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타이태닉(타이타닉)만큼 유명한 배가 또 있을까?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 떠오른 20세기 초, 19세기까지의 최강국 영국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배였다. 가장 크고 화려한 여객선으로 건조된 타이태닉은 1912년 4월10일, 부유층부터 극빈층까지 2000명이 넘는 승객과 선원들을 태우고 역사적인 첫 항해를 떠났다. 그리고 빙산에 부딪혀 4000m 심해로 가라앉았다.
여러 상징과 은유가 겹치는 사건이었다. 세계 1위 국가의 자리를 내주는 대영제국, 무심한 자연에 응징당한 인간의 오만함, 죽음 앞에 빛의 스펙트럼처럼 드러난 사람들의 민낯…. 그래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고, 여객선 타이태닉이 맛보지 못한 엄청난 성공을 뒤늦게 거두었다.
캐머런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잠수정에 몸을 실었다. 이미 영화를 촬영할 때 4000m나 되는 심해로 내려가 실제 타이태닉을 살펴봤던 그는 훗날 1인 잠수정에 몸을 싣고 무려 1만m가 넘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마리아나해구에 있는 챌린저해연)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지금도 그 기록은 1인 잠수정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그는 이 과정을 <딥씨 챌린지>라는 매우 정직한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발표했다. 여담이지만, 캐머런 감독은 제목만큼은 단순 그 자체를 추구한다. <에일리언> <터미네이터> <타이타닉> <아바타>…, 그리고 깊은 바다에 도전한 <딥씨 챌린지>.
그리고 며칠 전, 또 다른 사람들이 타이태닉을 구경하러 내려갔다. 영화 촬영이나 연구 같은 특별한 목적이 아닌, 재미를 위한 탐사였다. 그런데 해양 전문가를 동반한 억만장자들이 탄 잠수정이 갑자기 사라졌다. 며칠 동안 버틸 만큼의 산소가 잠수정에 마련되어 있었기에 희망도 남아 있었지만, 결국 잠수정 잔해만 발견되었다. 구조에 나섰던 미국 해안경비대의 결론은 탑승객 전원 사망. 게다가 그중 한명이 타이태닉 사망자 후손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번 사고로 남편을 잃은 웬디 러시의 고조부와 고조모는 영화 <타이타닉> 이야기에 영감을 준 실제 부부였다. 생존자들 증언에 따르면, 당시 메이시스 백화점의 공동 소유주였던 스트라우스 부부는 구명보트에 탈 기회가 있었는데도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서로를 꼭 안고 갑판에 선 채로 물에 잠겼다고 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 거의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타이태닉의 비극은 아직 끝이 아니다. 영화만큼이나 유명한 주제가 ‘마이 하트 윌 고 온’을 부른 가수 셀린 디옹 이야기가 남아 있다. 처음에는 비극이 아닌 화려한 대박이었다. 캐머런 감독 역시 자신의 영화에는 가사가 들어가지 않은 연주곡만 쓴다는 원칙을 고수했기에 이 노래는 원래 연주곡으로 작곡되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노래를 붙여보자고 설득해 셀린 디옹이 시험 삼아 데모 버전을 불러본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고, 노래는 정식으로 녹음되었다. 그렇게 영화음악 역사상 손꼽히는 히트곡이 탄생했다.
가수로서 완벽한 삶을 살 것만 같았던 셀린 디옹에게 비극이 덮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이 좋기로 유명했던 남편이 암에 걸렸다. 셀린 디옹은 활동을 중단하고 암 투병을 도왔지만 결국 남편을 잃고 말았다. 그 뒤 거식증이 찾아올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내고 활동을 재개한 그에게 ‘전신 근육 강직인간증후군’이라는 신경질환이 찾아왔다. 상당한 통증과 경련이 동반되다가 심해지면 몸을 움직이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100만명에 1명꼴로 걸리는 희소병이라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병과 싸우면서 영화에도 출연하고 신곡도 발표했다. 팬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잡혀 있던 공연 스케줄을 취소하며 남긴 말이 뭉클하다.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무대에 다시 설 준비가 될 때까지 모든 것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다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타이태닉과 관련한 비극은 이미 너무 많다. 배는 침몰하더라도 내 마음은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노래했던 셀린 디옹의 이야기만큼은 비극이 아닌 감동의 역전 드라마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남편 곁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전에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우리를 만나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