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부산 남포동에서 열린 ‘커뮤니티비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없는 영화>의 진용진 감독이 얘기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무대에 오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주인공은 바로 255만명의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유명 유튜버 진용진. 그는 자신이 만든 유튜브 콘텐츠 <없는 영화>로 지난 8일 부산 남포동에서 영화제 행사 중 하나인 ‘커뮤니티비프’ 상영회와 관객과의 대화(GV), 야외 무대인사에 참여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자격으로서다.
“너무 영광스러워요. 부산영화제에 영화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감독으로 여기 올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제 콘텐츠가 큰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것도 신기하고요, 관객들이 웃는 모습에 감격하기도 했어요. 유튜브에서 댓글로 ‘ㅋㅋㅋ’ 하는 반응을 실제로 본 셈이랄까요.” 이날 행사를 마치고 <한겨레>와 만난 진 감독이 말했다.
그는 어쩌다 영화감독이 된 걸까? 애초 그는 힙합 래퍼였다. 음원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비트코인’ ‘30억’ 등 디지털 싱글 몇곡이 나온다. 그는 2014년 자신의 노래를 알리고자 유튜브를 시작했다. 영상 편집도 직접 했으며, 보수를 받고 다른 영상 편집 일도 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 랩인 줄 알았는데, 유튜브 만드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수익도 생겼고요. 나를 표현하는 다른 길이 있구나 생각했죠.” 랩보다 유튜브에 더 몰두한 이유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진용진. 쓰리와이코프레이션 제공
그가 유튜버로서 유명해진 건 2019년 시작한 <그것을 알려드림>을 통해서다. 남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발로 뛰며 파헤쳐 호기심을 풀어주는 콘텐츠다. 지하철 화장실 장기매매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다거나 성매매범을 유인해 인터뷰를 하는 등 다소 위험하면서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웹예능 <머니게임>, 문화방송(MBC)에 방송된 예능 <피의 게임>을 기획·연출하기도 했다.
“<그것을 알려드림>을 만들 땐 전국을 누비며 발로 뛰었어요. 하루 중 절반은 길에서 보냈죠. 짬짬이 유튜브 영화 리뷰 콘텐츠를 즐겨 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발로 뛰느라 너무 힘든데, 영화 리뷰는 앉아서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유튜버에게 물어보니 저작권 문제 때문에 광고 수익이 거의 영화 저작권자에게 돌아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럼 리뷰하는 영화도 내가 직접 만들면 되지’ 생각했죠.”
<없는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여느 영화 리뷰 콘텐츠처럼 진용진의 내레이션과 함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여주지만, 실은 그 영화는 세상에 없다. 일종의 페이크 영화 리뷰 콘텐츠인데,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영화가 되는 셈이다. 그는 중소기업 배경 유튜브 웹드라마 <좋좋소>를 만든 디테일스튜디오와 손잡고 지난해 10월 <없는 영화>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유튜브 채널 ‘진용진’에 33편의 에피소드를 올려 1억25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는 70여명, 배우들은 270여명에 이른다.
지난 8일 부산 남포동에서 열린 ‘커뮤니티비프’ 야외 무대인사에서 <없는 영화>의 진용진 감독이 얘기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번 영화제에서는 4편의 에피소드를 이어붙여 상영했다. 지금 청년세대가 50년 뒤 노인이 되어 맞이한 설 풍경을 담은 <어르신>,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갔다가 겪은 일을 담은 <rpg게임>, 두쌍의 남녀가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린 <마스크>, 세대·남녀 간 혐오와 갈등을 날카롭게 풍자한 <그리운 사람>이 그것이다. 모두 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시나리오 쓸 때 ‘도를 아십니까’처럼 <그것을 알려드림> 취재를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듣고 참조하는데, 요즘 들어 혐오와 갈등 얘기가 많더라고요. 유튜브 댓글이나 커뮤니티를 봐도 혐오·비하 글이 많고요. 그래서 그런 주제를 짚고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싶어서 약간 무거운 작품도 만들게 됐습니다.”
<없는 영화>는 거창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반에서 일진이었던 애들 인생’ ‘고칼로리 음식들을 무제한으로 먹어도 살 안 찌는 세상’처럼 누구나 일상에서 겪거나 상상할 법한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진 감독은 ‘공감’을 성공 비결로 든다. “저는 다른 영화감독들보다 유튜브를 잘 알아요. 유튜브에선 어떤 얘기를 해야 시청자들이 공감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시나리오를 쓰죠.”
지난 8일 부산 남포동에서 열린 ‘커뮤니티비프’ <없는 영화> 야외 무대인사 현장.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연기인지 실생활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선보인다. 지금껏 참여한 270여명의 배우들은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했다. 연기자 지망생부터 현업 배우까지 다양하다. 김수로, 강성진 등 유명 배우도 참여했다. 진 감독은 “매 작품마다 오디션을 보는데, 많은 배우들이 지원해준다”며 “<없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이걸 계기로 다른 작품에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없는 영화>를 시작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이젠 규모가 너무 커져 어깨가 무겁다는 뜻에서다. <그것을 알려드림> 시절 20분짜리 영상에 드는 제작비가 50만원이었다면, <없는 영화> 제작비는 그 수십배로 뛰었다. “제작비 차이가 큰데도 조회수와 수익은 비슷하거든요. 그렇다면 <그것을 알려드림>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일 텐데, 저는 극을 연출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지난 8일 부산 남포동에서 열린 ‘커뮤니티비프’ <없는 영화> 관객과의 대화(GV) 현장.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에서 드라마를 하자는 제안이 와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내년 공개가 목표다. ‘없는 영화’가 아니라 진짜 ‘있는 영화’를 만들어 극장에서 정식 개봉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유튜브는 기성 미디어를 따라 하면 상대가 안 돼요. 같은 패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어요. 신선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냥 내 식대로 하는 게 살아남은 비결이 아닐까 해요. 남들이 ‘침착한 또라이’라고 부르는 진용진다운 것, 그걸 계속해나갈 겁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