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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도서관은 놀이터…냉정한 현실까지 담은 책에서 세상 베운다

등록 2022-12-12 07:00수정 2022-12-26 21:52

[어린이문학 100년 ‘쓸모'를 찾아서]
③-1 낙관 너머 현실
스톡홀름 세르겔 광장에 위치한 아동 전문 도서관 ‘룸 포 반스(아이들을 위한 방)’. 8살 이하 어린아이들이 보호자와 편하게 책을 보고 놀 수 있도록 공간이 설계되어 있다. 김은형 기자
스톡홀름 세르겔 광장에 위치한 아동 전문 도서관 ‘룸 포 반스(아이들을 위한 방)’. 8살 이하 어린아이들이 보호자와 편하게 책을 보고 놀 수 있도록 공간이 설계되어 있다. 김은형 기자
해마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예테보리도서전(Göteborg Book Fair)을 여는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관 누리집에는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를 독려하는 동영상이 있다. 젖니가 하나 빠진 꼬마가 등장해 책에서 배우는 많은 단어가 자신을 논쟁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이야기하면서 ‘주장하다, 논쟁하다’라는 뜻의 스웨덴어인 ‘아르구멘테라’(argumentera)라는 단어를 알려준다. “아르구멘테라는 정말 멋진 단어야. 어른을 설득해서 네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말이거든.” 아이도 어른과 동등하게 논쟁할 수 있고 논리로 어른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다문화국가답게 여러 나라의 언어로 서비스되는 이 동영상은 어린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간명하게 알려준다. 스웨덴 현지에서 만난 세계적인 권위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ALMA·알마) 운영 책임자와 아동문학 연구자, 도서관 사서와 그림책 창작자 등이 말하는 어린이문학의 가치는 단 하나의 정답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주의 교육과 실천이다.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니바켄(삐삐박물관)에서 전시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시리즈’. 삐삐 옷을 입고 이곳에 온 아이가 보면서 즐거워 하고 있다.  김은형 기자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니바켄(삐삐박물관)에서 전시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시리즈’. 삐삐 옷을 입고 이곳에 온 아이가 보면서 즐거워 하고 있다. 김은형 기자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니바켄(삐삐박물관)에서 관람을 마치고 책을 고르는 아이들. 김은형 기자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니바켄(삐삐박물관)에서 관람을 마치고 책을 고르는 아이들. 김은형 기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 아동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은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어린이책 작가에게 주는 양대 상의 주인들이기도 하다. 한국의 백희나 작가가 2020년 알마를 수상한 데 이어 올해에는 이수지 작가가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각각 덴마크와 스웨덴 출신인 두 역사적 인물로 인해 북유럽은 어린이문학의 최전선이 되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지난 10월25일(현지시각) 스톡홀름 사무실에서 만난 스웨덴예술위원회의 알마 운영 책임자 오사 베리만은 ‘삐삐 롱스타킹’을 탄생시킨 린드그렌이 “언제나 아이들의 편”이었음을 환기하면서, 알마의 철학으로 인본주의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꼽았다. 그는 “어린이에게는 좋은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이것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공감을 배우고 시민의식을 익히며 상상력을 키워간다. 뛰어난 창작자뿐 아니라 아동들의 독서 기회를 늘리기 위해 애쓰는 남아프리카나 베네수엘라의 비영리 단체에도 알마가 수여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알마는 스웨덴 정부 예산, 즉 스웨덴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우리돈 6억원가량인 500만 스웨덴크로나를 상금으로 준다. 이는 노벨문학상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학상 상금으로 스웨덴 국민이 품고 있는 린드그렌에 대한 존경심과 아동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톡홀름 중심가 세르겐 광장에 위치한 아동 도서관 ‘룸 포 반스’(어린이를 위한 방). 육아 휴직 중인 ‘라테파파’들이 아이와 함께 자주 들르는 곳이다. 김은형 기자
스톡홀름 중심가 세르겐 광장에 위치한 아동 도서관 ‘룸 포 반스’(어린이를 위한 방). 육아 휴직 중인 ‘라테파파’들이 아이와 함께 자주 들르는 곳이다. 김은형 기자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니바켄(삐삐박물관) 에서 아이들이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세워진 스티나 비르센 작가의 캐릭터들. 김은형 기자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니바켄(삐삐박물관) 에서 아이들이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세워진 스티나 비르센 작가의 캐릭터들. 김은형 기자
알마가 강조하는 민주적 가치는 북유럽 아동문학의 내용과도 연결된다. 어린이책이지만 때로 냉정한 현실도 가감 없이 표현하면서 꿈과 희망, 행복뿐 아니라 세상에는 죽음과 고통, 슬픔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예로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활발하게 창작하는 작가 중 하나인 사라 룬드베리가 그림을 그린 <여름의 잠수>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만나는 아이의 낯설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린다. 노르웨이 작가 그로 달레는 그림책 <앵그리맨>과 <문어의 방>에서 각각 가정폭력과 친족성폭력을 전면에 다루고 있다. 이는 린드그렌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꿔놓은 아동문학의 자장 안에서 지금도 북유럽 아동문학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 룬드베리가 그림을 그린 <여름의 잠수>. 출판사 제공
사라 룬드베리가 그림을 그린 <여름의 잠수>. 출판사 제공
아동문학 연구자이자 12년째 ‘알마’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스톡홀름대학 엘리나 드루케스 교수. 김은형 기자
아동문학 연구자이자 12년째 ‘알마’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스톡홀름대학 엘리나 드루케스 교수. 김은형 기자
알마 심사위원인 엘리나 드루케스 스톡홀름대 교수는 <한겨레>와 만나 “린드그렌은 현실과 환상을 작품에 함께 담으면서 세상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면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오, 나의 미오>가 보여주는 외로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다루는 죽음 등 작품에 등장하는 부정적인 사건이나 감정도 아이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작가적 신념이었다”면서 “당시 린드그렌을 중심으로 어린이문학에 일어난 변화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 어린이문학에서 자주 다뤄온 주제인 입양을 예로 들면, 전에는 입양의 긍정적 의미, 사회통합적 관점을 부각하는 데 집중해온 데 비해 최근에는 입양 당사자가 겪는 부정적인 감정도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고 때로 고통도 직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린이문학의 쓸모라는 것이다.

스톡홀름/글·사진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유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그린 그림책 <누가~>시리즈로 호평받으며 스웨덴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엘사 베스코브’ 상을 수상한 스티나 비르센. 스티바 비르센 제공.
유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그린 그림책 <누가~>시리즈로 호평받으며 스웨덴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엘사 베스코브’ 상을 수상한 스티나 비르센. 스티바 비르센 제공.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일러스트 작업중인 스티나 비르센. 스티나 비르센 제공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일러스트 작업중인 스티나 비르센. 스티나 비르센 제공
‘누가’ 시리즈. 출판사 제공
‘누가’ 시리즈. 출판사 제공
스티나 비르센이 삽화를 그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폭력에 반대합니다>. 출판사 제공
스티나 비르센이 삽화를 그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폭력에 반대합니다>. 출판사 제공

스웨덴 그림책 작가 스티나 비르센 인터뷰

스티나 비르센(54)은 드물게도 혁신성과 대중성을 모두 성취한 스웨덴의 그림책 작가다. 아이들의 다양한 감정을 그린 유아 그림책 ‘누가~’ 시리즈는 스웨덴 출판 사상 가장 성공적인 그림책 시리즈로 꼽힌다. 해마다 스웨덴 최고의 그림책 작가에게 주는 ‘엘사 베스코브 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진 비르센의 캐릭터들은 스웨덴 역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 모인 ‘삐삐박물관’ 유니바켄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겨레>와 만난 비르센은 “책과 티브이, 집과 학교, 모든 곳에 삐삐가 있었고 나 역시 (삐삐 시리즈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키운 아이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비르센은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늘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었다”며 “‘누가~’ 시리즈는 이 시절 그렸던 그림들로 돌아가 커다란 머리와 단순하게 쭉 그어진 다리, 조그만 팔과 눈으로 찍은 점 등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야기도 어린 시절 겪었던 감정을 토대로 동시대적인 문화와 감성을 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누가 화났어?> <누가 아파?> <누가 더 예뻐?> 등의 ‘누가~’ 시리즈 총 16권은 아이들의 경쟁심과 두려움, 외로움 같은 다양한 감정을 다루면서 어른의 개입 없이 아이들끼리 해결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또 가족의 죽음, 차별, 가정폭력 같은 현실적인 주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풀어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아이들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슬픔, 분노 등을 경험한다. 그게 인생이고 나는 인생에 대해 쓰고 그린다”며 “다만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것을 부모와 교사들이 알아야 한다. 지금 어떤 책을 읽어주는 게 좋을지, 좀 더 기다리는 게 좋을지는 어른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성’은 어린이책에서 중요하면서도 접근하기 까다로운 주제인데, 그는 “아이들이 물어올 때 솔직히 답해주고 궁금해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보여주는 건 필요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에 대해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성 그 자체보다 삶의 방식 중 하나로서 동성애를 보여주는 건 중요하다. 사람들은 이성애자이거나 성소수자이거나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그 모두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삶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가~’ 시리즈에서 토끼는 엄마가 둘이고 고양이는 입양됐다. 테디피그의 아빠는 좀 무섭고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 역시 많은 아이들에게는 현실이다. 이 같은 삶의 일부를, 책에서도 자연스럽게 담으려고 한다. 가끔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아니에요, 엄마가 둘인 건 말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책을 끝까지 읽고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쉽게 받아들인다.”

비르센은 어린이들의 권리장전처럼 자리매김한 린드그렌의 기념비적인 연설문인 1978년 독일 출판서점협회 평화상 수상 소감을 책으로 묶은 <폭력에 반대합니다>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린드그렌처럼 “강력한 아동권 옹호자”라고 말하면서 “좋은 사람,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아이들이 배울 것은 많지 않다. 당신이 따뜻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면, 그리고 그런 태도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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