속내와 속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은, 사랑과 퍽 닮았다. 애정이 없으면 어떻게 상대의 깊은 속내를 다 헤아릴 수 있으랴.
흥미로운 건 김신영의 애정이 가닿는 자리들이 어딘가 하는 점이다. 김신영이 온몸으로 연기해 낸 이 주옥같은 캐릭터 중, 이렇다 할 부나 명예, 권력을 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러시아 출신 ‘쁘띠’ 아줌마, 가평에 바지선을 띄워 놓고 바나나보트 손님을 받는 수상레저 업체 사장 ‘빠지 오빠’, 늦둥이로 본 넷째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해서 퇴근 후 대리운전을 뛰고 있다며 한숨을 푹푹 쉬는 전라도 말씨의 아저씨…. 김신영이 주의 깊게 바라보고 이해하려 노력해서 머릿속에 저장해 둔 이들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심지어 이렇다 할 특기도 없는 사람들, 지금 당장에라도 문밖을 나서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흔한 장삼이사다. 김신영은 그런 흔한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귀엽고 재미있는 순간들을 포착해 상황극의 형태로 세상에 전파한다. 보라고,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이렇게나 사랑스럽다고. 그러니까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가 되기 전에도 이미 우리들 사이에서 기꺼이 부대껴 오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전국노래자랑〉의 차기 진행자가 누가 될 것이냐는 송해가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송해가 직접 찍어 두었던 허참은 송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수많은 사람이 적통이라고 생각한 이상벽도 벌써 일흔이 넘었다. 그래도 여전히 쟁쟁한 경쟁자들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수근이나 강호동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자신이 그 자리를 물려받고 싶다는 속내를 은근슬쩍 드러냈고, 남희석은 아예 공개 석상에서 후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날고 기는 후보자들을 제치고 김신영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어떤 이들은 “예상외의 인선”이라며 놀랐다. 하지만 김신영의 코미디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이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데뷔 초부터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행사 경험을 쌓아온 베테랑,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붙임성, 춤과 노래를 향한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까지. 김신영은 송해가 30년 넘는 세월 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지켜왔던 정신의 핵심을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많은 분들을 겪다 보면 사실 몸적으로도 지쳤을 수도 있는데,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장수 엠시였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랑을 좀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케이비에스 뉴스’ 인터뷰에서, 김신영은 전임자인 송해에게서 배우고 싶은 덕목으로 ‘사람을 향한 사랑’을 꼽았다. 30년이 넘는 세월, 그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부둥켜안고, 입에 넣어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같이 웃고 울며 함께 놀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겠나 하는 이야기다. 글쎄, 그거라면 김신영만 한 적임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이웃을 애정을 가지고 대하는 건 이미 그가 늘 하고 있던 일 아닌가. 녹화 하루 전 미리 해당 지역을 찾아가 목욕탕을 찾고 시장에 가서 현지 사람들을 만났다는 살아생전 송해의 루틴도 김신영에겐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가 지금껏 밥집 사장님을 만나고 세신사 아주머니를 만난 곳이 다 길바닥이고 대중탕이었을 테니 말이다.
사람들은 김신영의 진행으로 〈전국노래자랑〉이 얼마나 더 젊어질 수 있을지를 기대하는 눈치다. 젊은 시청자들이 유입되고, 프로그램의 유효 수명도 아주 길어질 것이라고. 나는 내심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김신영의 코미디가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을지 기대 중이다. 분명 그는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만난 참가자들이 무대 위에서 돋보일 수 있게 공간을 열어주고, 그들에게서 비범한 순간을 발견하고 관찰해서 머릿속에 저장할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애정을 담아 그들을 상황극의 형태로 세상에 돌려주겠지. 한국 방방곡곡의 장삼이사들에게서 사랑스러운 순간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전국노래자랑〉이 지난 세월 내내 해왔고 김신영이 커리어 내내 해왔던 일이니까.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