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검열 논란을 빚은 ‘예술과 노동’ 전시 현장을 4일 찍은 것이다. 전시물이 일방적으로 철거됐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간 뒤인 지난 3일 수탁업체 직원들이 기획자와 협의 없이 철거된 전시물을 임의로 다시 설치해놓은 모습이 보인다. ‘서울시, 서울아트책보고와는 무관한 전시임을 알려드린다’는 팻말 안내문을 앞에 세워놓았다. 노형석 기자
‘이 좁쌀만한 전시를 왜 도끼눈 뜨고 철거했을까?’
보면 볼수록 의문이 커졌다. 작은 테이블 두개인 전시대 위에 ‘예술과 노동’ 전시 포스터를 달아놓고, 그 아래 ‘예술과 노동’에 대한 책자와 전시 팜플렛 몇개, 과거 국가기관의 노동조합 파괴공작을 비판하는 법조인 참여 공개법정 무대를 벌였을 때의 관련 연출 사진과 토의 내용들을 담은 기록물들을 간추려 놓은 게 전부였다.
지난 4일 낮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지하에 있는 서점몰 공간의 한 구석을 찾았을 때의 풍경은 기묘했다.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의 문화복합공간인 서울아트책보고 입주서점 11개 가운데 한 업체인 ‘자각몽’의 정말 작은 전시공간이었다. 바로 여기서 김용재 자각몽 대표가 지난달 29일 ‘예술과 노동’에 대한 아카이브 기획전을 시작하려다 서울도서관 간부와 수탁업체가 기획전 홍보물에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가 언급됐다는 이유로 전시품들을 일방적으로 뜯어내고, 문화공간 누리집에서 관련 홍보물을 무단 삭제하는 해코지를 당했다.
이런 사실을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뒤 서울시와 수탁업체는 더욱 황당한 해프닝을 벌여놓았다. 3일 오전 기획자에게 일체 상의하지 않고 철거된 전시물을 얼기설기 엮어 전시장에 다시 설치하고 ‘서울시나 서울아트책보고 공간과는 관계 없는 전시’라는 팻말을 그 앞에 세워놓은 것이다. 새해 들어 예술가 전시 검열 논란이 더욱 목불인견 양상으로 치닫는 격이랄까. 검열 논란 전시 현장은 웃지 못할 시사코미디 무대로 변했다. ‘공개법정―우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입니다’란 아카이브 전시장은 서울시 당국과 수탁업체가 무단 철거했다가 기획자와 예술가들이 반발하자 일방적으로 복구했고, 다시 서울시 간부 지시로 재철거하면서 논란을 빚었는데, 다시 일방적인 복구 조치로 논란에 더욱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항의하고 진상 조사를 요구해온 김용재 기획자와 과거 공개법정을 연출한 이양구 작가 등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은 어이가 없다며 실소하고 있다. 자신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팻말로 밝히기까지 한 작품을 철거-복구-철거-복구 과정을 거듭 되풀이하며 계속 손대는 행위 자체가 명백한 검열이고 탄압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구를 빙자해 재설치한 전시물도 기획자와 어떤 협의도 없이 설치한 것이고, 일부분 훼손된 상태로 무단 설치돼 그 자체로 검열의 적나라한 흔적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재 대표는 “자신들이 원래 전시된 상태로 재설치했다지만 내 의향이 아니고 이미 상당 부분 기획 의도와 전시물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됐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했다.
검열에 맞서는 연대 활동은 본격화되고 있다. 2년 전 공개법정에 참여한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등 7명의 변호사, 법학 교수는 “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 파업이 정치적, 사회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전시를 할 수 없다는 담당 과장의 발언은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기준으로 특정 예술인을 차별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며 “표현의 내용에 대한 제한 중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라면서 서울시는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해야 한다고 5일 공동입장문을 발표했다. 김용재 대표는 문화계 인사들과 함께 다음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 관계자들을 업무방해와 직권남용, 표현의 자유 침해 등으로 민형사상 고소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른 예술인 권리 침해 신고를 하겠다는 방침도 알렸다. 하지만 서울시는 수탁업체의 팻말 말고는 일체의 공식입장 없이 묵묵부답이다.
일부 예술인들은 자각몽 전시장의 기묘한 풍경을 보는 관람이야 말로 곧 저항이자 연대라는 슬로건을 페이스북에 전파하고 나섰다. 지난해 한 고교생이 그린 풍자만화 <윤석열차>를 두고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겁박했던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전철을 따라가려는 것인가. 서울시는 지금 작은 노동운동 자료전시회를 예술 검열과 탄압의 상징으로 키우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