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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산소 권력 다룬 ‘택배기사’, 끝과 끝으로 갈렸다

등록 2023-05-15 13:16수정 2023-05-15 19:43

[택배기사, 어땠어?] 12일 넷플릭스 공개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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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하느냐, 내용도 충실해야 하느냐. 요즘 한국 드라마들이 서사보다 상황 자체에 몰두하면서 나오는 고민들이다. 지난 12일 공개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도 이런 기준에서 반응이 갈린다. “우리 미래일지도 모를 분위기를 담아낸 새로운 시도”라는 것과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택배기사>는 웹툰 원작으로 사막화된 대한민국이 배경이다.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에 산소를 권력 삼아 기득권이 된 재벌을 중심으로 계층이 나뉜다. 하위 계층으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난민이 주민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택배기사가 되는 것. 김우빈이 난민 출신 택배기사 5-8로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주연을 맡았고, 송승헌의 악역 변신, 원작에서 여자였던 사월(강유석)이 남자로 바뀐 점 등 궁금한 지점이 많다. 무엇보다 기후위기와 수저계급론이 화두인 시대가 드라마에 어떻게 녹아들었느냐가 관심사였다. 그런데! ‘평가단’ 의견도 이 꼭지 시작 이래 처음으로 극단적으로 갈렸다. <택배기사>와 함께 ‘드라마톡’도 ‘다시 시작한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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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은 기자(이하 남): 세계관 외에는 특별할 게 없는 드라마였다. 2회까지 보다가 몰입이 안 되어 중단하고 다음 날 다시 봤다. 3회부터는 그나마 나았지만, 그래도 팬데믹 상황을 담은 세계관이 아깝게 소비됐다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선을 끌어야 하는데, 긴장감도 조성되지 않고 지루했다. 마지막 해결도 너무 쉬웠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정덕현 평론가(이하 정): 난 현실감이 좋았다. 산소마스크가 일상이 된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 또 택배로 보급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줄을 서서 백신을 맞는 광경들까지 시청자들은 코로나19 상황을 떠올릴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 등장했던 음모론과 실제 벌어졌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도 투영됐다. 예를 들면 산소가 구획을 나눠 차별적으로 공급되는 상황은 잘 사는 나라들이 백신을 싹쓸이하는 동안 백신이 없이 전전긍긍하던 가난한 나라들과의 차별을 떠올리게 한다. 천명이라는 기업도 글로벌 제약업체에 대한 음모론이 연상된다. 환경 재앙은 전 지구적인 위기인데 이조차 기업들은 이익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서사에 깔렸다. 

남: 설정은 2016~2019년 연재한 원작 웹툰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비슷한 세계관은 많다. <택배기사>는 수년 전 나온 세계관을 한층 더 세밀화하거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장점을 담아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원작 웹툰과 드라마에서 노인 캐릭터를 활용한 장면 하나만 비교해도 그렇다. 드라마에서는 할아버지가 산소를 주문하는 걸 잊어버리는 거로 나오는데, 원작에서는 할머니가 집 밖에 나와 앉아 있다. 위험하다는 5-8의 말에 “공기가 안 좋아도 가끔은 밖의 공기를 맛보고 싶다”는 식으로 말한다. 난 그 한마디가 우리에게 공기가 중요한 이유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들이 드라마에는 녹아있지 않다. 천명이 만든 세상에 난민은 필요 없다는 류석 회장과 그걸 바꾸려는 난민 5-8, 그리고 방사능에 노출되어 돌연변이로 태어난 사월 등 여러 메시지를 담지 못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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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택배기사’를 중의적으로 해석해 ‘블랙 나이트’, 즉 약자들을 구원할 기사로 해석해낸 점은 위트가 돋보인다.

남: 드라마는 원작과 달리 택배기사들을 천명 소속으로 바꿨는데, 그 지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천명 소속이어서 도움이 될 정보를 얻는 등 뭔가 장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보면 택배기사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그냥 ‘난민 헌터’였어도 될 법하다. 헌터들이 중심 지역으로 가는 택배차에서 물건을 훔친다거나, 아니면 난민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택배기사가 되어 천명을 무너뜨리려 한다거나. 그 작전이 발각된다거나.

정: 난민이 주민권을 얻어 자유롭게 다니려면 택배기사가 되어야 한다는 극적인 상황을 주려는 것 같다. 

남: 그러려면 서사를 좀 더 깔아줘야 하는데, 그런 점이 없다 보니 설득력이 부족하다. 사월도 왜 그렇게까지 택배기사가 되려고 하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자신을 보호해주던 언니가 천명 그룹에 납치됐고, 언니를 구하려면 특별구역에 가야 하고 그러려면 택배기사가 돼야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택배기사도 난민 출신은 못가는 곳이 있다는 설정이니까. 드라마 속 사월이 오히려 처음부터 이 답답한 세상을 바꾸겠다며 택배기사가 되어 나이트에 합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뭔가 그에게 동기를 부여해줘야 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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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영상미가 좋았다. 한국의 특수효과 기술이 이제는 할리우드 못지않다는 걸 이 작품은 증명한다. 사막에서 트럭과 차들이 질주하고 모래바람 속에서 대결하는 광경은 영화 <매드맥스>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구현해낸 미술이나 세트, 택배기사들 특유의 카스튬, 여러 상상의 공간들을 실감 나게 만들어낸 노력들이 군더더기 없는 영상을 보여준다. <택배기사>가 그간 나왔던 케이(K)판타지 작품 중에서 성과라면 이 디스토피아를 실감 나게 연출해낸 영상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남: 대한민국이 먼지에 뒤덮인 세상을 표현한 그래픽은 새로웠다. 재난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런 식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역동적이지 않으니 큰 효과는 못 본 것 같다. 네모 반듯한 집과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만 계속 등장하니까 심심했다. 그러려면 택배기사들이 차를 타고 갈 때 헌터들이 몰려들어 그 넓은 장소에서 먼지 휘날리며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건물이 부식되어 무너진다거나. 압구정역, 남산 등 익숙한 장소가 나오는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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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김우빈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5-8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 강인한 이미지로 레지스탕스 활약을 하는 택배기사들의 리더 역할을 등장만으로 압도한다 . 난민 출신으로 택배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사월의 강유석은 드라마 < 법쩐 > 에서 장태춘 역할로 주목받았던 배우인데 이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설아 소령의 이솜도 연기 변신이 돋보인다 . 각각의 욕망과 의지를 가진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다가 한 지점에서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는 작품 특성에 맞게 각각의 개성들이 잘 살아나는 연기 앙상블을 보여줬다.

남: 김우빈은 발음이 굉장히 뚜렷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지 않다. 전형적이다. 특히 류석은 야망도 있으면서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는데 그 점이 잘 살지 못했다. 충분히 매력적인 악역이 될 수 있었는데 송승헌의 연기가 아쉽다. 사월은 남자여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남녀의 문제를 떠나 원작처럼 여자였다면 더 할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다. 사월의 친구들도 그 자체로 희망을 보여줘야 하는데 함께 있을 때 명랑한 분위기가 살지 않고. 의외라면 기업 회장과 대통령이 나라를 돕는 캐릭터로 등장한 것?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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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6부작으로 끝나 다 담지 못한 것 같다. 잘 만들어놓은 세계관이 너무 짧은 6부작 틀에 맞춰 끝나버린 듯한 느낌은 아쉽다. 이렇게 된 건 드라마라기보다는 6부작으로 나뉜 278분짜리 영화에 가까운 접근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군더더기 없고 속도감 있는 연출의 장점으로 볼 수 있지만, 보다 느린 호흡으로 캐릭터들이 가진 저마다의 서사와 감정들을 하나하나 채워 넣고 쌓아서 엔딩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로서는 아쉬운 지점이다.

남: 오히려 <택배기사>는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6부작을 보면 충분히 압축 가능하다. 필요 없는 장면도 많고, 중간중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웃음코드도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이야기를 더 충실히 담아 저마다의 사연을 보여주며 긴 드라마로 만들거나. 이도 저도 아닌 드라마가 됐다.

그래서 볼까말까

정덕현 평론가:  흥미로운 세계관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작품. 글로벌 공감대도 기대해볼 만한 K디스토피아.

남지은 기자: 새로운 시도만으로 박수칠 시기는 지났다. 드라마들이 갈수록 상황에 집중하는데, 이젠 서사와 개연성에 충실해 달라.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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