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말연시가 되면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1년 동안 제게 일어났던 일을 쭉 적어보고, 그중에서 10대 사건을 뽑아봅니다. 거기에 더해 ‘새해의 10대 사건’도 상상해봅니다. 새해에 이루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이기도 하죠. 저는 여러분이 꼽을 ‘새해의 10대 사건’에 목소리의 변화를 넣어보시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 강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주눅 들지 않고 유창한 말하기’에 관심을 보이셨지만 과정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좋은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목소리가 좋아지느냐”는 질문에 저는 “좋아지게 할 수는 없어도 지금과는 다르게 만들 수는 있다. 물론 긴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느냐”는 질문도 이어집니다. 사실 목소리는 타고나는 면이 있고 얼굴과 구강 구조가 비슷한 사람들은 목소리도 비슷하게 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아나운서실에서 같이 근무했던 ㅈ아나운서의 경우, 배우 박신양씨 성대모사를 아주 기가 막히게 잘했는데, 두 사람은 닮았습니다. 제 입사 동기의 아버지는 한국방송(KBS) 아나운서였는데 그 친구는 외모는 물론 목소리도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이렇게 목소리는 분명히 타고나는 부분이 있지만 발성기관은 활용하지 않으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는 공명 기관(구강·비강·인두)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전화를 받으면 여자로 오인할 정도로 제 목소리는 가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변성기가 오면 반드시 굵은 목소리를 갖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중창단 생활을 하면서 그 다짐을 실천했고 발성 연습을 하면서 내 몸속에 공명기관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대화할 때 상대의 무엇을 관찰하시나요? 저는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상대가 말할 때 얼굴에서 어느 공간을 활용해 공명(울림)을 하는지 유심히 살핍니다. 어떤 분은 구강의 앞부분, 극히 일부만 쓰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목구멍 안쪽의 넓은 공간을 울려서 말하기도 합니다. 구강 앞부분을 사용할 때는 음성이 가늘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잘 들리는 경우가 많고, 목구멍 안쪽을 울릴 경우에는 중후한 음성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를 내는 신체기관 그림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①영역이 구강의 앞부분이 되고 ②와 ④가 목구멍 안쪽이 되겠습니다.
가장 울림이 좋고 멀찌감치 있는 사람에게도 잘 들리는 소리를 내려면 어느 공간을 활용해야 할까요? 당연스럽게도 ① ② ③ ④ ⑤를 모두 연결해서 발성을 하면 됩니다. 이제부터 입을 벌리면 보이게 되는 구강을 활용해 소리를 내보겠습니다. 우선 거울부터 준비해주세요. 거울을 보고 입을 크게 벌리면 혀와 입천장, 목젖이 보일 겁니다. 그 부분을 제외한 입속 공간을 울려서 소리를 내보세요. 그 공간을 넓히면 넓힐수록 울림이 풍부한 소리가 됩니다.
입속 공간을 넓히려면 우선 입을 크게 벌려야 합니다. 우리 귀에서 귓구멍의 입구를 가려주는 뚜껑 같은 부위를 ‘이주’(tragus)라고 하는데요, 우선 양손 검지로 양쪽 이주를 지긋이 누른 뒤 턱을 아래로 내리면 검지가 더 들어가는 느낌이 올 겁니다. 그때가 바로 입속 공간이 크게 확장되는 순간입니다. 하품할 때 입안 모양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공간 전체를 울려서 “아~” 하고 소리를 내보세요. 평소와 다른 울림이 느껴질 겁니다.
이때의 입 모양과 구강 상태가 목소리를 바꾸는 발성의 기본입니다. 이후에는 검지로 이주를 누르지 않고 입속 공간을 확장해주세요. 그리고 10초 동안 “아~” 하고 소리를 내보세요. 또 같은 상태에서 특정 문장을 한 음절씩 끊어서 큰 소리로 외쳐보세요. 제가 권하는 문장은 “삼! 분! 안! 에! 할! 말! 다! 함!”인데, 자신감이 생기고 익숙해지면 더 긴 문장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비강과 구강, 인두를 통째로 활용할 수 있어 울림이 있는 소리를 멀리까지 선명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연습을 꾸준히 한달 정도 반복하면 목소리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간단한 연습법이지만 처음 하시는 분들은 어색할 겁니다. 큰 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가용 안이나 코인노래방에서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녹음도 하세요. 말하면서 내 목소리를 듣는 것과 상대방으로서 듣는 내 목소리는 또 다릅니다. 녹음을 하고 들어본다면 내 목소리를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금희 선배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저와 제 동기 수강생들의 문제점을 신랄하고 냉정하게 지적해주셨습니다. 교육은 무섭게 하셨는데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메일로 문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알려주신 주소로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제 고민을 적어 보내는 게 썩 내키지 않았고 바쁜 분한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주저했습니다. 제 메일이 다른 메일에 묻혀서 답변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걱정도 컸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그 시절 전화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동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강생 중 메일을 보내 문의한 사람이 제가 처음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루에 10분 정도를 투자해 목소리 바꾸는 발성법을 연습하면 처음에는 어색해도 재미가 붙겠지만, 불현듯 ‘내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의심이 드는 순간도 올 겁니다. 그럴 때는 제게 메일(you77@kbs.co.kr)을 보내주세요. 고민거리를 적고, 그동안 녹음한 것 중 그나마 제일 맘에 드는 것으로 보내주시면 제가 들어보고 최선을 다해 피드백을 드리겠습니다. 폐가 될까봐, 내가 보낸 메일이 확인도 안 되고 묻힐까봐,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주저하지 마시고, 제 경험처럼 한번 용기를 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목소리의 변화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한국방송 아나운서
어릴 때는 목소리가 큰 아이였습니다. 청소년기부터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년인 지금은 스며드는 목소리이고 싶습니다. 현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말하기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