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그리스어·라틴어를 배우는 공부 모임이 늘고 있다. 그림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강의하고 토론하는 장면을 담은 작자 미상의 모자이크화.
서양문화 뿌리는 모두 라틴어·그리스어
고전어는 명료한 사유세계로 가는 창
“원전 읽어 대가들과 같은 시야로 보자”
강좌 잇따라 개설…교수·학생·일반인 ‘열공’
고전어는 명료한 사유세계로 가는 창
“원전 읽어 대가들과 같은 시야로 보자”
강좌 잇따라 개설…교수·학생·일반인 ‘열공’
커버스토리 / 서양 고전어 학습 바람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24살에 스위스 바젤대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고전문헌학을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수법이 잘못된 탓이라고 자책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니체가 강의를 시작하면 2000년 전의 그리스 아테네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직접 걸어나와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명료하게 강의했다. 그만큼 그는 고전문헌학에서 발군의 실력자였고, 그 실력에 기초해 자신의 사상을 세웠으며 그 사상으로 서양 근대 사유 전체와 대결했다.
서양 문화의 원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다. 더 좁혀 말하면, 그리스와 로마가 자신들의 언어로 생산한 문헌들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부터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거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운문·산문 텍스트들에 서양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말하자면 서양 정신의 보고다. 서구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사유체계를 뿌리에서부터 이해하려면 이 고전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필수다. 죽은 언어들은 살아 있는 현재형의 정신을 품고 있다.
서구의 정신과 사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고전 그리스어·라틴어를 배우려는 열의가 커지고 있다. 서양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현직 교수와 일반인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 요즘 고전어 학습 열기의 특징이다.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한국서양고전학회(회장 김경현 고려대 사학과 교수, 02-880-6026)다. 이 학회의 고전 그리스어·라틴어 강좌는 2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87년 서울대 철학과 이태수 교수가 중심이 돼 첫 발을 내디뎠다. 겨울방학 때는 어김없이 강좌가 열렸다. 처음엔 철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리스어·라틴어 작품을 직접 읽는 식으로 진행되던 1990년대 중반께부터 수요가 늘어나 초급 과정을 따로 개설했다. 올 1월에는 서울대 울타리를 벗어나 연세대에도 고전어 강좌를 마련했고, 내년 1월부터는 고려대 강좌도 새로 시작한다. 이 강좌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는 안재원(독일 괴팅겐대 박사·서울대 고전학과 강사)씨는 “서울을 세 권역으로 나누어 북부는 고려대 중심으로, 서부는 연세대 중심으로, 남부는 서울대 중심으로 수강생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열린 2006년 동계 고전어 강좌에는 서울대 60명 연세대 40명 등 모두 100여명의 수강생이 찾아들었다. 강좌는 크게 초급과 중급으로 나뉘며, 중급 과정은 서울대에만 개설했다. 일주일에 2~3일, 하루 세 시간씩 모두 5주 동안 계속한다. 이 정도면 초급 과정에서는 희랍어·라틴어의 기초문법과 기초어휘를 익힐 수 있으며, 중급 과정에서는 비교적 쉬운 고전 텍스트 한 편을 뗄 수 있다. 수강생은 대학 학부생이 60% 정도이며, 대학원생이 30% 정도를 차지하고 10%는 일반인을 포함해 대학 현직 교수들이다. 문학·법학·역사학 전공 교수들이 학부생들과 함께 배우고 있는 것이다. 고전어 강좌 코스를 거친 사람 중 20여 명이 현직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서양고전학회 강좌 20년째
고전어 강좌에 철학 이외의 전공 학자들이 눈을 돌리는 것은 유럽의 언어·정신을 파고들어가면 고전어와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재원씨는 “영문학이든 독문학이든 불문학이든 결국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뿌리이기 때문에, 이 고전어를 익히면 현대 언어로 이루어진 작품들의 정신적 바탕을 훨씬 더 풍부하고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어란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이자 세계를 보는 창이다. 고전어의 문법체계를 이해하면 서양 현대 사유의 바탕에 깔린 정신구조를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전어로 된 원전을 다루다보면 중요한 개념이 그 시절에 어떤 용례로 쓰였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또 오늘날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쓰는 개념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도 보인다. 서구 학문의 대가들이 발딛고 있는 지점에 올라서 그들과 같은 시야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안재원씨는 “이렇게 고전어의 세계를 장악하면 서구의 대가들의 사유를 조망하기 쉬울 뿐더러 그들과 비판적으로 대결하는 것도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서양고전학회의 겨울 강좌는 새해 1월 2일 첫 강의를 시작한다.
서양고전학회의 고전어 강좌 외에 재야철학집단인 철학아카데미(원장 이정우, 02-2279-2871)도 몇 년째 고전어 강좌를 열고 있다. 해마다 봄·여름·가을·겨울 4분기로 나뉘어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겨울 강좌는 일주일에 하루 2시간씩 10주 동안 진행한다. 겨울 강좌는 라틴어 초급과정를 비롯해 라틴어 운문강독(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산문강독(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 그리스어 중급 과정, 성서 그리스어 강독 등 다섯 강좌로 짜여 있다. 철학아카데미의 이안나 간사는 “고전어 강좌를 듣는 수강생을 보면 대학생뿐만 아니라 대학 교수도 있고 일반인들도 있다”고 밝혔다. “서양사상 짙은 안개 걷히는 느낌” 서양 철학 전공자들을 위한 고전어 강습 모임인 ‘정암학당’도 있다. 이정호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을 개방해 만든 정암학당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 전공자들이 모여 서양 철학 원전을 읽고 있다. 현재 20여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독일에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인희씨는 고전 그리스어 강좌를 통해 그리스 철학 세계와 만난 경우다. 안인희씨는 “몇년 전에 문예아카데미에서 김상봉(현 전남대 철학과) 교수에게서 그리스어를 1년 동안 배웠는데, 나중에는 내가 직접 플라톤을 강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독일어의 뿌리가 그리스어에 있는 만큼, 그 뿌리 언어를 이해하면 근대 독일어 문헌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19세기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는 그리스어 문법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는 “독일 철학자들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쓰는 개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그리스어에 이른다”며 “고전어를 배우다 보면 서양 사상을 감싸고 있는 짙은 안개가 걷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라틴어 격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해진 말이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 등장하는 이 말은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교훈적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데, ‘오늘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으니 지금 이 시간을 맘껏 즐겨라’라는 원뜻을 품고 있다.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않은가’라는 동양 고전 <논어>의 가르침대로 또 ‘카르페 디엠’의 자세로 이 겨울 서양 고전어를 공부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한국서양고전학회 겨울 강좌/철학아카데미 겨울 강좌
서양고전학회의 고전어 강좌 외에 재야철학집단인 철학아카데미(원장 이정우, 02-2279-2871)도 몇 년째 고전어 강좌를 열고 있다. 해마다 봄·여름·가을·겨울 4분기로 나뉘어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겨울 강좌는 일주일에 하루 2시간씩 10주 동안 진행한다. 겨울 강좌는 라틴어 초급과정를 비롯해 라틴어 운문강독(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산문강독(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 그리스어 중급 과정, 성서 그리스어 강독 등 다섯 강좌로 짜여 있다. 철학아카데미의 이안나 간사는 “고전어 강좌를 듣는 수강생을 보면 대학생뿐만 아니라 대학 교수도 있고 일반인들도 있다”고 밝혔다. “서양사상 짙은 안개 걷히는 느낌” 서양 철학 전공자들을 위한 고전어 강습 모임인 ‘정암학당’도 있다. 이정호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을 개방해 만든 정암학당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 전공자들이 모여 서양 철학 원전을 읽고 있다. 현재 20여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독일에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인희씨는 고전 그리스어 강좌를 통해 그리스 철학 세계와 만난 경우다. 안인희씨는 “몇년 전에 문예아카데미에서 김상봉(현 전남대 철학과) 교수에게서 그리스어를 1년 동안 배웠는데, 나중에는 내가 직접 플라톤을 강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독일어의 뿌리가 그리스어에 있는 만큼, 그 뿌리 언어를 이해하면 근대 독일어 문헌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19세기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는 그리스어 문법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는 “독일 철학자들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쓰는 개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그리스어에 이른다”며 “고전어를 배우다 보면 서양 사상을 감싸고 있는 짙은 안개가 걷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라틴어 격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해진 말이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 등장하는 이 말은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교훈적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데, ‘오늘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으니 지금 이 시간을 맘껏 즐겨라’라는 원뜻을 품고 있다.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않은가’라는 동양 고전 <논어>의 가르침대로 또 ‘카르페 디엠’의 자세로 이 겨울 서양 고전어를 공부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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