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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길을 내는 사람, 길을 막는 사람

등록 2008-05-16 19:10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도로가 가장 긴 나라는 미국이다. 중앙정보국이 펴낸 올해판 <월드 팩트북> 집계로, 3235만㎞에 이르는 지구촌 전체 도로 가운데 19.9%인 643만㎞가 미국에 있다. 2위는 의외로 인도다(338만㎞). 이어 중국(187만), 브라질(175만), 일본(118만), 캐나다(104만) 순서다. 국토가 미국의 두 배 가까운 러시아는 87만㎞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은 철도 길이도 22만7천㎞로 1위다. 지구촌 전체 137만1천㎞ 가운데 16.5%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도로는 10만㎞(북한 2만6천㎞)에 그친다. 철도는 남북한을 합쳐 1만㎞가 되지 않는다.

문화사학자이자 ‘걷기 전문가’인 신정일씨는 <영남대로>(휴머니스트 펴냄)에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도로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17세기 중반에 나온 유형원의 <반계수록>은 “수레의 이용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한 사실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한말에 활동한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 또한 <한국견문기>에서 “전 국토의 어느 곳을 가봐도 도로라는 것이 말이나 겨우 다닐 수 있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각 지역을 연결하는 이른바 9대 간선로가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길이 서울에서 용인·안성·충주·문경·상주·대구·청도·밀양을 거쳐 동래까지 가는 960여리 영남대로다. 이 길도 폭이 넓은 곳은 10m이고 중간은 7m, 좁은 곳은 3m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눈으로 볼 때, 중국으로 통하는 의주로(서울~의주) 외에는 사실상 큰길이 없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산이 많은 지형 등 여러 요인이 꼽힌다. 도로는 외적을 끌어들이기 쉬우므로 ‘도로가 없는 것이 안전하다’(無道安全)고 여긴 조선시대 지배층의 사고방식도 주요 원인이다.

옛 도로와 그 주변에는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살아 숨 쉰다. 보름쯤 걸려 영남대로를 걸어 보면 우리 땅과 그 속에 사는 사람이 둘이 아님을 누구나 오롯하게 체감할 것이다. 영남대로는 한반도 대운하로 예정된 노선과 크게 겹친다. 운하로 국토를 동강내는 대신, 그 돈의 100분의 1이라도 들여 영남대로를 보수해 역사·문화 훈련장으로 삼을 일이다.

도로는 역사이자 문명이다. 동물은 길을 만들지 못한다. 최초의 길은 기원전 1만년쯤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사람이 옮겨 다니다 보니 길이 됐다. 첫 포장도로는 기원전 4000년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등장한다. 문명의 시작이다. 도로는 제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로마는 7만8천㎞에 이르는 29개 간선도로를 제국 구석구석까지 건설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마자 한 일도 전국에 도로를 만들고 수레바퀴를 통일시키는 것이었다.

내일(18일)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북 철도가 재개통된 지 한 돌이 되는 날이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가도록 하자고 했다. 유럽 언론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에서 스코틀랜드까지’라고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지금 남북 철도 사업은 전망조차 불확실하다. 올림픽 공동응원단이 철도로 베이징에 간다는 남북 합의도 잊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그랬듯이 길을 막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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