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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무지개 쫓는 ‘60대 소년’… “꿈 버리면 폭삭 늙어요”

등록 2006-06-22 21:47수정 2006-06-23 16:30

“이곳을 구경한 외부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오.” 장서 공개를 꺼렸던 이석범 장서가협회장은 일단 기자의 틈입을 허용하자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 40여년 책과 함께 한, 퇴직 교육자의 서가의 책은 발행 시간대(근현대), 분야(한국학)가 일정하여 정갈함마저 느껴졌다. 임종진 기자 <A href="mailto:stepano@hani.co.kr">stepano@hani.co.kr</A>
“이곳을 구경한 외부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오.” 장서 공개를 꺼렸던 이석범 장서가협회장은 일단 기자의 틈입을 허용하자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 40여년 책과 함께 한, 퇴직 교육자의 서가의 책은 발행 시간대(근현대), 분야(한국학)가 일정하여 정갈함마저 느껴졌다.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15년간 모은 책으로 24년전 모범장서가상 책 불어불어 1만2천권 옛집 옥탑까지 점거
독서일기 묶음 차곡차곡 ‘노트 변천사’ 장서가 기증책 홀대
책의 운명 가슴 아파요 이젠 책선물도 눈치보입니다

한국의 책쟁이들/③ 이석범 장서가협회장

책꽂이 앞에 서서 사진기자를 향해 수줍게 웃는 40대 초반의 부부. “서가가 먼지 한점없이 가지런하다”고 설명돼 있다. 82년 10월 <주간여성>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모범장서가상을 받은 이석범(당시 42세, 동구여상 국어교사)씨 집 탐방기사가 실렸다. ‘독서의 계절, 가을… 책모으기 15년에 장서 2천5백권’라는 제목. 기사를 보면, 그는 주머니에 몇백원만 생기면 책방으로 달려갔다. 새책방에서 목록을 확인하고 책은 주로 헌책방에서 구입했다. 아내 보기 미안해 사들인 책들은 직장에 두기도 하고 다른 방에 살짝 감추기도 하고 맡겨두었다가 낱권으로 나르기도 했다. 어려운 살림에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가 결혼 19년만인 전년 여름 동해로 해수욕을 다녀왔다. 책 욕심에 아내에게 치마 한감, 털 스웨터 한벌 선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06년 6월. 2천5백여권의 책은 1만2천여권으로 불어나 단독주택 옛집에서 300미터쯤 떨어진 새 아파트로 옮겨졌다. 책의 주인 이석범씨는 예순여섯, 지난해 동구여상에서 교감으로 정년 퇴임했지만, 그가 서있는 배경은 여전히 먼지 한점 없는 서가였다. 4년 전만해도 그는 냉천동에서, 그 이태 전까지는 천연동 구옥에서 27년을 살았다. 남들은 집을 넓힌다, 아파트를 장만한다고 하는데, 그는 그럴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었을 뿐더러 짐 때문에 이사할 엄두를 못냈다. 원인은 그·놈·의· 책이다. “월급을 봉투째 집에 가져오는 경우는 없었어요. 따로 나오던 수당이나 과외비는 당연히 책값으로 들어갔죠. 생존 이외의 것은 서화를 사는데 들어갔다고 하면 맞아요.” 불어나는 책과 함께 아내의 불만도 조금씩 불어났을 터.

“물어보지 마세요. 안 좋아하지는 않지만…,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중에 소장품을 팔아 호강시켜 줄라나 모르지만…. 남편 마음이 딴데 가 있는데 무슨 호강을 해요?” 마침 외출했다가 점심을 차려주러 잠간 들른 부인 이종순(65)씨의 말에는 뼈가 들었다. “그대신 술을 안 하니까 술값이라고 생각하고 잘 살았어요.” 눅잦히는 덧말에 굳어졌던 남편의 표정이 비로소 풀렸다. 그놈의 책은 부부간 감정의 골에 완고하게 존재하는 셈. 안방에 시집 3천여권, 작은 방에 국문학 책 3천여권, 거실에 각종 미술 책이 수백권. 쉬엄쉬엄 옮겨온 게 그것이고 나머지는 옛집 옥탑과 지하실에 보관돼 있다.

술값이라 치고 살았다는 아내


“고교때 친구가 읽던 딱지본 삼국지가 부러웠어요. 얼마나 읽었는지 내용을 달달 외더군요. 빌려달랬더니 아버지 핑계를 대며 선뜻 빌려주지 않더라고요.” 여러 번 졸라 허겁지겁 읽었지만 그 허기는 훗날 월탄 삼국지를 읽고서야 끌 수 있었다. 서울맹학교 보통사범과 재학 때, 일정액을 헌책방에 맡기고 빌려읽은 책 정가의 10~20%를 빼나가는 식으로 책을 섭렵했다. 한 여학생한테서 민중서관 한국문학전집 38권을 한권씩 차례로 빌려 모두 독파한 기억이 있다. 운산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66년 맹학교 교사로 발령받은 그는 점자로 만들어지지 않은 책들을 5년동안 학생들에게 읽어주며 동시에 자신의 독서량도 채웠다.

그가 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동구여상 교사 시절 국제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전공은 물론 자신이 맡은 국어수업과 관련된 책이 시작이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집, 소설집 등 실물을 구해 수업 교재로 활용해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다. 모으는 재미와 속도가 붙으면서 그는 헌책방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얼굴이 알려졌다. 홍제동 대양서점 주인 정종성씨는 “교사 재직 때는 토, 일요일이면 꼭 들르곤 했다”면서 “책 외에 그림과 글씨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천고마비는 10월‘이었고’ 10월은 독서의 계절‘이었다.’ 독서경연대회가 열리‘었고’, 애서가와 장서가 표창이 ‘있었다.’ 2천권이면 장서가‘였다.’ 신문방송에 그 이름들이 오르내리‘었다.’ 82년 가을 장서가상을 받은 이석범씨 역시 매스컴을 많이 탔다. 추억의 그림자일 뿐인가. 이 사회는 언제까지 껍데기 인터넷에 사로잡혀 책을 과거의 유물 취급할 것인가.
천고마비는 10월‘이었고’ 10월은 독서의 계절‘이었다.’ 독서경연대회가 열리‘었고’, 애서가와 장서가 표창이 ‘있었다.’ 2천권이면 장서가‘였다.’ 신문방송에 그 이름들이 오르내리‘었다.’ 82년 가을 장서가상을 받은 이석범씨 역시 매스컴을 많이 탔다. 추억의 그림자일 뿐인가. 이 사회는 언제까지 껍데기 인터넷에 사로잡혀 책을 과거의 유물 취급할 것인가.
옆집 세탁소 불로 타거나 그을고, 장맛비로 옥탑이 새면서 젖어서 할 수 없이 버린 100여권 외에 그의 집으로 옮겨온 책들은 애지중지 호강이었다. 떨어진 것은 붙여지고, 이빠진 것은 짝이 맞춰졌다.

현재 그는 최성장, 김관호, 박기연, 진병노, 신영길씨에 이은 장서가협회 6대 회장이다. 이 협회는 출판문화협회가 주는 모범장서가 표창을 받은 사람을 회원으로 1972년에 조직되었다. “상서기풍을 진작하여 서적수집과 독서연구의 상호협동을 목적으로 하는” 친목단체다. 모범장서가는 64년부터 74년을 제외하고 매년 수상자를 내고 75년부터는 <상서>라는 이름의 회지를 내어왔다.

“순수하게 읽기 위해 스스로 발품을 팔아 한권두권 책을 모은 사람을 대상으로 했어요. 나라 안에서 발행한 단행본 2000권이 넘으면 자격이 주어졌지만 대학교수, 목사, 신부 등 책 속에 살아야 하는 사람, 운좋게 조상한테 물려받은 사람,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들인 사람은 제외됐죠.”

책읽는 풍토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이 제도는 차츰 권위가 붙어 해마다 수상자들은 매스컴의 조명을 받았고 공직자는 가점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출판문화협회가 지원을 중단하면서 94년부터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회원은 87명에서 뚝 멈추었고 그나마 타계, 주소불명 등으로 연락이 닿은 사람은 55명뿐이다. 회비와 후원금으로 발행하던 회지도 97년 14집을 끝으로 더이상 잇지 못하고 있다.

“출협을 찾아가 포상제도를 부활해줄 것을 몇차례 얘기했는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는 “요즘 사람들이 인터넷이다 뭐다 해서 한해 책 5권도 채 읽지 않는다”면서 “그런 만큼 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흥식 출협 사무국장은 “대상자가 엇비슷하고 표창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 중단되었다”면서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으면 재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신영길 전임회장의 장서를 거론하며 책이 홀대받는 현실을 개탄했다.

신씨가 평생 모은 책은 5만여권. 전경련, 여수대학, 이화여대 등에서 모두 거절당한채 이리저리 떠돌았다. 박영식 총장의 후의로 광운대 도서관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그 책들은 한달 보관료 60만원을 물며 컨테이너 박스 신세를 져야 했다. 이씨는 문화일보 건물 지하에서 한때 펼쳐진 신씨의 장서를 구경한 적이 있다면서 한마디로 장관이었다고 술회했다. “젊은 사서들은 오래된 책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아요. 열람회수가 적거나 세로로 쓰인 책은 낮춰보는 것 같고요. 귀한 책이 폐기 처분돼 흘러나오는 걸 보면 가슴 아파요.” 장서가가 작고한 뒤 2~3일 안에 헌책방으로 책이 흘러나와 깜짝 놀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젊은 사서 세로쓰기 책 낮춰 봐

문무속객실유장서(門無俗客室有藏書). 거실에는 친구인 윤양희 교수(계명대 미대 서예과)가 써준 휘호가 걸렸다. 청정지대에 들어온 속객이 물었다. “어찌하여 같은 책이 여러 권 있습니까?” 언뜻 조지훈 시집 <역사 앞에서>가 세권이나 눈에 들어왔다. “귀중한 것은 거둘 수밖에 없어요. 겹치는 것은 누군가에게 선물할 것을 염두에 두고 가져온 것입니다.” 한때 그는 결혼식 등에 책을 즐겨 선물했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시덥잖아하는 눈치가 보이면서 책의 운명이 걱정돼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그런 흔적이 복본으로 남았다.

감신대 뒤쪽 다세대 주택 옥탑방. 책을 보관하기 위해 따로 들인 열평 안팎의 공간이다. 아파트로 옮겨가고 남은 책들과 신문스크랩 상자가 가득하다. 책 꽂임새나 놓임새가 아침조회에 모인 학생들 닮았다. 논맹 한적이 한켠에 고요하고, <조선사화>(문일평, 청구사) <창에 기대어>(조지훈, 범조사), <백팔번뇌>(최남선, 한성도서) 등 근현대 서책이 누웠다. 민중서관의 한국문학전집 서른 여덟 완질이 추억처럼 쌓였다.

오랫동안 써온 일기와 독서노트, 탁상일기, 교무일지 등이 고스란하다. <나의 일기>로 제본된 것, 종이를 잘라 맨 것, 스프링노트, 실로 꿰맨 것 등 자체가 하나의 노트 변천사다. 군대에서 짧은 휴식중 메모한 것은 낱장으로 끼워져 있다. 사연이 깃들지 않은 책, 손길이 머물지 않은 노트는 한권도 없다.

“이곳에 오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잊어버립니다.” 시간이 뒤섞인 책무더기에 자신의 기억이 버무려져 있으니 어련하겠는가. 그는 김동인의 소설 ‘무지개’의 마지막 구절이 뇌리에 맴돈다고 했다. ‘무지개 쫓기를 단념한 순간 폭삭 늙어버렸다.’

그는 요즘도 기억창고를 채우고 있다. 책은 책방에 가서 직접 골라야 한다는 게 지론. 인터넷으로 책을 사본 적이 없다. 늦은 점심을 먹고 그는 서대문에서 5호선 지하철을 탔다. 아무래도 동묘 부근의 헌책방으로 가지 싶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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