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이달 중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 주요·신흥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는 미국 패권의 본격적 하강을 알리는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은 회의를 주도하지도 못했고 새 질서 구축을 위한 대안을 내놓지도 못했다. 그 공백은 유럽연합과 중국·일본·신흥국 등이 메웠다.
미국 패권의 쇠퇴가 거론된 것은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세계 체제 변화라는 측면에서 미국 패권 쇠퇴는 분명한 현상이라고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는 말한다. 체제 변화란 체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성격, 이 요소들이 관계를 맺는 양상, 체제가 작동하고 재생산되는 형태 등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근본적 재편과정을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17세기 중반~18세기의 네덜란드 패권, 19세기~20세기 초반의 영국 패권, 이후의 미국 패권 체제로 구분된다. 세 경우 모두 패권은 경제력과 정치력의 집중으로 끝나는 오랜 기간의 경쟁적 팽창의 결과다. 떠오르는 패권자는 처음에는 산업에서, 다음에는 상업에서, 그다음에는 금융에서 결정적 우위를 쥔다. 하지만 패권이 공고해지는 것은 대략 30년에 걸친 세계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다. 1618~48년의 30년 전쟁(네덜란드 패권의 성립)과 1792~1815년의 나폴레옹전쟁(영국), 1914~45년의 1·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긴 유라시아 전쟁들’(미국)이 그것이다.
패권기에는 사회적 평화와 무역·산업의 물질적 팽창이 서로를 강화한다. 선순환이다. 반면 패권 이동기에는 격화하는 국가간·기업간 경쟁과 사회 갈등이 서로 작용하면서 체제 전체에 걸친 저항과 국가 붕괴와 혁명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금융화, 양극화, 정치적 소외의 과정은 패권 이동기의 전형적 특징이다.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진행된 경제의 금융화, 세계적 차원의 빈부격차 심화, 이와 연관된 사회갈등 증가 등이 바로 그렇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그 절정이다.
미국 패권을 인수할 가장 유력한 후보는 동아시아다.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우선 미국은 쇠퇴하는 패권을 ‘착취적 지배’로 전환시킬 수 있는 큰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의 주요 중심지들은 경제적 역량은 있지만 미국 패권 체제가 남긴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새 지도력은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미국 패권의 이동은 이전 경우보다 더 격심하고 고통스러울 가능성이 크다. 다행스러운 건 이전처럼 세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점이다.
패권 질서를 주도하는 나라는 중산층을 폭넓게 창출하고 그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지구촌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유색인종이 차지하는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이들을 탄탄한 중산층으로 만들 수 없는 나라는 새 패권국이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동아시아의 패권 인수를 예상하는 이들은 중국 또는 중국·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전체를 지목한다. 동아시아 나라들과의 관계와 그 속에서 우리 위상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분명해진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동아시아의 패권 인수를 예상하는 이들은 중국 또는 중국·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전체를 지목한다. 동아시아 나라들과의 관계와 그 속에서 우리 위상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분명해진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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